“뜨거운 인간애 펼친 불세출의 선지식”

2017년 하안거 해제 당시 무산 대종사(사진 왼쪽)와 평생도반인 정휴 스님이 백담사 무문관 앞에 나란히 섰다.

무산 대종사의 삶을 겉으로만 보면 파격적인 것처럼 느껴져 마치 기인인 듯한 생각이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일부사람들은 무산 대종사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감춰져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뜨거운 인간애를 실천한 이 시대의 선지식이라고 할 수 있죠.”

고성 화암사 회주 정휴 스님은 평생 지음(知音)이자 도반인 무산 대종사의 진면목을 이 같이 강조했다. 정휴 스님은 무산 대종사 원적 후 호상차지(護喪次知)를 맡아 다비식까지 모든 장례를 총괄했다. 스님은 인간 조오현을 ‘탈권위적인 사람’이라고 밝히며 사람들을 감동케 하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무산 대종사의 그릇은 겸손과 덕으로 다듬어졌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자신의 권위 같은 것은 내던지고, 상대를 포용해서 안는 인물이니까요. 이런 점이 바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하고, 무산 대종사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하는 요소 같습니다. 또한 모든 일을 스스로 일궈놓고 공적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돌리는 것 역시 무산 대종사의 넓은 품입니다. 도반인 제가 보기에 이처럼 아름답고 큰 미덕은 그가 불교에 들어와 치열하게 갈고 닦아 이룬 덕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휴 스님은 이어 무산 대종사와의 인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꼽았다.

“무산 대종사가 불치병에 걸려 수술을 한 뒤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치열하게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생사의 벽을 뛰어넘으려고 자신과 싸우는 모습이었죠. 개인적으로 불교정화운동 이후 몇몇 선지식 외에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치료조차 거부했지요. 이 같은 노력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본적이 없습니다.”

무산 대종사 원적 후 곳곳에서 대종사의 도움을 받았다는 미담이 공개되는 것과 관련해 정휴 스님은 “오래 전부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도왔다”고 회고했다.

“스님들부터 문인, 정치인까지 많은 사람들이 무산 대종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대종사는 상을 내지 않고 남몰래 선행을 펼쳤죠. 저도 장례를 치르기 전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움 받았는지는 몰랐습니다.”

무산 대종사는 시조시인으로서 문단에서도 선(禪)을 가장 문학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정휴 스님은 그를 “문학적 상상력이 뛰어난 천재적인 인물”이라고 평하면서 “선에 대한 깨달음을 글로써 가장 잘 표현했다”고 말했다.

산중의 주인을 잃은 설악산에서 후학들이 느끼는 선지식의 빈자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정휴 스님이 무산 대종사의 상좌를 비롯해 문중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마음 속 자비를 일구라는 것’이다.

“무산 대종사의 삶을 후학들이 깨달으려면 족히 3년 이상은 있어야 할 겁니다. 영전에 패를 모시고 있을 때까지는 허전함만 느끼지만 1년, 2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뇌리에서 싹 없어지겠죠. 3년을 지내야 다른 사람들로부터 새롭게 조명되고, 또 다른 평가가 나올 겁니다. 무산 대종사가 실천한 인간애의 미덕은 우리가 계속 배워야할 가르침입니다. 사람을 높낮이로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포용하는 넓은 마음, 훗날 다시 법신처럼 다가오겠죠.”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