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금강경 26분

2500여 년 전 인도에서 태어난 석가여래의 가르침이 오랜 세월 걸쳐 세계 여러 나라에 전파되면서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에 영향을 받아 다양한 형태의 불법으로 변형 전개됐다. 이렇게 변형된 다양한 형태의 불법 중에서 어떤 가르침이 사람들을 밝게 하는 정법인지, 어떤 불법이 삿된 가르침인지 보통사람의 지혜로는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부처님의 밝은 정법의 가르침을 받아 행복해지며 밝아지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비록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는 하나 정법이 아닌 즉 사법의 가르침을 받들고 행하므로 불행하고 패가망신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과연 어떤 가르침이 정법이며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또 지혜롭게 하는 가르침일까?

부처님께서는 정법과 사법에 관한 구분을 금강경 26분에서 실감나게 규명했다.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만일 겉으로 드러난 모양으로 또 겉으로 들리는 명성으로 부처님을 판단하는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하므로 정도(正道)를 모른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이란 실은 자신의 마음속 분별심이 만들어낸 허상이며, 명성이란 자신의 선입견이 만든 허명(虛名)이다.

이렇게 모양이나 명성으로써 부처님을 판단하고, 현실을 진단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분별심이나 선입견이 현실을 만든다는 일체유심조의 진리, 또 그 분별심아란 것이 착각이요 본래 없는 것이라는 공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사람은 올바른 지혜가 없기에 사람을 올바르게 인도하지 못한다는 말씀인 것이다.

정법에 관해 부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었나? 금강경에 실무유법(實無有法) 명위보살(名爲菩薩)이라는 말씀을 하시었다. 즉 실무유법을 실천하는 사람이 보살이요 곧 정법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인데 다시 말해 일체유심조의 진리나 공의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은 정법을 행하는 사람이요 이런 사람이 이끄는 단체는 정법단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무유법은 일체유심조의 진리 공의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정법과 사법이 어떤 것인지 예를 들어보자. 보통 성직자들(정법을 행하지 못하고 사법을 행하는 사람들)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난제를 호소하며 난해한 질문을 할 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하여 난제에 대한 정답을 제시한다.

자신이 난제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반드시 올바르다 할 수 없기에 난제해결에 결정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일체유심조와 공을 깨친 성직자들(즉 지혜로운 성직자들, 정법을 행하는 사람들)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난제를 호소할 때 호소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부처님과 똑같이 난제를 해결할 지혜가 있음을 일깨워 주고 이를 발견하게끔 도와 줄 뿐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 부처님과 똑같은 전지전능의 위력은 어떤 절체절명의 난제도 다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진리를 말하는 사람중에서도 일체유심조나 공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즉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이 말하는 설법은 정법이 되지 못하는 것이며, 이들이 이끄는 단체 역시 정법행하지 못하는 단체 즉 사도를 행하는 단체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경(佛經) 속의 똑같은 말씀이라도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설명하면 사법(邪法)이 되는 것이요, 지혜로운 사람이 설()하면 상대의 지혜를 밝게 하는 정법(正法)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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