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진흥원 화요열린강좌...소광섭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주제 : 불교와 물리학의 만남

물리학은 불교를 어떻게 볼까. 불교의 관점에서 양자역학을 소개하는 강좌가 열렸다. 대한불교진흥원은 5월 29일 서울 마포 다보빌딩 3층 다보원에서 소광섭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초청 ‘화요열린강좌’를 개최했다. 소광섭 교수는 과거 물리학은 자연의 궁극적 원리에 집착했지만, 결국 미래물리학서 ‘인식’이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소 교수는 “정체된 현대물리학의 발전 방향을 부처님의 대승기신론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A.I.를 지배하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인식’에 방점을 두고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광섭 교수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코넬대학교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물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동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대통일이론' 등이 있고 연구분야는 양자장론 및 일반상대성이론이다.

과거 자연현상 자체에 집착
현재 오리무중의 정체 상태
미래 인공지능이 우위 점령
인류가 지배하려면 수행해야


앞으로 물리학은 더욱 발전할 것이고, 그만큼 불교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재 현대물리학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게 양자물리학입니다. 자연현상 자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자연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양자물리학의 포인트기 때문에 양자물리학과 관찰을 오늘 주제로 삼았습니다.

뉴튼과 태동한 고전물리학
우선 고전물리를 살피겠습니다. 고전물리학이라 하면, 물리학의 시작이죠. 고전물리학을 학문으로 정착시킨 사람이 뉴튼입니다. 뉴튼 전에는 모든 것이 자연의 진리, 우주의 진리라고 믿었습니다. 고전 물리학은 뉴튼이 만든 운동법칙과 중력법칙이라는 과학철학에 바탕 하게 됩니다. 주관은 제멋대로 변하고 일관성이 없죠. 그래서 우리는 주관적인 것은 과학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전물리학 이전에는 주관과 객관 중 어느 게 더 믿을만한지도 분별이 안됐습니다.

고전물리학이 열리면서 자연현상은 확실하게 여겨졌고, 주관은 믿을만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 다음에 자연과학에 대한 여러 규칙을 발견했습니다. 자연현상은 나의 노력 여하와 상관없이 그냥 발생하는 것이 자연현상이죠. 고전물리학의 중요한 점은 관찰을 하든, 자세히 보든 말든 그대로 있는 것. 이것이 자연법칙에 대한 고전 철학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 기술적이다 하면 이런 마음으로 보는 것 같아요. 자연의 법칙은 일어나는 것이고, 우리는 기껏해야 그 법칙을 활용할 뿐이라고요. 이런 생각이 정말 실제일까요, 아니면 개념적 허상일까요.

‘힘은 질량 곱하기 가속도(F=ma)’라는 것이 뉴튼의 운동법칙입니다. 이 단순한 법칙으로 지구가 365일을 걸려 태양을 돈다든지 조석간만의 차가 얼마인지 하는 것들을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뉴튼이 이 세상의 진리를 밝혔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것과 저 다른 별에서 똑같이 느낄까요? 다른 별에서도 힘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일상생활서 체험한 것이 보편적인 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좁은 세상에서 경험한 것을 마치 모든 현상을 섭렵한 것처럼 착각합니다. ‘F=ma’가 우주 전체의 법칙으로 성립하진 않는 거죠.

오리무중에 빠진 현대물리학
현대물리학은 크게 두 개의 발견으로 구성돼있습니다. 하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입니다. 상대성이론에 의해 힘이나 가속도라거나 하는 개념 없이 세상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가 양자역학인데, 양자역학을 만든 오늘날의 대표적인 학자가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입니다. 그 다음에 20세기 들어 물질의 근본을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2천 몇 백 년 전부터, 이 세상은 원자로 구성됐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천 년이 지나 19세기 말에 원자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원자를 찾으니까 이세상은 92개의 원소로 구성돼있다고 하며 이 세상의 끝까지 온 것 같은 생각을 했는데, 그 다음에 원자가 끝이 아니고 그것이 핵과 전자로 구성됐단 걸 알죠. 핵을 보니까 핵 속에 양성자, 중성자가 또 있는 거예요. 이런 소립자의 종류는 무한히 많았어요. 그리고 20세기 후반 현재는 소립자론이 장벽에 부딪혔어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온 정체 상태입니다. 이 세상 궁극적 물질의 요소에 대해 오리무중에 빠졌습니다.

우리는 과학이 가장 확실한 것이라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과학은 불확실함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 불확실성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자연이 불확실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불확실한 걸까요? 이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불확실성은 관찰의 불확실성이에요.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강력한 현대기술은 불확실한 전자에 바탕 하고 있고 그 불확실성은 내가 잘 알려고 하는 것에 대한 한계성입니다. 현대과학의 기술적인 체계를 보면 원리는 철학적인데 관찰에 관한 원리인데 이것이 불확실합니다. 그것을 수학적으로 이론화한 것이 양자 물리학이고 공학적으로 개념화한 것이 핵발전이나 DNA 등입니다. 수학 철학적인 것이 무용지물의 개념이 아니라 가장 밑바탕에서부터 그 위에 쌓인 게 기술이 되는 것입니다.

관찰로 세상을 이해하거나 세상 자체를 이해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과 관찰을 떠난 세상의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이 변한다는 것이고 관찰의 법칙이 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자연현상 자체를 연구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고전물리학이고, 현대물리학은 관찰자가 자연현상을 관찰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관찰자라는 것은 사람이 맞습니다. 그리고 카메라가 대표적인 관찰자입니다. 센서 같은 것도 관찰자입니다. 방 안의 공기, 온도, 미세먼지 등을 센서로 재는 것이 관찰자라는 겁니다.

그런데 센서가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교환하고 처리하는 것을 인공지능의 역할이라고 합니다. 인공지능이 지금 극대화되고 있지요.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세돌과 알파고가 게임을 했을 때 알파고는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을 알까요? 자기가 바둑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까요? 아닙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을 더욱 발전시키면 감정을 가지게 할 수 있는데 자기가 슬퍼하는지를 알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현재는 인식시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물리학은 인식의 문제입니다.

미래물리학 - 인식의 문제
고전물리학에서는 자연의 법칙을 찾는다고 했어요. 현대물리학은 자연을 관찰하는 것에 대한 것이라고 하고 미래물리학은 인식의 법칙을 논하는 것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인식하는 것에 대한 물리학을 불교는 어떻게 볼까요. 미래의 교육방식은 어떻게 될까요. 심리학과 물리학이 통합되는 시대가 올 겁니다. 인식의 문제가 오고 우리가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었던 것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가 돼 현실적인 문제로 등장합니다. 그럼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은 어디서 얻어야 할까요.

가장 확실한 것은 대승기신론에 있습니다. 1식은 한마음이죠, 대승기승론 앞에 전체 요지가 나오는데 한 마음이 세상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중생의 마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부처나 조사께서 우리 중생이 부처라고 하셨죠. 사실은 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근원에 그 마음이 있죠. 그 근본 마음에서 하나는 그 마음의 본질에 관한 논리이고 분별심, 주관과 객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품에 대한 부분이 심지명입니다.

제가 다른 책이나 논서에 비해서 대승기신론을 좋아하는 이유는 심생멸론이 자세히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심생멸론은 세계의 모든 현상 경험세계의 기원과 현상에 대해 써놓았어요.

첫째, 세상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세상이 고요하고 적적해서 아무것도 없었는데 세상의 기원은 어떻게 나타났느냐. 우리의 무명의 마음이 동하여, 즉 동한다는 말은 한자로 쓰면 업입니다. 카르마라고도 불리는 움직이는 것, 마음이 동해서 세계가 움직이는 겁니다. 고전물리학이나 현대물리학 관점에서 보면 우리들은 세상이 있으니까 관찰하는 거지만 여기에는 인식 주체가 생기고 인식 주체가 생겼기 때문에 현상이 나타났다고 봅니다.

인식하는 주체가 있으니까 인식하는 분별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우리가 깨치기 전에 분별하는 분별심. 분별하는 두뇌작용을 잘 보면 찰나 찰나 영화의 필름처럼 되어있습니다. 스마트폰 속 움직이는 것은 사실은 연속이 아닙니다. 커트로 되어있죠. 그것을 우리 머리에서 연결하죠. 그래서 세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움직이니까 변하는 것처럼 보이죠. 우리 두뇌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나게 하는데 필름은 여러 컷이지만 돌리면 연속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시간,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머릿속에 있어서 작용하는 겁니다.

제가 대승기신론에서 가장 놀란 것은 인식 주체가 먼저고 대상은 그 다음이라는 겁니다. 이것의 기본 철학이 삼계가 다 우리가 만든 상이고 계속 존재해서 움직인다는 거죠. 대승기신론은 철학적으로 보여줬으니까 이 상황을 과학적으로 만들어야죠. 인식의 법칙이 가장 포괄적인 최상위법칙이 될 것입니다. 신경계가 하는 일은 대부분은 A.I.가 다 할 겁니다. 그래서 신경계는 인식의 하위입니다. 신경계가 과학자들은 전부라고 하지만 인간은 그 이상의 마음이 있습니다. 물질적인 세계보다 A.I.보다 상위질서 물질적 세계보다 포괄적인 질서를 찾고 지배하려면 수행하셔야 합니다.

명상과 수행은 불교가 최고입니다. A.I.가 좀 더 진행되면 명확해질 거예요. 물질의 근본도 없고 마음도 찾을 수 없는데 우리는 ‘찾으면’ ‘구하면’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찾지도 구하지도 않는 겁니다.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수행의 포인트이고 좌선의 포인트입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에 본래 대상이 없기 때문에 찾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원자까지 깨뜨리고 더 깨뜨려서 소립자, 그리고 더 이상 깨뜨릴 수 없는 상황에 왔어요. 소립자의 근본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완전히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 밖에 따로 심리학과 물리학이 만나 새로운 세계로 향할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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