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무산 대종사가 남긴 법문들
설악 무산 대종사가 남긴 법문들
  • 신성민 기자
  • 승인 2018.05.30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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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퀴즈·경책… 대중을 향한 친절한 안심법문

“나는 대중 여러분 한번 바라보고 대중 여러분들은 나 한번 바라보면, 나는 내가 할 말을 다했고 여러분들은 오늘 들을 말을 다 들은 겁니다. 날씨도 덥고 하니 서로 한번 마주보고 그랬으면, 할 말 다하고 들을 말은 다 들은 겁니다. 오늘 법문은 이게 끝입니다.”

2017년 8월 5일 봉행된 신흥사 하안거 해제 법회에서 설악 무산 대종사가 내린 법어의 전문이다. 이날 무산 대종사는 촌철살인 같은 ‘30초 법문’을 통해 날카로운 선지를 대중에게 보였다. 주장자도 치지 않았다. 손뼉으로 법문을 마쳤다. 일체 설명도 사족도 없이 곧장 법상에서 내려왔다. 짧고 깊은 법문에 잠시 침묵했던 대중들은 ‘석가모니 정근’으로 노선사의 법문에 화답했다.

지난 3월 1일 열린 동안거 해제에서도 무산 대종사는 무문관 41칙의 달마 안심법문으로 대중들을 일깨웠다. 딱 1분 30초의 법문으로.

무산 대종사의 안거 법문은 해마다 화제가 됐다. 잠시 종정 스님의 법어를 대독하기도 했지만, 세상과 현실 세태에 문제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지혜를 직설화법으로 쏟아냈다.

탄핵 정국으로 초유의 5월 대선이 치러졌던 지난해 2월 동안거 해제 법회에서는 당시 대권주자들을 향해 장국죽비를 내렸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떠들어대는 정치인들의 추태가 점입가경(漸入佳景)이다. 자기의 허물은 감추고 남의 허물은 들춰내는 것이 마치 선거 때마다 남발하는 공약 같다. 사람들은, 스님들을 보면 뭘 좀 많이 안다고 지레짐작하고 이번에 누가 대통령이 되냐고 묻는다. 삼독(三毒)의 불길을 잡는 사람이 민심도 잡고 대권도 잡는다고 정중히 전하라.”

유명인들의 발언에 좌지우지는 현재 한국불교의 세태나 참 수행자가 없는 수행풍토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2016년 하안거 해제 당시 무산 대종사는 한국불교를 비판했던 한 외국인 스님을 염두한 듯 “우리 사회가 유명 대학 출신이라든지, 신문에 글 좀 싣고 하는 지식인들이라면 ‘이상한 소리’를 해도 매몰돼 끌려가는데, 이것은 불자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일갈을 남겼다.

“지식인들이 유원지에 놀러가서 먹다 남은 쓰레기를 그냥 아무데나 버리듯이 한국불교를 말한다. 그러면 유원지는 곧 더러워져서 썩은 거품이 부글부글 일어난다. 사람들은 그 부글부글 이는 거품만 보고 스님들을 판단해 금전에 물들었다고 평하는 것이다. 겉에 있는 거품을 보지말고 실상을 보라. 산에 물이 흐르면 흙탕물만 보지말고 바위 아래 맑고 고요한 물을 봐야 한다. 불법(佛法)은 그렇게 돌덩이 밑으로 사자전승(師子傳承)하며 흐르는 것이다.”

2012년 2월 동안거 해제에는 “골동품 아닌 살아있는 경전을 찾아라”는 법문을 내리며 진정한 해제는 버리는 것임을 강조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골동품일 뿐이다. 좋게 말해야 문화재이다. 대장경 속에 억만 창생이 빠져 죽었다. 대장경에서는 부처님이 어떻고, 어떻고…. 도대체 부처님이 어떻다는 것이냐. 이것을 버리는 날이 해제날이다. 세상 속 중생의 삶 속으로 들어가 선지식을 찾고 가르침을 구하라.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가고자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세상 속에서 문수의 지혜를 배우고 보현의 행원을 배워야한다.”

때로는 퀴즈 형식으로 대중들에게 절절한 자기 고백이 담긴 증도가를 부르기도 했다. 2015년 3월 동안거 해제 법회에서 무산 대종사는 법문 도중 상금까지 걸고 이색적인 퀴즈대회를 열었다. 질문은 “2015년 전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한 말은 무엇인가”였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그레이엄 무어의 소감이라고 일러줘서야 “이상해도 괜찮아, 남과 달라도 괜찮아(Stay weird, Stay different)”라는 답이 나왔다.

답이 나온 직후 무산 대종사는 자신에게 장학금을 받는 한 학생이 안거 중 쪽지를 넣었던 일화를 소개하며 법문을 이어갔다.

“그 학생이 날 찾아왔다가 안거 중이라 못 만나니까 쪽지를 남겨놓고 갔어. 학생이 내가 노망나서 무문관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신문서 읽은 모양이야. 학생은 조금 걱정이 됐겠지. 내가 노망나는 바람에 자기가 장학금을 못 받으면 대학도 못 가는데, 하는 걱정이. 그러다가 이런 생각을 한 모양이야. 장학금 못 받아도 괜찮아. 대학 못 가도 괜찮아. 편지를 보니 ‘노망나도 괜찮아’라고 쓰여 있는 거야. 그레이엄 무어가 아카데미상 수상 소감에서 ‘이상해도 괜찮다’고 말했다면서. 솔직히 말하면 동안거, 하안거 해제 법회 때마다 내가 다소 고민을 했거든. 공부하는 수행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법문이 없을까하고. 그런데 그 학생의 편지를 받고 내가 깨달았어. 특별히 감동을 주지 않는 법문이어도 괜찮다는 것을.”

무산 대종사의 법문은 간결했고, 날카로웠으며, 열려있었다. 이는 누군가에는 안심법문으로, 누군가에게는 금과옥조 같은 경구였고, 누군가에게는 경책이었다. 왜 일까. 매년 안거 결제·해제가 다가오면 무애자재하게 법을 전한 스승의 빈자리가 커질 것 같은 아쉬움이 먼저 드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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