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 시인의 무산 대종사 영전에 올리는 글

5월 26일 원적에 든 무산 대종사의 소제(小弟)인 오세영 시인(한국예술원 회원, 서울대 명예교수)이 대종사를 추모하는 조사를 본지에 보내왔다. 참 스승이었던 무산 대종사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담긴 오세영 시인의 글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5월 26일 원적에 든 무산 대종사.

부처님 오신 사나흘 지나 돌연히 날아든 스님의 입적 소식을 받잡고 소제(小弟)는 눈물보다는 황망하고 허탄한 마음 억제하기 힘들었습니다. 그간 맺은 사적 인연을 떠나 지금 우리 민족이 처한 엄혹한 현실을 직시할 때 무엇보다 또 한 분 시대의 큰 스승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돌아서서 냉정히 성찰해보면 당신의 부음은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좌절도 아니었습니다. 우리 중생의 머리에, 가슴에 내리치는 한 준엄한 죽비소리. 할(喝)! 그만큼 가르쳤으면 이제 너희도 또한 스스로 깨우쳐 이 땅에 불국정토의 이상을 실현하라는 당부 아니겠습니까?

사문(沙門)이 일생을 가는 도정에는 여러 갈래 길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대덕은 홀로 선방에 은거하여 한 생을 오로지 참선수행으로 바치시는 분도 있고, 어떤 대덕은 생활 속에서 불성을 실천하여 한 몸을 중생 구제하는 일로 바치시는 분도 있습니다. 평생 사문의 길을 걷는 동안 당신은 자주 당신이 ‘참 중’이 아니라 하셨지만 소제가 보기로 그 어떤 대덕보다 당신은 이 양자의 길을 하나의 사표로 성실히 걸으신 분이셨습니다. 실제 현실에서 진여(眞如)를 찾고 또 참선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으신 우리 시대의 보기 드문 보살행의 사문이셨습니다. 입적을 앞에 둔 80 노구에도 무애자재하게 매년 안거에 드신다는 것이 어디 흔한 일이겠습니까.

수행·자비행 아우르신 ‘참 스승’
어느 날 ‘큰 스님’이란 호칭에
“절간 어느 누가 더 크냐” 일갈
항상 대종사 주변엔 사람들 몰려
중생 보듬은 큰 정자나무 같았다

生死一如… 무엇을 더 탄하겠는가
대종사 가르침, 행동으로 실천해야

어느 날 소제는 당신을 모신 자리에서 무심결에 ‘큰 스님’이라는 호칭을 사용다가 야단을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불가에서는 모든 중생들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 물론 선림(禪林)의 수좌들이나 문중의 사문(沙門)들 사이에서도 어떤 차별을 두어서는 아니 된다. 나는 혹시 경문은 더 잘 외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음식을 만드는 일은 이 절의 공양주를 따라갈 수 없다. 절의 사무를 보는 사무장은 내가 할 수 없는 컴퓨터를 잘 다루고, 절의 셔틀 버스 기사는 내가 못하는 운전을 잘하니 이 절간에 누가 더 크고 고귀할 수 있겠느냐. 세상의 이치 또한 이와 같다. 이 세상 두두물물,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옆에서 지켜보면 당신 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거기에는 높은 관직을 가진 권력가들도, 돈이 많은 기업가, 유식한 지식인, 문화인들은 물론 이름 없는 중생, 장삼이사(張三李四)의 가난한 민초들이나 의지처 없는 노약자 등 일로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때 소제는 가끔 당신은 하나의 큰 정자나무요 당신을 찾아 몰려든 대중들은 그 나무에 깃을 친 뭇 중생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정자나무는 분명, <벽암록(碧巖錄)> 제18칙, 혜충(慧忠) 국사가 당나라 대종(代宗)에게 던진 화두에 등장한 바로 그, ‘무영수(無影樹)’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세영 시인(한국예술원 회원, 서울대 명예교수)

언제인가 당신은 제게 또한 당신의 불가적 깨달음이 사실은 수행시절 함께 생활했던 나병 환자와의 삶에서 비롯했다는 이야기를 들려 준적이 있었습니다. 나병이란 신체가 짓무르고 훼손되어 결국은 그 육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병이니. 이야말로 ‘나(我)’를 무화(無化)시키는 일 즉 제법무아(諸法無我)의 경지를 가리키는 비유가 아니겠습니까?

선(禪)의 제3조 승찬(僧瓚)의 별칭이 적두찬(赤頭瓚)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저로서는 한국선종의 비조(秘祖) 도의 선사의 정기가 서린 신흥사 문중에서 조계종단의 새로운 선풍을 진작시킨 당신이야 말로 현대 한국불교의 승찬이 아니실까 생각해 봅니다.

생사가 일여이니 더 이상 무엇을 탄하며 무엇을 서러워하겠습니까. 남겨진 우리로서는 스님의 그 크고 고귀하신 가르침에 마땅히 힘써 행동으로 실천할 따름입니다. 부처님오신날에 맞추어 입적하신 스님, 저세상에서도 필시 성불하시어 무간 지옥 우리 중생들을 무량 제도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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