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사형수 서채택

돈 문제로 다투다 살인까지 저질러
남겨진 두 딸, 비구니 스님이 거둬
감옥에서 佛恩 생각하며 불교 귀의
“내생엔 스님으로 다시 오고 싶어요”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말이 아니면 듣지 말라고 했던가. 사형수 서채택은 길이 아닌 길을 기웃거리고,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었다가 한 순간에 사형수가 됐다. 많은 사형수들과의 인연을 생각해 볼 때, 서채택과의 인연은 나에게 ‘인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해준 공부였다. 그가 사형수가 된 과정을 들여다보면 인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법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눈앞의 생이 오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서 씨는 사형수가 된 후 나와의 인연이 있기 전에 더 지중한 불연이 있었다. 서 씨는 “다음 생엔 출가자로 오고 싶다”고 말하고 형장에서 세상을 달리 했다. 그런 그의 발심은 한 비구니 스님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서 씨에게는 어린 두 딸만 있었다. 부인은 오래 전에 집을 나갔다. 서채택이 사형수가 되자 어린 딸을 보살 필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서채택의 아이들을 거두어 주지 않았다. 그 때,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서 씨의 소식을 듣게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인연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었다. 짐작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인연은 그렇게 닿아야 할 곳에 가 닿는 것이었다. 그 비구니 스님이 서 씨의 딸 둘을 거두었다. 서 씨의 불심은 거기에서 시작됐다. 아무도 거두어 주지 않는 자신의 딸들을 거두어 준 스님, 결국 자신의 뒷일을 거두어 준 것은 부처님이었던 것이다.

연대가 정확하지는 않다. 1980년대 중반쯤인 것 같다. 서채택은 시골 농부였다. 한 해에 두세 차례 밭떼기 장사를 했다. 한 해 농사를 마치고 농한기에 접어들면 농촌에서는 삼삼오오 이웃들이 사랑방에 모이고 어김없이 화투판이 벌어진다. 서 씨의 마을 역시 그랬다. 문제는 늘 화투판의 성격과 크기다. 놀이를 넘어 도박판이 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서 씨의 비극도 도박판이 되어버린 그 사랑방에서 시작됐다.

서 씨는 화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구경꾼이었다. 서 씨도 마땅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의 많은 시간을 사랑방에서 보냈다. 그 사랑방이 서 씨에게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이었던 것이다.

하루는 서 씨의 친한 친구가 화투판에서 돈을 모두 잃게 되었다. 그 친구는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서 씨에게 돈 2백만 원을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사건의 발단이다. 서 씨의 친구는 날짜까지 약속하며 돈을 빌려달라고 애원했다. 서 씨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돈 2백만 원을 빌려주었다. 그런데 서 씨의 친구가 돈을 따지 못하고 그 돈을 모두 잃고 만다. 당시의 2백만 원은 큰돈이었다.

서 씨의 친구가 서 씨에게 돈을 갚기로 약속한 날짜가 다가왔다. 서 씨는 친구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약속한 날이 되었는데도 친구는 오지 않았다.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서 씨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는 저녁밥상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친구는 서 씨를 보자 서 씨에게 술 한 잔을 권했다. 술잔이 오고 갔고, 두 사람은 얼큰하게 취하기 시작했다. 취기가 오른 서 씨가 돈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서 씨의 친구가 버럭 화를 냈다. 서 씨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말이었다. 아니 서 씨가 아니라 서 씨의 친구가 먼저 꺼냈어야 할 말이었다. 서 씨에겐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었다. 서 씨의 친구는 “화투판에서 빌린 돈은 빚도 아니다”며 화투판에서 빌린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억지를 부리며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다. 아니 도리어 화를 냈다. 서 씨는 배신감에 너무나 분했다. 은혜를 원수로 갚아온 것이다. 화가 난 서 씨는 친구의 멱살을 잡고 돈을 갚으라고 했고, 두 사람은 몸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몸 싸움이 점점 격해졌고, 이성을 잃은 서 씨의 친구가 창고에서 곡괭이를 들고 나왔다. 친구는 그 곡괭이로 서 씨의 정강이를 내리찍었고, 그러자 서 씨가 곡괭이를 빼앗아 친구를 내리쳤는데, 공교롭게도 머리를 때리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친구가 숨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황한 서 씨는 친구의 시신을 땅에 묻어버렸다. 그리고 얼떨결에 저지른 일이 엄청난 비극을 몰고 온다. 서 씨가 친구의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바로 자수했다면 애초에 비극은 없었다. 정상참작과 정당방위, 과실치사 등으로 서 씨의 죗값은 훨씬 가벼웠을 것이다. 박수 받을 일은 결코 아니지만 사형수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 보다 훨씬 가벼운 형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사형수가 되었다. 죄목이 ‘살인강도’였기 때문이다.

시체를 땅에 묻은 것도 큰 잘못이었지만 서 씨는 또 다른 실수를 범했다. 서 씨는 시체를 땅에 묻는 과정에서 시체의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돈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은 것이다. 살인에 강도였다. 참으로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 일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 한 사람, 아니 두 사람, 아니 네 사람, 아니 나는 차치하더라도 비구니 스님까지 생각한다면 많은 사람의 삶을 바꾼 것이다. 그러니 눈앞의 인연만이 인연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다고 인연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서 씨를 서울구치소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아주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는 “다음 생에 스님으로 오겠다”고 자주 말했는데 그 말 속에 들어있는 그의 불심이 무엇보다 내 가슴을 무겁게 했다. 자신의 두 딸이 부처님 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 서 씨의 마음속엔 그 때부터 부처님이 크게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는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부처님의 길을 걸었다. 생사를 넘어선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부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늘 사형수 앞에 서면 안타깝지만 유난히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서 씨의 딸을 거두어준 비구니 스님은 끝내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거부했다. 자신이 거둔 두 딸들의 장래를 걱정해서였다. 서 씨가 형집행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는 서 씨의 두 딸을 거두어준 비구니 스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서 씨의 두 딸을 만날 수 있었다. 착하게 잘 자란 두 딸을 보니 또 한 번 인연의 지중함을 새삼 생각했다. 착한 손길이 또 다른 착한 손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어진 손길을 만나고 갔으니 서 씨의 다음 생은 틀림없이 불가에 들었을 것이다. 이미 자신의 딸을 거두어준 스님을 스치고, 두 딸들 곁을 스치고, 나의 곁을 지나가고, 친구의 곁을 지나갔을지 모른다. 그 때, 나는 스님께 여러 번 고마움의 절을 하고 절을 나왔다. 나 또한 큰 공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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