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학의 한국산사의장엄세계] 한국산사 단청문양에 담긴 본질
[노재학의 한국산사의장엄세계] 한국산사 단청문양에 담긴 본질
  • 노재학 사진기자
  • 승인 2018.05.25 16: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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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머리초 단청은 ‘옴마니반메훔’의 조형
왼쪽에서부터 남장사 극락보전(두 장), 직지사 대웅전, 여수 흥국사 대웅전, 대구 용연사 극락전 대들보에 베푼 연화머리초 단청문양.
왼쪽에서부터 남장사 극락보전(두 장), 직지사 대웅전, 여수 흥국사 대웅전, 대구 용연사 극락전 대들보에 베푼 연화머리초 단청문양.

한국산사 법당은 연화장의 법계우주
한국산사의 법당 내부는 온통 연꽃 장엄의 세계다. 법당 안팎을 연꽃으로 장엄한 것은 대웅전을 비롯한 법당이 연화장세계이기 때문이다.

〈화엄경〉에서 연화장세계는 연꽃과 보배나무, 온갖 보석으로 장엄되어 있고, 오색구름이 자욱하며, 아름다운 음악과 향기로움으로 가득한 세계다. 천정 빗반자나 공포(栱包)의 순각판에 구름이 자욱하고, 천정 가장자리에 주악비천벽화를 그려 둔 뜻도 연화장세계의 장엄으로 보아야 한다. 연화장세계의 중심엔 비로자나불이 계신다. 비로자나불은 형상도 음성도 없다. 빛이고, 진리 그 자체다. 석가모니불은 무상정등각의 깨달음을 얻는 순간 법신불과 일체가 되었다. 한국산사 법당의 모든 장엄의 궁극은 진리와 자비로 가득 찬 법계(法界)로 통한다.

법당 건축의 핵심 건축부재는 대들보다. 중요한 역학 기능을 담당하는 만큼 가장 웅장한 재목의 특성을 갖는다. 크기만큼 단청장엄의 바탕으로 제공되는 화면도 크다. 중요하고도 시선을 끄는 그 화면에 어떤 교의를 담을 것인지 장인 예술가들의 고민은 애초에 상당하였을 것이다. 한국산사 법당 장엄에서 대들보 장엄에 정립한 패턴은 거의 한 가지로 통일되어 있다. 대들보 길이는 통상 10m 안팎이다. 어느 법당이든 대들보 장엄의 패턴은 양 끝에 연화머리초 단청문양을 입히고, 가운데 계풍엔 용틀임하는 용을 그려 넣는 것이 공식처럼 이뤄진다. 즉 대들보 단청장엄은 연화머리초-용-연화머리초의 패턴을 가진다.

단청의 핵심을 이루는 문양 역시 연화머리초다. 연화머리초의 구성은 대체로 여섯 가지의 소재를 갖는다. ①연꽃 외부를 둘러 싼 녹화(=골팽이), 곧 연잎, ②연꽃, ③석류동, ④보주, ⑤묶음, ⑥색파장인 휘(暉) 등이 중심요소를 이룬다. 연화머리초의 연꽃은 자연의 형태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도 있고, 이상적인 도안으로 승화시킨 연꽃도 있다. 연꽃의 형상을 어떻게 표현하였든, 조형원리와 조형에 담은 본질은 같다. 초록의 연잎으로 둘러싸인 가운데에 연꽃이 피어있다. 보통 잎은 생명력을 가져 끝자락이 돌돌 말려 있는 모양을 가진다. 연꽃 속에는 석류처럼 생긴 소위 ‘석류동’이 있다.

단청에서 말하는 석류동은 식물학으로 접근하면 생명의 원천인 씨방이다. 사실 국보 185호 『법화경』 사경첩, 보물 1138호 〈법화경〉 사경첩 등의 겉표지를 살펴보면 석류동을 정확히 암술, 수술이 그려진 씨방으로 그리고 있다. 씨방에서 씨앗이 쏟아져 나온다. 씨방조형에 담긴 본질은 생명의 매트릭스(matrix)이며, 결국 자비심이다. 연화 속의 씨방에는 여래장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연화좌-씨방-보주-묶음-빛의 발산
연꽃 속의 병 모양이 석류동이든, 씨방이든, 혹은 정병이든 조형원리는 연꽃 대좌에 봉안한 부처와 같다. 즉 불상 조형에서, 혹은 불화에서 연화좌 위에 모신 여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단지 조형언어를 통해 연화좌에 정좌한 여래를 연꽃 속의 씨방으로 나타냈을 뿐이다. 그 씨방에서 씨앗이 터져 나오듯 둥근 보주가 나온다. 단청에서는 ‘항아리’라고 부르지만 불교 최상의 꽃인 연꽃에서 항아리가 나온다는 표현은 터무니없다. 그런 용어들은 단청장엄의 내면에 깃든 숭고함의 정신을 심대하게 왜곡한다. 더구나 이 연화머리초 단청문양은 불교교의를 압축한 대단히 거룩한 상징조형인 까닭에 엄밀하고도 정확한 명칭이 적용되어야 한다. 항아리가 아니라 보주다.

왜 보주인가? 불상이나 불화를 떠올려 보면 보주일 수밖에 없는 실증의 힘을 가진다.

부처께서 연화좌에 정좌해 계시고, 부처의 머리 위로 보주가 솟아오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소위 부처님의 정수리 위에서 ‘정상계주’라 부르는 보주가 불쑥 솟는다. 특히 불화에서는 그 보주에서 광명 줄기가 나온다. 빛줄기는 처음에는 타래처럼 강력한 회전력으로 감겨 오르다가 구름 형상의 묶음이 있는 임계점에서 폭발하여 온 우주로 무한히 발산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연화머리초는 바로 이 장면을 압축한 것이다. 불화에서 여래를 표현하는 법식은 한결같다. 연화좌-여래-보주-묶음-광명의 푹발로 이어진다. 그것은 연화좌-씨방-보주-묶음-빛파장 휘 문양으로 전개되는 연화머리초의 구조와 완벽히 일치한다. 연화머리초에서도 씨방에서 보주가 나온 후 머리초를 복주머니 모양으로 오목하게 좁히는 묶음의 형상이 나온다. 머리초의 이 묶음은 공간을 폐쇄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공간에 대한 특별한 봉안의 의미이다. 동시에 보주로부터 나오는 빛 에너지를 강력하게 표출하기 위해 병목을 좁혀 흐름을 증폭시키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묶음을 지나면 바로 보주에서 나온 빛이 폭발해서 확산한다. 묶음이 일종의 특이점이다. 연화머리초에선 단청의 색 바림으로 빛의 파장을 표현한다.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색 파장을 단청에서는 ‘휘(暉)’라고 부른다. ‘휘’는 ‘빛’, ‘광채’를 뜻한다. 연꽃과 보주, 빛이 연화머리초 단청문양의 핵심을 이룬다.

연화 속 보주에서 나와 우주로 무한히 확산하는 그 빛은 무엇일까? 바로 무명을 밝히는 진리의 빛이다. 여래의 정상계주에서 나와 우주로 확산한 진리의 빛과 같다. 만유의 우주에 부처께서 광명으로 놓은 진리 법이 충만하므로 ‘법계우주’라고 부른다. 연화머리초 단청문양은 법계우주를 담고 있는 고도로 심오한 상징문양이다. 그런데 ‘휘’라고 부르는 색 파장은 진리의 빛을 보여주는 시각적인 표현인 것만은 아니다. 경전을 압축한 진리의 말, ‘진언(眞言)’의 청각적 울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왜 진언의 울림일 수 있는가?

내소사 괘불에서 석가모니불의 정수리 위로 솟구치는 보주와 빛의 발산.
내소사 괘불에서 석가모니불의 정수리 위로 솟구치는 보주와 빛의 발산.

연화머리초 본질은 연꽃 속의 보주
 연화머리초 단청문양이 담고 있는 본질은 ‘연꽃 속의 보주’다. 범어로 말하면 ‘옴마니반메훔’이다. ‘마니’는 ‘보주’이고, ‘반메’는 ‘연꽃’을 뜻한다. ‘옴’과 ‘훔’은 우주에 가득한 성스러운 소리다. 그래서 ‘옴마니반메훔’을 풀이하면 ‘연꽃 속의 보주’의 뜻을 가진다. 한국산사 장엄에서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단청문양인 연화머리초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형상도 ’연꽃 속의 보주’이다. 결국 ‘옴마니반메훔’을 시각화 한 단청문양이 연화머리초다. 이것은 경이롭고도 놀라운 사실이다. 필자는 이 사실을 부처님 오신 날에 드러내고 싶었다.

한국산사의 단청문양은 온통 ‘옴마니반메훔’ 육자진언의 장엄세계라 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불전건물도, 불상도 불화도, 석탑, 석등, 승탑, 사리장엄, 단청장엄 등등 그 모든 장엄의 근본에는 ‘연꽃 속의 보주’, 곧 ‘옴마니반메훔’의 구현에 있다. 심지어는 사찰가람마저도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물 위에 떠있는 연꽃 한 송이로 경영했다. 법당들은 연꽃 속 씨방에 있는 진리의 종자(種子)들이다. 통도사 대웅전이나 범어사 대웅전을 살펴보면 기단부에 연꽃을 새겼다. 지붕의 용머리엔 도자기 연봉을 얹거나 금속 보주탑을 올려 두었다. 연꽃과 보주로 장엄한 법당, ‘연꽃 속의 보주’다. 석등이나 석탑, 승탑 등에서 기단부엔 연꽃, 상륜부엔 보주를 장엄한 것도 ‘연꽃 속의 보주’가 지닌 진리의 빛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연꽃과 보주인가? 두 조형은 왜 하나의 일체를 이루는 것일까? 연꽃은 생명 탄생의 근원이다. 불교가 성립하기 이전부터 고대 인도에서는 연꽃을 생명 생성의 태반으로 보았다. 연꽃은 곧 생명과 자비를 상징한다. 반면에 보주는 빛의 근원이다. 보주의 빛은 물리적인 빛이 아니다. 탐진치(貪瞋癡) 삼독에 젖은, 마음 속 무명(無明)을 밝히는 진리의 빛이다. 즉 ‘연꽃 속의 보주’에서 연꽃은 자비, 보주는 진리로서 자비와 진리의 일체(一體)를 압축한 것이다.

자비와 진리는 불교교의의 근본이고 전부이다. 연화머리초는 연꽃 속의 보주, 곧 ‘옴마니반메훔’의 진언 성음(聖音)을 조형으로 구현한 성스러운 문양이다. 연화머리초에 육자진언의 염송이 깃들어 있다. 색파장인 ‘휘’가 소리의 파장이기도 한 이유다.

한국산사 단청은 교의를 담은 경전
법당은 그 육자진언의 단청문양으로 가득하다. ‘연꽃 속의 보주’를 조형화 한 연화머리초는 대들보에만 베푸는 것이 아니다. 온갖 건축부재 단청장엄에 두루 나타난다. 특히 창호 위 창방과 평방, 도리, 장여 등 비교적 큰 화면을 제공하는 부재에는 대들보에 시문한 머리초와 아주 유사한 문양을 장엄한다. 그런데 기둥머리인 주두(柱頭)라든지, 소로, 교두형 살미와 첨차, 천정반자의 종다라니 등 화면이 협소한 곳에는 어떤 문양을 시문할까? 연화머리초의 부분에서 모티프를 취한다. 대표적인 문양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주두, 소로 등: 서로 겹친 연잎을 표현한 겹녹화(=골팽이)에서 보주가 나오는 문양. ②첨차: 물결 모양의 색 파장인 휘의 골에서 보주가 나오는 문양. ③천정 종다라니: 연꽃을 녹색 연잎이 둘러싸고, 잎 사이로 보주가 나와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문양으로 베푼다. 공간의 화면 크기에 따라 연화머리초를 더 압축한 문양으로 장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산사 법당의 거의 모든 문양이 ‘연꽃 속의 보주’다. 더구나 천정의 우물반자에는 보다 직접적인 조형의 뜻을 드러낸다. 육엽연화문을 통해 여섯 꽃잎에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을 범자 종자자로 직접 심는 방식이다. 대다수의 육엽연화문 중심 소재는 연꽃과 보주, 육자진언이다. 한국산사 법당의 천정 한 칸 한 칸이 ‘연꽃 속의 보주’이다. 문양도 교의를 담은 경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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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해 2018-05-28 12:58:26
연화머리초에 숨겨진 조형원리를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깊은 영감 받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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