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터시(ecstasy)’는 자신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속박(束縛)하는 깊은 바다서 허우적 거리는 고통속으로 부터 빠져 나오는 행위를 말한다. 다시말하면 자신이 현재 처한 수동적이고 절망적인 상태서 벗어나 홀로서기 위한 도전이다.

일본에 하늘로 날라간 고이라는 물고기의 신화(神話)가 있다. 잉어과인 이 물고기가 불가능한 도전(挑戰)을 시도하기로 결심한다. 강물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까지 올라가 보는 목숨을 건 결단이다. ‘고이는 매 순간을 집중해 드센 물결을 헤치며 사투(死鬪)를 계속한다. 우리 중생은 지치면 다른 물고기들처럼 흘러가는 강물에 몸을 맡기고 한없이 흘러 가고도 싶어한다. ‘고이는 도도하게 흐르는 이 강물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알고 싶었다. ‘고이는 뾰쪽한 돌에 부딪혀 피가나고 다른 포식 어류들의 공격에 노출되지만, 이 강물의 원천(源泉)을 향해 외로운 여행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상류로 올라갈수록 물살은 더욱 거세지고 고이의 체력이 고갈됐을 때, ‘고이를 철저하게 좌절시킬 만한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폭포수가 앞을 가로 막는다. 여기서 고이는 불가능한 창의력(創意力)을 이끌어 낸다.

내가 비록 물고기이지만, 물고기 이기를 포기하겠다. 마치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는 것처럼, 지느러미와 꼬리를 날개로 만들어 단숨에 폭포위로 날아가면 되지 않을까

고이의 자기 믿음이 그 순간에 그를 한 마리의 용()으로 변용시켜 버린다. 마침내 고이의 신념이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고이는 그 강물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발밑에 아련하게 사라지는 폭포수를 눈물로 바라보며 하늘을 훨훨나르는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들의 신념인 이 뭣고는 사람의 정신과 우주의 무한한 지혜 사이를 연결해 주는 가교이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이 성장하는 비옥한 정원이며 그 속에서 인생의 모든 부()가 생산된다. ‘이 뭣고는 소위 기적이라는 것, 즉 논리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신비의 근원이며, 평범한 사고의 에너지를 영적 수준으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

거짓 나를 진아(眞我)로 착각함으로서 오는 죽음의 공포서
내가 본래 부처라는 믿음으로 이 뭣고하며 나아가면 그
자리가 곧 바로 생사 없는 해탈열반의 본고향인 것이다

이런 행위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勇氣)와 인내(忍耐)가 수반 되어야 하지만, 그 유일한 신무기(新武器)가 바로 이 뭣고이다.

당신은 시류(時流)에 떠내려가는 맥없는 피라미로 살것인가?

아니면 신념 이 뭣고로 뭉처진 성공신화(成功神話)의 활용(活龍)으로 우리의 생사없는 본고향인 자성불 자리로 환지본처할 것인가? 강물이 높은 산에서 시작해 마을과 들판과 큰강을 지나 사막에 이르게 되었다. 강은 사막에 흘러 들어가면 자신의 존재가 곧바로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돼 공포에 휩쌓이는데, 그때 사막 한가운데서 바람이 너를 건널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들려온다. 또한 고이와 같이 네가 강물이라는 아상(我相)서 벗어나, 그 바람에 네 자신을 맡기면 너를 증발시켜 가벼운 구름으로 만들고, 수 백리 산을 넘고 날아가 너를 광활한 바다에 안겨줄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도 거짓 나를 진아(眞我)로 착각함으로서 오는 죽음의 공포서 내가 본래 부처라는 굳은 믿음으로 이 뭣고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 그 자리가 곧 바로 생사(生死)가 없는 해탈열반의 본고향인 것이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시방세계현전신(十方世界現全身)이라, “백척이나 되는 장대 끝에 올라 갔으면 이 뭣고로 한걸음 더 나아가라, 그러면 비로서 너의 생사없는 본고향에 이를 것이라고 하였다. 생사(生死)도 바다의 물결이 천파만파 온갖 모습으로 물결친다 해도 바닷물의 본질은 그대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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