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일본여행의 추억

몇 년 전 겨울 금강경을 공부하는 도반 10여 명과 일본 규슈섬 남쪽 미야지키시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우리 일행이 머무는 곳은 태평양이 보이는 세라톤 호텔. 태평양 바다가 일망무제로 보이는 5층이었다.

1층에서 아침식사 중, 우리 일행을 안내한 사람은 한국말도 제법하는 일본 여성이었다. 말하는 태도는 단정하였고 용모 역시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말하는 태도나 용모를 보는 순간 어느듯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그에 대한 강한 인상은 비교적 과묵한 나로 하여금 서투른 일본말로 당신 인상이 참 좋습니다라고 이야기 하게 까지 하였다.

호텔방으로 돌아와서도 좀체로 이 사람에 대한 인상이 지워지지 아니하였다. 만면에 웃음을 띠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단정한 모습이 자꾸 마음 속에서 되풀이 되어 떠올랐다.

나이가 70세가 넘었을 뿐 아니라 무슨 생각이든지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 상당히 익숙하게 된 나였지만 그를 보는 순간 부처님께 바치는 능력은 다 사라지다니 이 무슨 일인가? 전생의 인연인가? 문득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공자님은 나이 70이 종심소욕 불유구라 하시지 않았던가? 금강경을 50년 읽은 사람사람이 공자님처럼 모든 욕망을 좌지우지 할 수는 없어도 업보를 보자마자 이끌리다니그러나 그런 부끄러운 생각도 잠시뿐 내일 아침도 그 자리에서 다시 식사하기로 예정되어 있으니 그를 또 만나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찬 기대감이 계속 부풀어 올랐다.

금강경 공부고 무엇이고 마음은 마냥 소년의 마음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가 준비해간 음식이 많이 남게되자 함께 간 도반들이 내일 아침은 잠자던 호텔방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호텔방에서 식사한다면 당연히 내일 그 일본여인을 만날 희망도 사라지게 된 것인데, 갑자기 마음이 쓸쓸해 지고 우울해졌다.

이런 부끄러운 생각, 우울한 생각은 나로 하여금, 다시 금강경 공부를 하게 하였다. 그리고 인상이 그 곱다는 얼굴이 과연 누구의 얼굴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하였다. 괴롭다는 생각이 과연 누구의 마음인가라고 스스로 진지하게 반문하게끔 만들었다.

선지식께서는 그 곱다는 그의 얼굴은 실은 그의 얼굴이 아니요 내 마음이며, 그로부터 나온다는 괴로운 마음 역시 다 내마음이라 하시지 않았던가?

금강경을 독송 중 이런 일체유심조의 깨달음이 들면서 우울한 생각이 사라지고 다시는 불 수 없다라는 생각 역시 마음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돌아오는 날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의 대형마트보다 훨씬 넓어 보이는 미야지키 쇼핑몰을 두루두루 휘저으며 우산이 있는 곳이면 다 살펴보는데 어느 큰 우산코너 근처에서 쉐라톤 호텔에서 본 일본 여인과 비슷한 여인의 모습이 눈에 띠는 것이었다.

아침에 떠난 쉐라톤 호텔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이곳에 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도저히 할 수 없었기에 비슷한 사람도 있구나하며 매장밖으로 나가려는데 아까 본 그 여인이 또 만나게 되었다.

그와 나는 동시에 !’ 하며 반기었다. ‘! 인연(因緣)이네요.’라는 소리가 내 입에서 튀어 나왔다. 인연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에게 글로 써 표시해주니 그는 즉시에 준비된 전자사전으로 그 한자를 치며 이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침 일요일이고 한가한 시간이어서 시장을 보러 왔다는 것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시간에 쫓기어 긴말을 하지 못하고 헤어질 수 밖에 없었지만, 몇 번 생각하여도 이 드라마틱한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나의 금강경 공부의 힘, 내 잠재의식이 만든 명령으로 시시각각 소원을 이루게 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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