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해 만든 연등, 세상을 밝히네

삽화: 김흥인

주름지 끝부분에 풀칠을 하고, 가지런히 모아서 두 번을 꼬아. 그러면 평평하고 네모난 종이 한 장에 둥그스름하게 부피가 생기면서 예쁜 꽃잎이 돼. 아이들은 예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손끝에 자꾸만 풀이 묻는다고 투덜거려. 하지만 난 꽃잎 만드는 게 신기해. 생명이 없는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린이 법회가 끝나고 연등을 만들고 있어. 부처님 오신 날에 우리가 만든 연등을 대웅전 앞에 걸어놓을 거래.

예쁜 연등을 만들려면 꽃잎 한 장 한 장이 예뻐야 한다고, 단단히 여미지 않으면 풀어진다고, 진영 스님은 아이들이 만든 꽃잎을 일일이 살펴보고 계셔. 내가 만든 꽃잎은 솔직히 예쁘지는 않아. 나는 손재주가 별로 없으니까. 진영 스님이 꽃잎 몇 장을 다시 만져주셨지. 스님의 손끝이 몇 번 스쳤을 뿐인데, 못생긴 꽃잎이 예쁘게 살아났어.
언니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언니는 뭐든 잘 만들었으니까. 병실에는 언니가 접어놓은 신기한 종이접기들이 가득했지.

“예쁘게 만들지 않아도 좋아요. 한 장 한 장 정성을 들여 만드는 게 중요해요.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한 정사에 머무실 때였어요. 국왕을 비롯해 나라 안의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수많은 등을 밝히고, 성대하게 음식을 공양했어요.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은 그 모습을 보고 공양할 것이 하나도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웠어요.”

아이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 진영 스님은 걸어 다니는 도서관 같아. 언제 어디서든 재미있는 이야기가 술술 나오지. 난타는 부처님께 등불 하나를 공양하고 싶었어. 하루 종일 구걸해서 번 돈으로 기름집에 가서 한 푼어치의 기름을 달라고 했지. 기름집 주인은 한 푼어치의 기름은 팔 수 없다고 했지만, 난타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 마음을 예쁘게 여겨 두 배의 기름을 주었대. 난타는 그 기름으로 등을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했지. 밤이 깊어 다른 등불이 모두 꺼진 후에도 난타가 바친 등은 꺼지지 않고 홀로 빛났어. 등불이 모두 꺼지기 전에는 부처님께서 잠들지 않을 거라 생각한 제자 아난다는 그 여인의 등불을 입으로 불어 끄려고 했지만 좀처럼 꺼지지 않았어. 그 모습을 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지.

“부질없이 애쓰지 마라. 그것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여인이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켠 등불이니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꽃잎을 종이컵에 붙여. 한 단에 다섯 장씩. 아랫단으로 갈수록 간격을 넓히며 꽃잎이 겹치지 않게 사이사이에 엇갈려 붙여나가지. 마지막엔 초록색 이파리를 붙이고, 연꽃 한 송이를 완성해. 예쁘지는 않지만 나는 정성껏 꽃잎을 붙이고 있어. 가난한 여인 난타처럼. 한 장 한 장을 붙일 때마다 마음으로 소원을 간절하게 빌어.

와! 하고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와. 투덜거리던 아이들은 완성된 연등을 보며 꽃보다 더 환하게 웃음을 터트리지. 연꽃 속에 소원지를 써넣고, 아이들은 자기가 만든 연꽃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대웅전으로 가. 진영 스님은 대웅전 앞에 걸린 줄 위에 아이들이 만든 연등을 걸어주고 계셔. 나는 스님께 말해서 연등을 가져가기로 했어.

침대 머리에 내가 만든
작은 연등을 걸어놓았어.
연등을 보는 솔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연등의 불빛은 작고 희미하지만,
가난한 여인이 밝힌 등불처럼
오래오래 빛날 거야.

 


이 연등은 솔비에게 줄 거야. 기억나, 언니? 백혈병 환우회에서 만났던 나와 동갑내기인 친구 솔비. 솔비는 이번에 기증자를 만나서 이식을 받게 됐어. 며칠 후에 무균실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 전에 문병을 가기로 했어. 엄마와 나는 지금도 가끔 환우회에 나가. 거길 뭐 하러 가느냐고 할머니가 싫은 소리를 하시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어. 그 애들의 기쁘고 슬픈 일들을 모른 체할 수 없게 되었지. 환우회에 가면 언니 생각이 나. 언니와 나 사이에는 기억할 추억이 별로 없어. 언니는 거의 병원에 있었고, 그때 나는 너무 어렸으니까. 엄마는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언니를 기억하기 위해서 가.

깜박 잠이 들었나봐. 현관문 여는 소리에 깨어났더니 어느새 거실이 어둠에 잠겨있어. 엄마는 불을 켜고, 거실을 둘러보고, 어리둥절해져서 눈을 깜박이는 나를 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어. 거실이 엉망이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잠들었거든.

엄마는 가방을 내려놓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부엌으로 가서 쌀을 씻어.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었던 걸까. 내가 집을 어질러놓아서 화가 난 걸까. 말없이 돌아서 있는 엄마의 등이 견고하게 서 있는 벽처럼 느껴져.

“어째서 할머니 집에 가지 않는 거니?”
엄마는 등을 돌린 채로 차갑게 말해. 나는 슬금슬금 엄마 눈치를 보며 거실을 치우고 있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참으려고 하는데도 스케치북 위로 후두둑 눈물이 떨어져.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거의 할머니 집에서 살았어. 엄마는 언니를 보살펴야 했으니까. 언니가 떠난 후에 엄마는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어. 학교를 마치면 할머니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거기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왔어. 주말에는 아예 거기에서 자기도 했고. 엄마는 할머니가 아파트 앞 동에 사셔서 정말 든든하다고 말하곤 했지. 그런데 나는 얼마 전부터 할머니 집에 가지 않아. 엄마도 할머니도 왜 그러느냐고 묻는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할머니 집도 우리집도 내가 있어야할 곳이 아닌 것 같아서 내내 마음이 불편해.

“네가 혼자서 이러고 있으니까 엄마는 일하면서도 걱정이 되고 불안해.”
“죄송해요, 엄마. 내가 쓸모없는 아이라서.”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 엄마가 쌀을 씻다말고 달려왔어.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보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니? 쓸모없는 아이라니?”
“나도 다 알고 있어요. 내가 왜 태어났는지.”

할머니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어. 할머니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 어렴풋이 ‘저 애가 그 애야?’하는 소리를 들었어. 나는 눈을 감고 계속 잠든 체하고 있었지.

엄마가 계획에도 없던 나를 낳은 것은 언니 때문이었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유전자가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을 수 없었으니까. 엄마는 언니의 동생을 낳기로 결심했어. 동생이 언니와 유전자가 일치할 경우는 넷 중에 하나. 그건 엄청난 확률이지. 다른 사람들 중 일치할 확률은 2만 명 중에 하나니까. 엄마는 임신 중에 신장이 안 좋아져서 거의 목숨을 걸고 아기를 낳았대.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나였어. 안타깝게도 나는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는 셋 중의 하나였지.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어. 하지만 동생은 세상으로 나오기 전에 이별을 해야 했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기억이 났어. 엄마가 며칠 동안 침대에 누워있었던 적이 있었어. 할머니가 미역국을 끓여서 엄마에게 가져다주었는데, 엄마는 국을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하고 울기만 했어. 그리고 얼마 후에 언니가 떠났지.

내 유전자가 일치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언니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친구의 언니들처럼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고, 내 머리를 빗겨주고, 나와 함께 놀아주었을 텐데. 그리고 언니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을 텐데.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나를 꼭 안아줬어. 우리는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었어. 한참을 울고 나서 엄마가 말했어. 언니를 위해서 나를 낳은 것은 맞다고. 하지만 언니를 위해서 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존재만으로도 모두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엄마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어. 그래도 알 수 있었지. 엄마의 품속이 무척이나 따뜻하다는 것과 엄마가 언니를 사랑한 것처럼 나도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마음속에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작고 까만 돌멩이가 조금 작아지는 것 같았어.

제대혈 은행에서 연락이 왔어. 내가 태어날 때 탯줄에 있던 혈액을 10년 동안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 혈액을 더 보관할 건지 기증할 건지 결정해야 한다고. 유전자가 일치했다면 언니에게 주었을 그 혈액 말이야. 기증한 혈액은 다른 환자에게 이식되거나 실험에 쓰일 수 있다고 해. 나는 엄마에게 기증하겠다고 말했어. 내 혈액이 언니를 살리지는 못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꼭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엄마는 ‘우리 연희 다 컸구나.’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

솔비도 솔비 엄마도 계속 웃고 있어.
솔비는 내일 ‘공포의 무균실’에 들어간대.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우리는 잘 알고 있어. 환자의 세포가 완전히 죽을 때까지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하는 동안 환자들은 수없이 토하고, 입안이 헐고, 기진해서 쓰러지지. 말 그대로 ‘피를 말리는 거’라고 솔비 엄마는 웃으면서 이야기해. 이식받은 세포가 몸에 잘 정착할 때까지 갈 길이 멀어. 하지만 솔비와 솔비 엄마는 멀리 보지 않기로 했대. 지금의 이 희망을 감사하게 받겠다고. 순간순간 솔비에게 다가온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겠다고.

병실 공기 속에 솜사탕이 둥실둥실 떠 있는 것 같아. 따뜻하고 달콤한 이 분위기를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 나는 한껏 들떠서 솔비를 위해서 위문공연을 했어.
‘헤이 유~ 에브리데이 위드 유~’

노래를 부르고, 뽀뽀를 날리고, 윙크를 하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춤을 췄지. 솔비는 배를 움켜쥐며 큰소리로 웃었어. 오래 전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침대 머리에 내가 만든 작은 연등을 걸어놓았어. 연등을 보는 솔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솔비가 무균실에 들어가면 연등은 홀로 병실을 밝힐 거야. 연등의 불빛은 작고 희미하지만, 가난한 여인이 밝힌 등불처럼 오래오래 빛날 거야. 솔비를 위해서 온 마음을 다해 만든 등이니까.

우승미 작가는
1974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빛이 스며든 자리」가 당선되었고, 장편소설 『날아라, 잡상인』으로 제33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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