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苦’ 해소하는 ‘불교’되자

삽화=강병호

 

한반도에 평화의 서광이 비추고 있다. 저 멀리 제주도와 마라도 남쪽 끝에서부터 압록강과 두만강 끝자락까지 평화의 기운이 물씬 풍기고 있다. 우리 민족의 앞날에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기대는 바로 ‘한반도 평화’다. 한국전쟁이 휴전이나 정전이 아닌 종전을 통해 전쟁을 끝내고 서로 상생하는 평화 체제가 이뤄지기를 모든 사람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새로운 평화불사, 통일 불사를 이루기 위한 길을 걸어보자. 〈편집자 주〉

한국사회 병폐, ‘민족고’서 비롯돼

우리 사회와 국가의 고통을 면밀히 보면 남북 분단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이는 바로 ‘민족 苦’인 것이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이 부처이고 졸리운 사람에게는 잠재워 주는 것이 부처다. 아픈 사람에게는 약이 부처다. 우리 남북 분단 상황에서는 부처님 법은 ‘평화’와 ‘통일’이어야 한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남북이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바로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러시아와 국교를 맺듯, 북한 또한 미국, 일본과 국교를 맺도록 우리가 이끌어야 한다.

남북분단이 사회 고통 양산
부처님 법 ‘통일’·‘평화’돼야
불교는 신앙이자 민족사상
구현 위해 불자 힘 모아야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이제 한반도의 눈과 귀는 북미정상회담으로 몰려있다. 가장 큰 기대는 비핵화와 미사일 감축일 것이다.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이제 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군비는 43조 가량이 된다고 한다. 북한이 1조 가량이다. 이 자원을 ‘민족고’ 해결에서 ‘민생고’ 해결로 전환한다면 우리나라의 여러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며 북한도 식량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북한과의 교류, 불교계가 앞서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그동안 우리 민족사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온 불교의 활약이 기대된다. 불교는 서기 392년 고구려 소수림왕 당시 공인이 됐지만, 남방전래설에 따르면 그 이전부터 우리나라 민간에 많이 퍼져 있었다. 한마디로 2000년 역사라고 볼 수 있다. 불교는 이후 1000년을 국교로 지정돼 융성한 한국종교 중 종가라 할 수 있다.

불교는 2000년 동안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를 형성했다. 민족의 가치관이자 관습, 전통, 생활이 바로 불교였다. 현재도 문화유산 중 많은 부분을 불교문화가 차지하고 있다. 이는 북한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 지역 사찰은 70여개로 조계종에서 신계사 복원을 했으며, 개성 영통사 등도 복원됐다. 북한 정부도 안변 서광사를 복원했다. 불교는 남북 공히 가장 중요한 민족문화유산인 것이다. 북한에서 불교는 우리 민족이 어려울 때 나선 종교이자, 고락을 함께한 종교로 남아있다. 우리 민족이 무궁화처럼 인욕하는 힘이 바로 불교에서 나왔다.

특히 북한에서는 대중불교를 펼친 원효 스님 등 불교 전반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이웃종교 중 기독교는 선교사들을 앞세워 들어 온 제국주의의 일환이라는 인식이 아직까지도 북한에서 있는 상황이다. 기독교계가 세계적인 구호기구를 앞세워 북한과의 민간교류에 물량공세 퍼붓고는 있지만, 불교에 보다 큰 가능성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남북불교계는 현재 같은 법회의식을 띄고 있다. 교리 또한 같다. 이는 조금만 교류가 된다면 함께 융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종교계가 먼저 화합과 소통에 앞장선다면 민족 화합과 통일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불교는 한반도 평화와 민족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외적, 내적 여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실천만이 남았다.

동질성 회복이 아닌 동질성 확인

그런 면에서 남북 불교교류는 북한과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로만 보였던 북핵 문제가 올림픽을 계기로 해결 될 수 있게 된 것은 스포츠 고유의 탈 정치적인 성격 때문이다. 이는 종교교류 또한 마찬가지다. 정치이념 및 사회제도의 차이를 떠나 함께 땀 흘리고, 상호 교감하다 보면, 서로를 포용하고 불신의 장벽을 허물 수 있게 된다. 인연과 연기를 중시하는 사상으로 나와 우리가 아니면 적이라는 유일신 사상에 대응해 호혜평등으로 상호 행복을 추구하는 기반이 된다.

그런 면에서 불교는 민간교류 협력에 최일선에서 앞장서야 할 당위성과 책무가 있다.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다. 한국종교 중 역사가 짧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경우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특히 그러하다. 기독교계는 현재 북한 이탈주민들의 남한정착지원, 조중 접경지역에서의 북한 이탈주민 보호, 통일사역자 양성 등에 나서고 있다. 북한 이탈주민 또한 남북 화해와 협력시대에 또 다른 통일 세력으로 나설 것이다.

불교는 다양한 분야에서 접근해 나가야 한다. 이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하지 못한 것이 크다. 지금도 부족하다.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현시대에 안살림에만 전전긍긍한다면 민족고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큰 나무도 작은 씨앗서 출발

한반도 평화체제의 물꼬가 터졌다면 이제 불교로 남북교류의 틀을 확대해보면 어떨까. 조선불교도연맹의 관계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연등회에 참여하고, 평양에서 남북공동기원법회가 열리는 그림 말이다.

부처님오신날을 계기로 남북 불자들이 소통하는 모습은 불자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에게도 큰 메시지를 줄 것이다. 이와 함께 불교계가 지니고 있는 북한지역 불교문화재 조사 및 복원, 북한지역 사찰 복원, 각종 인도적 지원과 교육 등 과제를 차츰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필요하다.

통일은 역사에서 찾아보면 외부 어느 세력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 민족, 그리고 해당 당사자들이 의기투합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이뤄지는 것이다. 이제 통일불사에는 모든 국민이 동참해야 할 때이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터럭 끝만한 씨앗에서 싹이 튼다’는 말이 있다. 남과 북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 국가 건설의 원대한 길을 걷는 것은 바로 지금부터의 실천에 달려있다. 1000만 불자가 자각을 통해 동참했을 때 한반도 평화의 큰 힘이, 그리고 새로운 빛이 보일 것이다.

법타 스님(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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