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티, 불국토를 이루는 기술

 

스마트시티가 가져오는 변화

최근 스마트시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국은 아직 조용한 편이지만, 조금만 해외로 눈을 돌리면 가히 스마트시티의 시대라 할만큼 거의 모든 나라, 모든 도시가 스마트시티를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선진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2012년에는 중국, 2014년에는 인도가 야심찬 스마트시티 계획을 발표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고, 현재도 수많은 후발국들이 속속 스마트시티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스마트시티에 대해 비교적 조용한 한국이 실은 스마트시티의 원조국이라는 점이다. 2000년대 초부터 인천 송도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만들어진 유시티(u-City)가 현재의 스마트시티에 불을 붙인 시발점이었다.

스마트시티는 한마디로 도시와 지능기술을 융합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이런 변화에 익숙해져 있다. 은행과 인터넷을 융합하여 온라인 뱅킹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정부와 정보기술을 융합하여 전자정부를 만들기도 했다. 쇼핑도 인터넷과 융합하여 전자상거래로 변한지 오래다. 이런 추세의 연장선상에서 도시가 각종 지능기술과 융합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스마트시티다. 이미 도시 곳곳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GPS를 버스에 부착하여 버스의 도착시간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CCTV를 달아 각종 범죄를 예방하는 것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화엄기반 연결성 원리 반영
불교 연기관 구현한 도시
인간, 지능 넘어 지혜 탐구
스마트시티 주축 나서야

하지만 앞으로 스마트시티는 이런 것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변화를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시티에 활용되는 각종 지능기술, 예컨데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 VR/AR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을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인공지능 하나만으로도 미국에 존재하는 직업의 47%를 자동화할 수 있다는 연구가 2013년 발표되어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직업의 절반 정도가 없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스마트시티는 이런 지능기술들을 모두 모아 총체적으로 활용하는 만큼 그 변화의 폭이 엄청날 것이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행히 스마트시티가 몰고올 변화는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기 보다는 도움을 주는 측면이 더 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지능기술은 개인정보 침해를 비롯해서 많은 역기능을 불러오기도 할 것이다. 그중 일자리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생계까지 위협할 절실한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으로 눈을 돌리면 스마트시티가 도시와 도시민의 삶을 업그레이드하는 많은 긍정적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인간 중심 도시 구성의 시발점

그 첫 번째 긍정적 변화는 도시의 창의적 진화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기존 도시들이 물리적 대응으로 도시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과 달리 스마트시티는 창의적 대응을 위주로 한다. 예컨대 주차문제에 대해 주차장을 늘리는 기존 방법 대신 공유기술을 활용하여 기존 주차장의 활용도를 높이고 자율주행자동차를 도입하여 차량의 수를 줄인다. 그 차이는 엄청나다. 기존 도시들은 도시문제와 물리적 대응을 반복하는 성장의 악순환에 빠졌지만, 스마트시티는 도시가 계속 더 좋은 상태로 진화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창의적 진화를 통해 오늘의 도시보다 내일의 도시가 더 살기 좋아지고, 오늘의 삶보다 내일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지속가능성장이 실현되는 것이다.

둘째 스마트시티는 새로운 경제활동의 장을 만들어준다. 자동화로 공장에서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과 달리 스마트시티는 도시에서 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해 준다. 스마트팜을 활용하여 도시농업이 가능하고, 로봇을 활용하여 집에서 물건을 제조하여 판매할 수 있으며,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지금까지 생각지 못한 혁신적 콘텐츠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스마트시티가 많은 일자리와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고 저명한 경제학자인 리차드 볼드윈(Richard Baldwin)은 20세기에 공장이 하던 역할을 21세기에는 도시가 수행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스마트시티는 인간중심의 도시를 만들 수 있다. 그 동안 각종 공공서비스와 도시운영시스템이 시민 개개인의 필요에 맞추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신 시민들이 주어진 환경에 맞춰 살아야 했다. 하지만 스마트시티가 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시민들이 도시의 운용 방향을 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공서비스도 시민 한사람 한사람에 맞춰 제공된다. 예컨대 노선버스가 미리 계획된 스케줄로 운행하는 것은 옛날 일이 될 것이다. 이동이 필요한 사람이 생기면 가장 가까이 있는 각종 운송수단을 연결하여 개인맞춤형 노선이 생기는 것이다.

불교의 관점에서 본 스마트시티

이런 스마트시티를 불교적 관점에서 해석해 보면, 세 가지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스마트시티는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을 구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 인과 연으로 연결되어 생명이든 사물이든 어느 하나에서 일어난 변화는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고, 또 역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연기론은 불교 세계관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 스마트시티는 마침 이 연기론을 가장 중요한 구성원리로 적용하고 있다. 소위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으로 대표되는 스마트시티의 연결성 원리는 도시에 있는 모든 사물, 모든 사람, 모든 정보, 모든 행위들을 서로 긴밀하게 연결하여 시시각각 변화는 도시 상황을 바로 인식하고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다.

스마트시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기론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스마트시티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하게 된다. 우리 몸의 한 부분이 아프면 몸 전체에 문제가 생기듯, 스마트시티는 어느 한 사람, 한 지역의 문제가 도시 전체의 아픔으로 번지는 연기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과거 산업사회사회가 저질렀던 물질중심의 기계적 발전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곧 나를 파괴하는 것이고, 우리 세대를 위한 이기적 행위가 다음 세대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연기적 세계관의 연장선에서 스마트시티는 화엄사상에서 말하는 ‘一卽多 多卽一’의 사회를 만든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작동원리는 화엄의 사상을 그대로 녹여냈다. 지능기술은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데이터에서 의미를 찾아 그것을 나에게 적용하는 일이고, 내가 만드는 데이터가 다시 사회에 흘러가서 다른 사람들의 의사결정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리는 판단과 내가 사용하는 서비스는 기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그동안 축적되어 온 지식을 하나로 응축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거꾸로 나의 판단과 행위는 사회 전체의 지식으로 발전해 간다. 이렇게 스마트시티에서 개별 시민은 사회 전체를 반영하고, 사회는 개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과 행위를 반영해 간다.

셋째 스마트시티에서 인간은 지능을 넘어 지혜를 추구하는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스마트시티에서 지능은 더 이상 인간의 독점물이 아니다. 읽고 쓰고 대화하고 예측하고 판단하는 일을 사람 보다 인공지능이 더 훌륭하게 해 낼 수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일이 단지 지능을 키우는 것이라면 스마트시티에서 인간은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존재가 된다. 서구의 합리주의적 사상체계가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을 두렵게 받아들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서구 합리주의에서 인간의 일은 합리성과 지능을 키우는 것으로 집약되는데 인공지능과 로봇이 그 일을 대신하는 시대가 되니 인간은 더 이상 할 일도 존재이유도 찾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교사상은 지식과 지능의 테두리에 인간을 가두지 않는다. 이를 뛰어넘어 지혜, 즉 般若 혹은 ‘쁘라기냐’를 찾는 것이 더 큰 의미이자 도전이 된다. 단지 겉으로 들어난 데이터와 지식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참된 지혜를 찾는 것이다.

이런 구분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합리적 능력을 대체하는 스마트시티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겉으로 들어난 지능과 합리성을 찾는 일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인간은 끊임없이 수행에 정진하는 새로운 사회가 열린다. 달리 말해 스마트시티의 스마트 시민은 도시가 제공하는 편리한 기능을 그저 누리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그런 편의를 바탕으로 참된 지혜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능동적 구도자가 되는 것이다. 스마트시티의 공동체는 바로 이런 인간의 도전을 돕고 이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불교공동체의 역할

스마트시티는 불교공동체에게도 큰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다. 속세의 모습이 달라지는 만큼 속세를 이끌어야 할 불교공동체의 역할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새로운 만남의 방식이다. VR/AR 같은 가상공간을 통해서 만날 수도 있고, 인공지능을 매개로 만날 수도 있다. 또 속세와 떨어진 산사에 자율주행자동차가 연결되어 신도들이 언제든 편리하게 오고가게 할 수 있다. 사찰에 스마트시티의 기술을 적용하면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을 대폭 덜어낼 수 있고, 인간은 수행정진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불교공동체가 스마트시티 안에서 새로운 위상과 위치를 차지하여 양자가 함께 성장하는 상생모델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불교공동체가 해야 할 보다 중요한 역할은 사람들의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일이다. 스마트시티는 사람들이 아무 번뇌와 고통없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다. 그동안 익숙해진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관계, 활동양식을 만드는 근본적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만큼 불교공동체가 적극적으로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 특히 스마트시티에서 시민이 해야 할 역할이 지혜를 키우는 일이라면 이를 누구보다 잘 도와줄 곳이 불교공동체이다. 새로운 사회가 새로운 세계관과 새로운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만큼 불교공동체가 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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