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 사중화합과 사찰성장 초석

지난 겨울 촛불집회서 시민들과 소통하는 스님의 모습. 소통은 승단을 건강하게 하고 불교를 발전시키는 근본 힘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의사소통을 중요하게 인식한다. 현대사회의 주요 문제인 사회갈등의 기저에는 의사소통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 층간소음과 주차문제 등으로 인한 이웃과의 갈등,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의견 차이로 발생하는 세대갈등, 노동자와 기업 간 요구나 욕구의 충돌로 인한 노사갈등 등은 모두 의사의 불통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사찰은 이러한 갈등과는 거리가 먼 평온한 화합의 공간으로 여겨지고는 한다. 사람들은 사찰이라고 하면 우선 산새가 지저귀고 계곡물이 흐르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자연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법담(法談)과 덕담(德談)이 흐르는 정겨운 모습을 연상한다. 하지만 사찰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장소이기에 실제로는 이러저러한 갈등들이 존재한다. 때로는 승가(僧伽)의 어원이 화합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의 갈등이 노정되기도 한다.

의사소통은 공감서 시작
불통의 조직 화합 해쳐
의사결정 주체로 인정해야

사찰은 깨침의 길, 진리의 길을 함께 가는 ‘길동무(道伴)’의 모임이요, ‘좋은 벗(善友)’의 무리이며, 불교의 이상인 깨침과 자비의 실현을 위해 모인 자발적인 신행 공동체로서 우유와 물이 한맛(一味)이 되는 화합을 생명으로 하여야 한다.

<증지부(增支部)>는 “세상의 일들을 함께 하고 서로 위로하고 다툼이 없으며 우유와 물이 화합하듯 자비의 눈을 갖고 사는 비구의 모임을 화합된 무리라 하며, 이러한 부처님의 교단은 세상 사람들의 위없는 복밭이니라”라고 승가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승가 화합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계(戒)·견(見)·이(利)·신(身)·구(口)·의(意)의 화합인 이른바 육화경(六和敬)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 기억하고 사랑하고 존중해야 할 여섯 가지 화합하는 방법이 있다. 이 법에 의하여 화합하고 다투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첫째, 같은 계율을 같이 지켜라. 둘째, 의견을 같이 하라. 셋째, 받은 공양을 똑같이 수용하라. 넷째, 한 장소에 같이 모여 살아라. 다섯째, 항상 서로 자비롭게 말하라. 여섯째, 남의 뜻을 존중하라”이다. 그런데 이 육화경의 조목은 모두 의사소통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같은 계율을 같이 지키고, 의견을 같이 하고, 받은 공양을 똑 같이 수용하고, 한 장소에 같이 모여 살고, 항상 자비롭게 말하고, 남의 뜻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를 실천하기 위한 상호간 소통이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사찰의 의사소통은 승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찰은 스님만의 수행과 생활을 위한 전유 공간이 아닌 스님과 신도의 공존과 공유의 공간이다. 사찰의 화합은 승가뿐만 아니라 사중의 차원에서 요청되는 것이다. 이러한 필요와 요청에도 불구하고 사찰에는 의사의 불통이 심각하게 대두되고는 한다. 그 중에서도 스님과 신도간 불통은 아예 매너리즘(mannerism)이 되어버린 지경이다. 스님과 신도 사이에 의사소통이 아닌 의사전달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간에 의사소통이 원활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전달과 의사소통은 다르다. 의사소통이란 하나의 과정으로써 전달의 과정뿐만 아니라 변화의 과정을 포함하여야 한다. 의사소통은 인간관계의 과정이며 영향력을 주는 형태이다. 즉 의사소통이란 전달자와 수신자 사이의 상호인격적 작용을 통하여 메시지를 이해하고, 의사를 수용하며, 나아가서 수신자의 변화를 기대하는 총체적 과정을 의미한다.

스님과 신도간 의사의 불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의사소통과 의사전달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 양자간 의사소통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스님이 매양 신도에게 자신의 의사를 지시하거나 전달하는 수준의 모양새다. 이는 의사전달이지 의사소통이 아니다. 의사소통은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나 의사전달은 일방향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는 서로가 공감하여 화합할 수 있으나, 후자는 서로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여 불화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사찰에서의 바람직한 의사소통은 무엇일까? 의사소통이란 언어, 문자, 그리고 표시로 전달하고 또한 그것을 받아들여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의사소통에서 중요한 사실은 단순히 의사·정보·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전달자가 의도하는 변화를 초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하려고 노력한 것만으로 의사소통이 되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 말을 전달하고 메모나 메시지를 남겨둔 것으로 완전한 의사소통이 되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그것은 의사전달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소통은 아랫사람보다는 윗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찰에서는 스님이 신도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이해하겠다는 마음과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스님이 총명(聰明)해져야 하는 것이다. 총명은 귀가 밝고 눈이 예민하다는 의미이지, 말을 잘하거나 말이 많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천(人天)의 스승인 스님은 총명해야 한다. 스님은 신도에게 말하고 지시하기를 앞서 신도의 이야기와 생각을 듣고 보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의사소통은 화합뿐만 아니라 성장에 있어서도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우리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조직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하여 성장할 수도 없음을 잘 안다. 사찰에서도 스님과 신도가 의사를 소통해야 화합할 수 있는 것이고 화합해야 사찰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소통은 어떻게 사찰성장을 이끄는가? 의사소통은 공감대 형성, 갈등 예방과 갈등 해소, 참여의식 제고 등의 기능을 하기에 사찰성장을 이끌 수 있다.

첫째, 의사소통은 공감대를 형성해준다. 사찰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신도 개개인의 노력을 한 방향으로 통합시켜야 하는데 이때 의사소통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개개인으로서의 신도는 저마다의 개성과 특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대하는 태도와 대처하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천차만별의 사람들을 공동의 관심사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스님은 중요 사안을 전체 신도 앞에 공지하고 그 사안을 설명하고 공동의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만일 스님이 중요 사안을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처리한다면 신도는 사찰 일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사찰은 군대와 같은 강제성이 발휘되는 조직체가 아니다. 사찰은 자발성이 충분히 발휘되어야 하는 조직체다. 그렇기 때문에 자발성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의사소통이 스님과 신도 사이에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의사소통은 갈등을 예방하고 해소해준다. 인간이 모여 만든 조직이면 어느 조직이든지 갈등의 문제는 있게 마련이다. 사찰은 상하의 계급적 질서가 있는 조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는 이러한 질서가 존재한다. 이러한 사찰의 특성 때문에 조직 내부에 갈등이 표출되기도 한다. 갈등이 야기되면 상처를 받는 개인이나 집단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활발한 의사소통은 사찰내 계급 혹은 계층간 갈등의 요소를 사전에 제거해주고나 발생한 갈등을 해결해 줄 수 있다.

셋째, 의사소통은 참여의식을 제고시킨다. 사찰에서 충분한 의사소통은 신도로 하여금 자신을 사찰 의사의 결정 주체로 인식하게 하고 구성원으로서의 자긍심과 소임에 대한 만족감을 가지게 한다. 의사소통이 상하좌우로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사찰은 신도의 동기를 충분히 유발시킬 수 있다.

이러한 동기유발은 신도로 하여금 주인의식을 가지고 사찰 일에 참여하게 한다. 즉 사찰의 주체로서 자신을 의식하고 주인이 심혈을 기울여 가정을 돌보듯 사찰을 돌보게 하는 것이다. 사찰은 조직구성의 강압성이나 업무의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신도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게 하는 것은 의사소통의 중요한 기능이다.

최근에 와서 의사소통의 필요성은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대두되고 있다. 한국불교 역시 사부대중 공동체를 표방하면서 의사의 불통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달리 표현하면, 의사소통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불교의 스님들은 승속(僧俗) 차별의 권위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한 권위의식은 스님과 신도간 의사를 소통이 아닌 전달로 만들어 버렸다. 일방적인 의사전달이 주로 이루어지는 조직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화합하기가 어려우며, 화합이 어렵기에 성장하지 못한다.

한국불교의 의사소통은 교단과 종단 그리고 사찰의 성장과 직결되는 시대적 과제이다. 현대는 의사소통이 성장을 담보하고 있으며 이것이 낙후된 사회나 조직은 생존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시대의 한 가운데 서 있는 한국불교는 의사소통에 관심을 가지고 스님과 스님, 스님과 신도, 신도와 신도가 원활하게 의사를 소통하는 사부대중 공동체를 구성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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