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김행수(65)와 배우 전무송(77)

서울예술대학 선후배 사이인 배우 전무송(우측) 씨와 영화감독 김행수 씨는 오랜 시간 다른 길을 걸어 2015년에 같은 길 위에서 다시 만났다. 제작을 앞둔 불교영화 ‘공유’의 감독과 주연 배우로 만난 두 사람은 영화의 크랭크인을 위해 한마음으로 뛰고 있다. 영화가 불교영화인 만큼 불교계의 관심을 기대하고 있는 두 사람이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만나 서로 안부와 격려를 나눴다. 사진=박재완 기자

 

부처님의 법이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 열반 후의 결집을 시작으로 오랜 세월 동안 전법불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시절은 아득한 시절이 된지 오래고, 전법의 모습도 시대를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해 왔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전법의 전범은 무엇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법당에 대중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전법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의 글자만으로 전법을 다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전법은 미디어는 물론 예술과 학술, 교육 등 다양한 형식과 채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전법의 형태가 다양해진 만큼 실천의 문제가 복잡해졌다. 자금도 필요하고, 조직도 필요하고 때로는 정치도 필요하게 됐다. 그 실천의 문제로 힘든 길 위에 서있는 도반 둘이 있다. 불교로 영화 만드는 김행수 감독과 영화로 불교에 귀의한 배우 전무송이다.

불교로 영화하는 김행수
영화 제작비 마련 위해
시나리오 ‘공유’ 소설로 출간
빈약한 불교영화 제작에 환기
“불교영화 제작비 마련 어려워,
불자와 불교계 관심과 동참을”

1985년 영화 ‘단’으로 데뷔
평생의 영화테마로 ‘불교’선택
다큐 ‘지장보살 김교각’ 제작
새 영화 ‘공유’ 크랭크인 눈앞
“불교 창작물 더 많이 나와야”

 

서랍 속의 시나리오
지난 3월, 불교 소설 한 권이 출간됐다. 영화감독 김행수의 소설 〈공유〉이다. 이 책은 이미 오래 전에 김 감독이 완성한 동명의 시나리오를 소설로 출간한 것이다. 흔히 볼 수 없는 일이다. 보통은 소설이 먼저다.

김 감독은 오래 전에 시나리오를 완성했으나 제작비가 마련되지 않아 시나리오는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했고 오랜 동안 서랍 속에 있어야 했다. 김 감독은 영화 제작비 마련을 위한 오랜 모색 끝에 시나리오를 소설로 출간했다.

소설 〈공유〉는 ‘진공묘유(眞空妙有)’에서 왔다. 소설은 주인공인 노장 묵계 스님의 모습을 통해 불교와 삶을 이야기한다. 묵계 스님의 수행자로서의 모습과 깨달은 바를 제자에게 전하는 과정에서의 고뇌와 실천의 모습을 통해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 감독의 이번 소설과 시나리오는 오랜 동안 창작 불교영화의 제작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그 의미와 기대가 크다.

“소설 〈공유〉와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 ‘공유’는 소설과 영화이기 이전에 부처님 말씀이 담긴 불사입니다. 오래 전, 영화 ‘만다라(1981년, 감독ㆍ임권택)’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년, 감독ㆍ배용균)’이 커다란 전법의 역할을 한 바가 있습니다. 3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오늘날에서 30년이란 세월은 너무나 많은 변화를 이룰 수 있는 긴 세월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많은 변화와 빠른 진화가 거듭되고 있지만 불교영화는 그렇지 못한 실정입니다. 예전의 영화 한 편이 해 낸 일을 오늘의 우리는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합니다. 절 짓고 법회 한 번 여는 것도 불사이겠지만 좋은 불교영화 한 편 만드는 것 역시 큰 전법이고 포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두 영화는 각각 큰 성과를 이루었다. 우선 우리 영화를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또 하나는 영화가 불교를 알리는 일이 됐다. 영화는 유럽과 미국 등 불교의 저변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지역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몇 년 후, 유럽과 미국에서는 불교와 관련된 협회와 불교국제영화제가 생긴다. 물론 두 영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두 영화가 뿌린 씨앗의 열매가 분명하다고 했다. 김 감독이 불교영화를 하는 이유다.

지장보살 김교각을 찾아서
김 감독은 1985년 김정빈 원작의 영화 ‘단’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흥행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김 감독은 오랜 시간 고단한 길을 걷게 된다. 데뷔작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감독에게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힘든 시간이 의미 없는 시간만은 아니었다. 김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자신이 추구해야 할 테마를 찾을 수 있었다. 그가 찾은 테마는 ‘불교’였다.

김 감독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엘 다녔다. 김 감독에게 불교는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김 감독의 정서 깊숙이 심어진 불교가 김행수의 영화와 만난 것이다.

“어느 날, 오래 전에 신문에서 읽었던 김교각 스님에 대한 기사가 문득 떠올랐어요.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국여행이 쉽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그곳에 가야만 김행수의 영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가지 않을 수 없었죠.”

1990년, 김 감독은 김교각 스님의 등신불을 모신 중국의 구화산을 찾아간다. 김 감독은 교각 스님의 등신불이 모셔진 성지를 돌아보면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환희와 인연법을 만난다. 김 감독은 귀국하여 교각 스님과 지장보살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고, 이듬해 다시 구화산을 찾는다. 그리고 교각 스님에 대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제작한다. ‘지장보살 신라승 김교각’이다. 교각 스님에 대한 최초의 다큐멘터리였다. 그 때부터 김 감독의 종교는 지장보살이었다.

“불교는 이미 저에게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밥상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막연하고 절대적이지 않은 불교였죠. 어머니가 물려주신 유품 같은 것이었죠.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았고, 크기가 없다고 생각했던 저의 종교가 저를 따라 자라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넓어지고 커지는 만큼 나에게 심어졌던 어린 시절의 불교도 함께 자라고 변화된 것 같아요. 교각 스님과 지장보살을 알게 되고,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지장보살을 닮고 싶어졌어요. 지장보살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결국은 참다운 불자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불교영화를 꿈꾸는 이유도, 방법도 거기서 출발하고 싶어요.”

김 감독은 교각 스님의 다큐멘터리를 비디오테이프로 출시했다. 비디오 판매수익으로 교각 스님에 대한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비디오테이프는 생각처럼 많이 팔리지 않았다. 또 한 번의 좌절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김 감독의 불교영화에 대한 원력은 더욱 단단해졌다. 더 깊은 공부를 찾아 나섰고 더 단단한 시나리오를 쓰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김 감독은 언젠가 다가올 기회를 기다렸다.

“영화뿐만이 아니라 문학,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불교’를 담은 창작물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전법이고 포교의 전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불사의 중요성을 모든 불자들과 불교계가 좀 더 깊이 인식하고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감독은 불교에서 영화의 테마를 찾고 교각 스님과 지장보살을 마음에 담은 이후로 불교영화에 대한 원력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김 감독의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늘 제작비가 문제였다. 불교계 안팎에서 여러 곳을 두드려왔지만 제작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김 감독은 불교계 밖은 내버려두더라도 불교계 안에서의 힘겨움에는 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자신이 영화감독으로 사는 한 자신의 테마는 불교라고 했다. 그리고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김 감독은 영화 제작에 대한 시절인연은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함께 모색하며 걸어갈 수 있는 도반을 만난다. 배우 전무송이다.

김 감독은 영화 ‘공유’의 주인공인 묵계 스님 역에 배우 전무송을 캐스팅했다. 37년 전 ‘만다라’에서 지산으로 살았던 전무송이다.

“딱 한 사람, 전무송밖에 생각나지 않았어요.”

2015년, 김 감독이 야심차게 계획했던 영화 ‘건반 없는 피아노’가 크랭크인 직전에 무산됐다. 역시 제작비가 문제였다. 그 때 김 감독은 전무송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었다. ‘건반 없는 피아노’의 주인공 이름도 ‘묵계’였다. 아쉽게도 영화의 제작은 끝내 무산되었고, 전무송은 묵계라는 이름으로 출가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아쉽고 미안했다. 첫 만남이 바로 헤어짐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37년 전 지산의 이름으로 불교에 귀의한 전무송에게 김행수의 불교가 묻어있는 ‘묵계’의 이름을 주고 싶었다. 지산을 시작으로 거듭된 전무송의 깊어진 불교가 이제는 또 다른 이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지산이 묵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우 전무송이 출연한 영화 ‘만다라’의 장면. 이 영화에서 배우 전무송은 지산 스님의 역할을 맡아 처음으로 삭발하고 법의를 입었다.
배우 전무송이 출연한 영화 ‘만다라’의 장면
1991년 김행수 감독이 제작한 다큐 ‘지장보살 신라승 김교각’의 한 장면.

 

영화로 불교 배운 전무송
임권택의 ‘만다라’로 영화 데뷔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 신인상
원효 등 불교적 인물 다수 연기
“영화하면서 불교 알게 되고,
불교공부하면서 연기도 깊어져”

영화 ‘공유’의 묵계 역 캐스팅
연극, 드라마, 영화 수십 편 출연
“37년 전 지산 역으로 삭발염의
노장 묵계 역으로 회향하고 싶어”

 

‘만다라’의 지산, 노장 묵계를 만나다
“정말 하고 싶었던, 기다렸던 배역이었어요. 영화 ‘만다라’에서 처음으로 불교를 만났고, 그 이후로 ‘원효’ 등 많은 불교영화에서 불교적 삶을 살았어요. 영화를 한 편 한 편 끝낼 때마다 영화는 제게 ‘끝’이라는 생각보다는 무언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 했어요. 언제부턴가 불교에 가까이 가있는 전무송이 보이기 시작했죠. 영화로 불교를 배우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작품 하나가 끝날 때마다 또 다른 작품이 기다려졌어요. 깨달은 법을 제자에게 전하는 묵계 스님의 역할은 저의 가슴을 또 한 번 뛰게 했죠.”

2015년 영화 ‘만다라’ 속의 지산 스님이었던 배우 전무송은 김행수의 영화 ‘건반 없는 피아노’를 통해 김행수와 만났다. 그리고 올해 봄 그의 작품 ‘공유’와 다시 만났다. ‘공유’의 시나리오를 읽고 난 전무송의 마음은 또 한 번 출가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뛰었다.

김행수 감독이 영화 ‘공유’의 주인공인 묵계 스님 역으로 떠올린 배우는 딱 한 사람, 전무송뿐이었다고 했다. 전무송 씨 역시 김 감독의 시나리오를 보고 ‘공유’ 속의 묵계 스님은 해보고 싶은 역할이며, 가보고 싶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배우 전무송, 영화에서 불교를 만나다

연극배우로 이름을 쌓아가고 있었던 전무송은 1981년, 영화 ‘만다라’의 지산 스님 역할로 영화에 발을 디딘다. 그리고 지산을 연기하면서 불교를 만난다. 배우 전무송은 처음으로 삭발을 하고, 법의를 입는다.

영화 ‘만다라’에 캐스팅되기 전까지 전무송은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전무송은 막막했다. 더구나 영화 속의 지산은 진리와 무명 사이에서 번뇌하는 중생 중의 중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무송에게 ‘지산’은 배역이라기보다 가야 할 길이었으며, 넘어야 할 산이었다.

“영화 ‘만다라’의 원작인 소설 ‘만다라(김성동 저)’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나의 배역인 ‘지산’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죠. 지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불교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그리고 지산을 연기하면서 연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됐어요. 그동안 ‘나’가 없는 연기를 하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학교에서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연기, 연출가의 지시에 의한 연기만을 해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지산’은 전무송에게 쉽지 않았다.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었으나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전무송 안에는 향 한 자루 없었다. 전무송은 지산의 번뇌를 알 수 없었다. 번뇌하는 지산의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번뇌해야 했다.

어느 날, 그 막연하고 답이 없는 시간 속에서 그는 자신이 오랜 세월 연극배우로서 자신을 찾으려 했던 자신의 모습을 지산 위에 올려본다. 같은 모습이었다. 전무송의 지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촬영이 거듭되면서 지산에 가까워졌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교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영화 ‘만다라’는 그해 대종상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7개 부분의 상을 수상했다. 전무송은 남우조연상과 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또한 영화는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하며 한국의 영화와 불교를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전무송 씨는 그 후로 드라마 ‘원효대사’를 비롯해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성철’, ‘동승’ 등 불교를 소재로 한 영화에 출연했다. 전무송 씨는 지금까지 불교영화를 비롯해 ‘햄릿’,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수 십 편의 연극과 영화에 출연했다.

이제는 같은 길에 선 도반
전무송은 여러 불교영화의 배역을 거치면서 불자가 되었다. 마치 출가자가 한 단계 한 단계 공부를 쌓아가듯 배역을 하나하나 지나갈 때마다 새로운 답안과 의문들이 이어졌다. 하나를 넘고 나면 또 다른 공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연기는 이제 ‘공부’가 되었다. 놓을 수 없는 공부가 되었다. 그래서 영화 ‘공유’의 묵계는 지금까지의 전무송을 또 한 번 점검하는 영화이며, 공부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연기를 하면서 얻은 ‘불교’와 일상적인 삶을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묵계 스님을 한 번 살아보고 싶어요. 영화 ‘공유’가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배우 전무송 역시 묵계라는 법명을 받은 이후로 ‘공유’의 크랭크인을 위해 김행수 감독과 함께 간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배우 전무송과 감독 김행수, 두 사람의 인연은 그보다 한참 더 오래 전인 20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감독과 배우로서 만난 것은 2015년이지만 두 사람은 서울예대 동문 선후배사이로 이미 동시대를 살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길을 걸었다. 김행수는 영화였고, 전무송은 연극이었다. 김행수가 구화산을 찾아 교각 스님을 만나면서 ‘김행수’의 불교를 꿈꿨고, 배우 전무송은 지산이라는 이름을 받으면서 불교에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커다란 회향 앞에 함께 서게 되었다. 다른 길을 걸어와 이제는 같은 길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배우 전무송은 “김행수 감독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며 “김행수 감독은 불교계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다”고 했다. 또한 김행수 감독은 “영화 ‘공유’의 묵계 역은 불교적인 삶을 살지 않는 배우는 할 수 없는 역할이다”며 배우 전무송이 왜 불교영화 캐스팅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배우인지 설명했다. 영화 ‘공유’의 크랭크인과 스크린에서 전무송이 또 한 번 출가하는 날을 기다린다.

영화감독 김행수는…

1953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영화과를 졸업했으며, 1985년 영화 ‘단’으로 데뷔했다. 1991년 교각 스님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지장보살 신라승 김교각’을 제작했으며, 2018년 3월 소설 ‘공유’를 출간하는 등 불교적인 영화 작업을 해오고 있다. 한국영화감독협회 부이사장,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 춘사대상영화제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청소년 세상충돌공모전 조직위원장, 밀짚모자영화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배우 전무송은…

1941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했으며, 1964년 연극 춘향전으로 데뷔했다. 50여 년 동안 ‘만다라’, ‘아제아제바라아제’ 등 60여 편의 영화와 ‘햄릿’, ‘아버지’ 등 20여 편의 연극, ‘빙정’ 등 20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안양대학교 공연예술학과 교수와 경기도 도립극단 예술감독, 지구촌공생회 홍보대사, 거창국제연극제 홍보대사 등을 역임했다. 제20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과 신인상, 제2회 영화평론가상 남자연기상, 제22회 한국백상예술대상 연기상, 제15회 이해랑 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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