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을 초상화로 본다
법당을 초상화로 본다
  • 박재완 기자
  • 승인 2018.05.1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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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길중 사진전 ‘큰법당’ 5월 8일~27일 갤러리 류가헌

 

사찰 당우의 초상(肖像)을 기록한 작품이 전시된다. 사진전 ‘석인’으로 기록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를 아우르며 작업과정의 치열한 밀도를 보여준 바 있는 있는 사진가 윤길중이 5월 27일(화)까지 류가헌에서 사진전 ‘큰법당’을 개최한다.

사람들은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고 그리기 위해 서로의 모습을 ‘초상’으로 남겨두었다. 사진이 없었던 시절엔 그림으로 남겼고, 오늘날에는 사진이 대부분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스님들의 진영도 같은 맥락이다. 윤 작가는 사찰의 전각도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지금은 눈앞에 있지만 언제가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사라지지 않더라도 변해간다고 생각했다.

전국 천여 곳의 전통사찰에는 각기 다른 전각들이 있다. 그 전각들은 대부분 목조양식의 건물들이다. 그래서 서양의 석조양식에 비해 보존이 어렵고, 화재 등으로 인한 소실의 위험성이 높고, 세월의 풍파로 인한 변형을 감수해야 한다. 윤 작가가 사찰 전각들의 초상을 기록해 두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의성 대곡사
의성 대곡사

 

이번 전시에는 윤 작가가 4년여에 걸쳐 제작한 큰법당의 초상 108점이 전시된다. 사진은 사진집 <큰법당>으로 묶여 나왔다.

윤 작가의 큰법당 초상은 기존의 사진들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기록이다. 단순히 촬영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촬영한 사진을 그대로 쓰지 않았다. 촬영된 사진에서 하늘과 구름을 지우고, 멀리 고찰을 감싸고 있는 산등성이들과 가까운 나무들도 지웠다. 심지어 주변의 그림자까지 지웠다. 그러자 날렵한 용머리와 천년 풍상을 흐트러짐 없이 견뎌온 전각의 선들이 드러난다. 섬세하게 양각된 단청들의 형태와 색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덤벙주초 위의 배흘림기둥, 기둥에 걸린 주련들, 그 사이 낱낱의 문창살마다에서 거북, 두루미, 개구리가 튀고 연꽃과 모란이 핀다. 처마 밑에는 이름을 새긴 현판이 부처 이마의 영안처럼 정 가운데에 또렷이 찍혀있다. 이 땅 절집들이 가장 큰 부처인 본존불을 모시는 곳, ‘큰법당’의 모습이다.

윤 작가는 인물의 초상을 만들 때처럼 전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모든 불필요한 배경과 부속물들을 보정 작업을 통해 모두 지웠다.

원리 자체는 단순하지만 배경을 지우고 형태 그대로 윤곽선을 오려내는 과정은 기술 너머의 일이다. 처마 끝 풍경에 매달린 작은 물고기 하나의 윤곽선도 왜곡이 없어야 했으니, 법당 앞에 백일홍 나무가 서 있는 위봉사 큰 법당은 윤곽을 오리는 데만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그처럼 지난한 여정을 거쳐, 기존의 절집 사진들과는 완연히 다른 윤길중만의 ‘큰법당’이 지어졌다. 사진가 윤길중이 사진이라는 매체로, 즉 오로지 그 자신의 심미안과 사진기술의 공법으로 축조한 우리 땅의 ‘큰 법당’들이다.

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물리적 시간만 4년여가 걸렸다. 다닌 사찰 수가 강화도에서 저 아래 제주까지 260여개를 넘는다. 인적이 없어야 하므로 인파가 몰리는 때를 피해서 추운 겨울이나 궂은 날, 처마 밑에 그림자가 지지 않는 특정한 시간대만을 골라서 가야 했다. 그렇게 피해서 가도 현수막이나 연등이 장해가 되어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으니, 오고간 횟수는 기록한 사찰의 수를 훨씬 상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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