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서 만난 예수와 부처의 길

조계종 교육원 연수단이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을 순례하고 있다.

기나긴 밤의 어둠을 이겨낸 자에게 아침은 오는 것입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입성(入城)하는 역사적인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 아침은 전혀 새로운 새 날, 새 아침입니다.

사실 중동의 정세가 불안하고 어지러워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이스라엘을 빼고 터키 이스탄불로 대체하려고 까지 했으니까요. 또한 많은 스님들이 불안한 나머지 순례를 포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요르단쪽 킹 후세인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의 알렌비 국경까지 넘어가는 데만 2시간 넘게 지체했습니다. 이스라엘을 통과하는데 또 한 시간이상 걸려 간신히 국경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그렇게 위험하지도 힘들지는 않은 듯 합니다. 일종의 기우(杞憂)였던 셈이지요.

국경지대의 요단강은 이름과는 달리 조그만 도랑인지라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양쪽 고원지대가 언젠가 지각변동으로 갈라져 분지를 이루어 해발 -250m정도 되는 곳이 바로 이곳 지역입니다. 그곳에 -430m의 세계에서 가장 낮은 사해(Dead sea)가 자리합니다.

사해에 들러 한국식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사해체험을 헀습니다. 염도가 33%이고 미네랄이 다량 함유되어 머드팩을 하면 관절염 등에 좋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만히 있어도 물에 둥 둥 뜨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지요. 모두들 어린아이인양 신이 나서 사해에 뛰어들어 체험을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예수가 어린 시절을 보낸 나사렛으로 가서 수태고지 교회와 성 요셉교회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보낸 한복 입은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림이 이채롭습니다. 또한 요셉 동상의 무릎을 만지면 관절염이 낳는다고 하도 매만져 반질거리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가나라는 마을에서 열린 결혼식에서의 물을 포도주로 바꾼 첫 기적을 기념하는 교회를 둘러보고는 여리고 마을을 지나 저녁 무렵 드디어 이스라엘의 심장부이자 유대, 이슬람,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야경과 새벽 일출과 더불어 드러나는 예루살렘 성벽과 황금돔사원은 그날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기만 합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영욕과 살육의 역사가 점철된 핏빛 선연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유대의 역사를 알아야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이후 아브라함이 정착한 땅에 다윗과 솔로몬이 성전을 건립하면서 예루살렘의 역사는 시작 되었습니다. 이후 바빌론의 유수를 겪고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철저히 파괴되고 유대민족은 ‘디아스포라’ 유랑의 길을 떠납니다.

이후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십자군전쟁으로 잠시 회복되기는 했지만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로 근대까지 이르게 됩니다. 세계 1,2차 대전을 겪으며 홀로코스트 대학살을 경험한 유대인은 시온주의의 영향으로 1948년 마침내 유대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됩니다. 그 후 4차례의 중동전쟁을 겪으며 지금의 이스라엘로 자리매김 합니다.

예루살렘은 다윗과 솔로몬의 유대성전이 있었기에 유대의 성지가 되고, 무함마드가 승천한 바위가 있어 지금의 황금돔 사원이 있는 이슬람의 성지이자, 예수가 태어나고 못 박혀 죽은 곳이기에 기독교의 성지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관리하는 성지는 그 어느 곳에도 없고, 대개는 로마 가톨릭과 프란치스코 탁발수도회나 동방정교회에서 공동관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대민족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치 않고 있으며 기독교는 유대인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한 원흉으로 보아 심한 멸시와 박해를 하였습니다. 또한 황금돔 사원은 무슬림이 아니면 입장을 못하기에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에서 통곡을 하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먼저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참배 하였습니다. 나치에 의한 600만 명의 대학살의 참상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인지라 눈물과 분노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왜 그런 고통을 당해야만 했는지도 한번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기(緣起)와 공성(空性)에 대한 이해를 통한 화해와 관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 형을 언도 받은채 십자가를 짊어지고는 골고다 언덕을 올라 처형당한 길을 따라 순례를 합니다. 출국 전 본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떠올리며 그 길을 따라 함께 합니다. 12군데의 유적을 따라 오르면 예수가 죽고 다시금 부활했다는 예수승천교회에 닿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로마 가톨릭 교황청과 프란치스코 탁발선교회 그리고 동방정교회 등 8개 기관이 공동 관리 중입니다. 그 어디에도 기독교 성지에 기독교는 없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뒤늦은 태동과 관련이 있을 듯 싶습니다. 마치 불교가 태동하고 융성했던 인도에 불교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금 ‘통곡의 벽’을 참배하니 저 멀리 황금돔 사원과 대비되어 통곡의 벽에 모인 유대인의 아픔과 한이 뼈저리게 느껴지고 가슴에 와 닿습니다.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예서 말 수는 없는데” 아마도 그런 마음일 겁니다. 통곡의 벽을 너와 시온산에 올라서는 예수와 12사도가 최후의 만찬을 하였던 마가의 다락방과 다윗의 가묘 그리고 베드로 교회를 돌아보았습니다.

점심 식사 후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으로 향했습니다. 예수탄생교회를 참배하며 말구유간에서 태어난 예수의 삶과 죽음을 생각해 봅니다. 알려지지 않은 성장기는 차치하고서라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며 악령의 유혹을 이겨낸 예수는 불과 3년여의 짧은 생애를 통해 인류의 위대한 정신이 되었습니다. 순교자 혹은 인류의 죄를 대속한 이로써의 예수가 아니고 만약 부처님처럼 80년을 살았다면 어떠했을까요? 물론 예수도 기독교도 없었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는 사도 바울의 신학이 지금의 기독교를 가능케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베들레헴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스라엘에 의해 설치된 그 말로만 듣던 팔레스타인 지역의 장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몇 천년 전 자기네 땅이라며 빼앗더니만 이젠 안전을 위해 분리장벽을 설치한 채 감시와 통제를 하는 현재 이스라엘의 현실을 봅니다. 불현 듯 우리 DMZ 휴전선 장벽이 떠올라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조계종 연수단이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 14처소를 순례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예루살렘의 전경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 위에서 혜국 스님을 모시고 회향식을 가졌습니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노란 리본을 매달고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를 함께 하였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리본 사이로 눈물과 한이 서린 예루살렘은 지금 이 순간에도 통곡하고 있는 듯 합니다. 언제쯤 이곳에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한 마음 한 뜻으로 기원해 봅니다.

중국 당대의 서역개척가인 장건(張騫)의 황하를 표현한 웅혼한 문장이 생각납니다. “곤륜산(崑崙山)을 타고 흘러 내린 차가운 물 사태(沙汰)가 사막 한 가운데인 염택(鹽澤)에서 지하로 자취를 감추고, 지하로 잠류하기를 또 몇천리, 청해(靑海)에 이르러 그 모습을 다시 지표로 드러내어 장장 8천 8백리 황하(黃河)를 이룬다.”

유대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의 장구한 역사와 과정이 마치 황하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불교는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만 합니다.
 
이제 다시금 예루살렘을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당신과 함께 와서 이 모든 순간을 함께 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어 마음 아픕니다.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저와 함께 영원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당신은 사막의 허공과 바람으로, 이 곳의 자연과 사람들 속에 항상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언젠가 당신이 내가 온 세상을 떠돌 적에 E-mail로 전해 주었던 문수보살의 게송이 생각납니다. “오랫동안 티끌 세상에 있으면 본래의 일을 잃어버리나니, 부디 본분의 일을 잊지 말고 속히 청산으로 돌아오시게나!(舊來塵土中 昧却本來事 不忘本分事 速還靑山來)” 언하(言下)에 느끼는 바가 있어 바로 귀국해 청산에 들어 용맹정진을 했었지요. 지금도 그때처럼 당신의 죽비와도 같은 경책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그 때의 그 마음으로 이제 다시금 돌아가려 합니다. 다시금 당신을 만났을 때는 더욱 맑고 향기로운 수행자의 모습으로, 결코 욕되거나 부끄럽지 않은 몸과 마음이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내 마음 속에 예루살렘을 간직한 채 몸은 비록 이 곳을 떠나지만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함께하리라 믿습니다. 그대의 예루살렘은 어디인가요? 오, 예루살렘! 내 아름다운 순간의 꽃이여, 화두여, 깨달음이여!

할 이야기는 태산이나 바다같지만 이제 이만 줄입니다. 제 작은 편지가 당신의 삶과 수행에 있어서 작지만 소중한 의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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