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제가 일찍이 가사(袈裟)를 입고 방광반야경을 몸소 강설 했는데, 감응해 하늘서 꽃비가 내리며, 땅이 황금으로 변했고, 도교를 물리치고 천하에 사찰을 개창해 승려를 장려하고

탑을 세워 불심천자라 불리웠다. 이렇게 천하제일이라는 아만심으로 가득찬 양무제가 달마선사에게 물었다.

나에게 얼마나 많은 공덕이 있습니까? “소무공덕(小無功德), 조그만한 공덕도 없습니다

내가 했다는 아상 속에서 행한 것은 복은 될지언정 공덕은 될 수 없다는 것이며, 본심(本心)은 무심(無心)이고 진공(眞空)이니, 텅빈 무심에서 무주(無住) 무상(無相)으로 보시(普施)해야 진공덕(眞功德)이 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복 짓는 것을 수행의 과로 생각하지만, 복짓는데 일생을 보내고, 복을 지었으니 육도 안에 있는 천상서 복을 누리는데 일생을 보내고, 다 누렸으면 전생에 지은 업()에 따라 윤회의 굴레 속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니, 복은 삼생의 원수라고 하는 것이다.

일체 유위법은 본래 진실된 모양이 없으니 저 모양 가운데
실상이 없는 줄을 알면 곧 이름하여 견성(見性)이라 하니라

언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 활구 참선법 이 뭣고를 만나 다생겁래로 익숙한 타향살이를 면하고 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춘 부처님 성품을 꿰뚫어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고,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참된 공덕을 이루겠는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성()스러운 진리(眞理)입니까?

확연무성(廓然無聖)이라, 허공과 같이 광대무변하고 너무나도 확연해서 성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짐 앞에 앉아있는 당신은 누구요? “불식(不識), 모릅니다

범부(凡夫)의 지견(知見)으로 성인(聖人)의 진리(眞理)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眼目)을 갖추지 못한 양무제에게는 다만 모르고 모를 뿐이다.

인연따라 생멸 변화하는 일체의 사물은 허망(虛妄)한 인연이 화합해 마치 꿈, 환처럼 이루어 지는 것으로, 이 모두가 실체성이 없는 것인데, 중생들은 눈앞의 온갖 현상을 실유로 오인해 분별하고 집착함으로써 세간의 모습이 있음이 된 것이다.

성수 선사가 혜월 선사를 찾아가 여쭈었다. “삼세의 모든 제불과 역대조사는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 하고 계십니까? 이에 혜월 선사께서 양구(良久), 입을 다물고 계시니 성수 선사께서 냅다 한 대 옆구리를 치시면서, “산용 활용이 어찌해 죽은 물에 잠겨 있습니까?” “그럼 너는 어찌 하겠느냐?”

성수 스님이 불자를 들어 보이시니 혜월 선사께서 아니다고 하시니, 성수 스님께서 다시 스님 기러기가 창문 앞을 날아간 지 이미 오래입니다하며, 이미 깨우친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 주시니, 혜월 선사께서 한바탕 크게 웃으시며 내 너를 속일 수가 없구나고 하시며 인가 하시고, 호를 운봉(雲峰)으로 부르고 전법게를 내리셨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본무진실상(本無眞實相) 어상약무상(於相若無相) 즉명위견성(卽鳴爲見性). “일체의 유위법은 본래 진실된 모양이 없으니 저 모양 가운데 실상이 없는 줄을 알면 곧 이름하여 견성(見性)이라 하니라고 하셨다.

진여실상은 불변(不變)이다. 이 진리가 수연해 만법을 이루는 것이다. 일체 유위법은 꿈속에 있는 허상인 것이며, ‘시심마 이 뭣고수행으로 꿈을 깬 실상 자리인 시()에는 본래 생사가 없는 내 고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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