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불설녹모경(佛說鹿母經)

58일은 어버이날이다.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절절해진다. 부모님의 은혜에 관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는 불설부모은중경이 잘 알려져 있고, 부모님의 은혜를 갚기 위한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부모은난보경이 대표경전이다. 부처님은 오백 번의 생을 사시면서 선업을 많이 쌓아 그 공덕으로 부처님이 되었다. 부처님의 전생 중에서 부모의 마음이 잘 나타낸 불설녹모경은 사람의 부모이야기가 아니다. 축생의 삶을 통해 살생하는 이의 마음을 움직여 한 나라에 사냥금지령을 내리도록한 가르침이 담겨져 있다.

일본 동대사에 가면 절 앞마당에 사슴이 어마어마하게 돌아다닌다. 절 앞에 사슴을 왜 기를까? 아마도 부처님의 첫 설법지가 녹야원, 사슴동산이라서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찰에서 받으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불설녹모경영향도 있다. 그런데 동대사는 이 사슴 때문에 대불전 뒤의 멋진 사찰풍광을 못보고 사슴구경하다가 바쁘게 떠나는 것을 보면 참 아쉽다. 불설녹모경은 축법호가 번역하여 한글대장경 195해탈도론p488에 수록돼 있다. 부처님을 대표하는 정체성은 자비다. 이 경에서 그 자비의 마음을 바로 볼 수 있다.

부처님이 전생에 사슴으로 태어나 수백 마리와 함께 평화롭게 살며 좋은 풀이 많은 곳을 찾아 떠돌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마침 국왕이 그 곳으로 사냥을 나오자 사슴들은 놀라 각기 다 흩어져 버렸다. 임신한 사슴 한 마리가 도망가다 지쳐 쓰러진 채 새끼를 낳았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새끼를 두고 잠깐 자리를 떴다가 그만 사냥꾼에게 잡혀 죽게 되었을 때, 어미 사슴은 눈물을 흘리며 새끼 사슴을 걱정하여 잠시 풀어주면 새끼들에게 살아가는 법만 알려주고 다시 돌아와 죽겠노라고 애원한다. 사냥꾼은 사슴이 사람처럼 말하는 것을 듣고는 매우 놀랐지만 왕에게 사슴을 사냥에 성공한 것을 보여주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사슴의 애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어미사슴은 무릎을 꿇고 다시 간절하게 애원했다.

저의 부탁을 들어주면 새끼들이 살고, 저를 붙잡아 두면 새끼들이 죽습니다. 부디 저의 소원을 들어주세요. 우리가 이별할 시간이라도 주시면 너무 고맙겠습니다. 저는 새끼들에게 당부할 말을남기고 반드시 그대에게 돌아와 죽겠습니다. 약속합니다.” 사냥꾼은 기가 막혔다.

내가 너를 믿을 수 없다. 사람도 신의를 지키지 않는데 내가 너를 놓아주었다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낭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대여, 비록 이 몸은 미천한 축생이어서 사람의 올바른 삶을 알지는 못하나 어찌 자애로운 은혜를 받고서 모른 척 할리 있겠습니까? 차라리 온 몸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을 받을지언정 거짓말로 살기를 원하진 않겠습니다. 배고픈 새끼가 너무 안타까워 저 대로 두면 굶어죽으니 잠깐 시간을 주시면 살아가는 방법만 일러주고 돌아오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냥꾼은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어미사슴을 풀어준다. 그리고 몰래 따라가 어미사슴이 새끼들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찬찬히 가르치더니 드디어 울며불며 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사냥꾼도 눈물을 흘렸다. 사냥꾼이 서둘러 돌아와 나무아래 눈을 감고 잠이 들었는데 어미사슴이 사냥꾼을 흔들어 깨우며 신의를 지켜 돌아왔음을 알렸다. 사냥꾼은 그 길로 왕에게 가서 모든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 하니 왕이 사슴을 풀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나라 국민이 이 일을 듣고 사슴의 어진 행동에 모두 감동하자 왕은 드디어 사냥금지국가임을 선포했다. 부처님이 이야기를 다 마치시고 아난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한 말씀하신다.

그 때 사슴이 나였단다. 두 새끼는 라훌라와 나한주리모이고, 국왕은 사리불, 사냥꾼은 바로 너란다. 비록 축생의 몸이었지만 우리는 보살의 마음을 잊지 않고 방편을 써서 중생을 이롭게 인도하였고 다시 또 이렇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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