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식의 불교 속 부자되는 법] 돈보다 더 좋은게 있을까?
[윤성식의 불교 속 부자되는 법] 돈보다 더 좋은게 있을까?
  • 윤성식 고려대 교수
  • 승인 2018.05.04 11: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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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가치 있는 일’에 몰두하라

 

부처님이 돈을 많이 벌라고 하셨지만 돈이 최고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설사 돈이 최고일 정도로 중요하다고 해도 돈이 전부는 아니다. 다만 돈이 많으면 복 받은 삶을 살고 세상에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다. 경전을 보면 염라왕은 부자로 태어나고 동시에 깨달음을 위해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겠다는 원을 세우고 있다. 재물을 얻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깨달음을 추구하여 궁극적으로 지혜와 참된 행복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어야 불교가 추구하는 중도가 실현된다. 비록 재물을 얻었지만 재물에 빠지지 않고 극복하여 깨달음의 길로 가야한다. 재물이 많은 것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이라면 도를 배워서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은 정신적인 축복이다.

돈보다 더욱 소중한 것 ‘행복’
무미건조한 삶은 행복도 저하
건강과 함께하는 ‘노동’ 중요

〈중아함경〉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 지극히 크고 부하고 즐거워 재산이 한량이 없고 목축과 산업이 헤아릴 수 없으며, 봉호(封戶)와 식읍(食邑)과 여러 가지를 구족한 집에 태어나리라. 태어난 뒤에는 깨달음의 근(根)을 성취하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의 율에 깨끗한 믿음을 얻기를 원하고, 깨끗한 믿음을 얻은 뒤에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도를 배우며 오직 위없는 범행을 마치고 현재에 있어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리라.” 행복을 위해서는 재물이 풍족해야 한다는 필요조건 이외에도 깨달음의 길을 가는 추가 요건이 필요하다. 불자라면 돈이 행복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돈이 많으면 분명 행복에 유리하지만 행복은 돈 이외에도 필요한게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의 최고 엘리트가 사람을 속이고 무한경쟁 속에서 미친듯이 일하며 ‘돈, 돈’하는 생활이 싫어 직장을 그만둔다. 이들이 시골의 조그마한 마을 도서관에 근무하거나 산림감시원으로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생활을 ‘자발적 빈곤’이라고 부른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고 돈이 최고가 아니기에 이들은 돈 버는 생활을 포기하고 소욕지족의 삶을 산다. 우리가 돈을 많이 벌면서 깨달음의 길을 병행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여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당연히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돈이 적어야 깨달음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하는 일이 깨달음에 방해가 된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깨달음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미국에서 부자라면 세계에서 부자다. 미국의 부자 카네기는 철강산업의 강자였고 록펠러는 석유산업의 강자였다. 둘은 활동하는 산업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최고를 놓고 경쟁했다. 록펠러가 철광 광산에 투자하여 카네기를 위협하자 카네기가 거액을 지불하고 록펠러의 철광 광산을 구입하기도 했다. 카네기는 록펠러에 비해 일찍 은퇴했다. 자신의 철강 회사를 J. P. 모건이라는 금융가에게 매각하고 거액을 기부활동에 사용했다. 카네기는 대학, 도서관, 공연장을 세웠다. 록펠러는 카네기가 은퇴한 뒤에도 경쟁심을 버리지 못했나보다. 그러나 카네기가 은퇴한 뒤에 록펠러가 카네기에 보인 경쟁심은 나름 좋은 경쟁심이었다. 기부를 놓고 경쟁했기 때문이다. 록펠러는 카네기보다 훨씬 오래 산 탓인지 기부금의 액수는 카네기보다 더 많았다.

카네기나 록펠러는 불자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후반부 인생은 내게는 마치 불자의 바람직한 경제생활을 보는듯했다. 그들은 돈을 벌고 난 뒤에 돈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돈을 멋지게 썼고 그만큼 행복했다고 믿는다.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좋은 일에 돈을 사용하면 행복도가 높아진다. 그들은 돈을 쓰면서 돈을 벌 때보다 더 큰 즐거움을 맛 보았으리라.

출가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는 것은 세속의 삶이 깨달음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세속의 삶이 도움이 된다면 왜 출가하겠는가? 모든 사람이 다 출가할 수 없기에 세속에 살면서 깨달음의 길을 가는 수행자의 삶을 살면 된다. 일본은 10년 동안 길고 긴 경제침체기를 겪었으며 이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한다. 그 뒤에도 다시 10년 동안의 침체기가 이어지자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표현한다.

일본에서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젊은이들이 작은 것에 만족하며 소욕지족의 삶을 사는 것을 보고 사토리 세대 즉 ‘득도 세대’라고 표현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즉 도통한 세대라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이의 행복도가 나이든 사람보다 더 높기에 혹시 젊은이들이 이미 소욕지족의 경지에 도달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욕심을 낸다면 삶은 더욱 불행해진다. 이러한 자포자기나 의기소침이 불교가 지향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아니다. 다만 일본의 사토리 세대로부터 삶에서 진정 무엇이 중요한가를 엿볼 수 있다.

많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마치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는 월스트리트의 소수 엘리뜨처럼 재벌기업이나 남들이 좋다고 하는 직장을 꿈꾸지 않고 소박한 공무원을 꿈꾼다. 이것 또한 불교가 추구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아니지만 젊은이들이 돈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이미 느낀 것이 아닐까? 증지부(增支部)에는 부의 다섯 가지 전제를 명심했는데도 재산이 감소할 경우 ‘부가 전제로 하고 있는 그것들을 내가 명심하고 있는데도 재산이 나로 인해 감소해 가는구나’라고 생각하여 후회하지 않고, 재산이 증대하면 ‘부가 전제로 하는 것들을 명심하였기 때문에 재산이 증대하는 것이로구나’라고 생각하여 좋아하지 않아야 한다고 설하고 있다. 돈이 중요하지만 최고도 아니고 전부도 아니기 때문에 깨달음의 길을 가는 수행자로서 살아야 재산이 감소해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재산이 증대해도 담담하게 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다. 돈이 늘어나면 좋겠지만 수행자는 ‘자발적 가난’의 심정으로 재산이 줄어들어도 슬퍼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을 보면 세끼 먹기 힘들 정도로 가난해도 선비의 체모를 손상한다고 생각되는 천한 노동은 하지 않았다. 선비에게는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비록 그것이 착각이었다고 해도 ...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을 꾸리면서 미래에 가난을 벗어날 가능성을 보는 사람은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아내가 가난을 참지 못하고 가출하고 아이들이 아파도 치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장애인 가장은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에 전혀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돈은 이처럼 우리 삶에 있어서 행복의 필요조건이지만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다. 즉 행복에 돈은 꼭 필요하지만 돈 만으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이다. 요즘은 90세 정도는 살아야 많이 살았다고 생각한다. 문상을 갔다가 90세 이전에 돌아가신 것을 알면 요즘으로는 빠르다고 말한다. 100세 시대가 되다보니 은퇴하고 너무 긴 세월을 자칫하면 무료하게 보내야 한다. 연금이 든든한 은퇴자들이 삶이 지루하다고 말하면 남들에게는 사치스럽게 들리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변에 은퇴하고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시골에서 농사 짓는 사람은 몸이 아프지 않는 한 열심히 활동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이 도시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은퇴한 뒤에 자연 속에서 농사 짓는 생활은 쉽지 않은 대안이다.

직장인은 은퇴하면 대부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다. 그나마 은퇴 후에도 무언가 일을 하는 사람은 전문가들이다. 의사와 변호사들이야 은퇴라는 시기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기에 나이 들어서까지 일을 한다. 교수처럼 65세가 되어 강제로 은퇴를 하면 어떤 의미에선 은퇴 생활을 강요 받는 장점도 있다. 어떤 변호사는 자신도 교수처럼 강제은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가 이유를 물었더니 나이가 들었는데도 일이 계속 들어오고 그러다보니 계속 일하게 되는데 이제는 강제로라도 쉬고 싶다는거다. 많은 사람이 은퇴하고 편안하게 휴식하는 것을 꿈꾼다. 그러나 과연 이런 생활이 좋은걸까?

미국에서 1,200명을 80년간 추적하여 조사한 유명한 연구가 있다. 80년간 지속된 연구다보니 처음 연구를 시작한 교수가 제자 교수에게 물려주고 80년을 이어온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오래 건강하게 사는가를 조사했는데 뜻밖에도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한 사람은 오래 살지 못했다. 최대한 부지런히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했던 사람이 오래 살았고 삶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무사 안일한 삶은 자극이 없고 그런 삶은 무미건조하며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삶에는 적절한 긴장 즉 창조적 긴장(creative tension)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삶에 지나치게 스트레스가 많으면 안 좋지만 너무 편하면 역시 안 좋다. 약간의 긴장이 있을 정도의 삶이 제일 적절하다. 이러한 설명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도움이 안된다면 수치로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지나치게 어려우면 즉 성공 확률이 20%이면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안 좋다고 한다. 지나치게 쉬우면 즉 성공확률이 90%쯤 되면 역시 사람을 안일하고 게으르게 만들어 안 좋다. 일의 성공확률이 50%쯤 되면 적절한 긴장과 도전을 주기 때문에 좋다.

내 주변에 오래 동안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전문가, 예술가들이다. 특히 대학교수 중 나이들어서도 계속 강의하고 책을 펴내는 경우가 있는데 참으로 축복받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연세대 명예교수인 김형석교수는 97세인데 지금도 강의 일정이 빽빽하게 짜여 있고 매년 책을 펴내고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웬만한 단순 작업은 인공지능이 도맡아서 하기에 인간은 지적으로 우수하지 않으면 100세 시대에 무료하고 하찮은 삶을 살게 될 수 있다. 지금이야 말로 많이 배우고 나만의 기술을 가져야 한다. 부처님은 최고로 축복할만한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많이 배우고 기술을 몸에 익히며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답하고 있다.

불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축복할만한 삶은 100세 시대에 이상적인 삶과 일맥 상통하다. 어떤 일을 하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죽는 날까지 창조적 긴장을 주는 일을 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시대이기에 많이 배우고 특별한 기술을 갖지 않으면 정부가 제공하는 기본소득에 의지해서 살아야할지도 모른다. 어설픈 지식과 기술보다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을 가진 사람이 평가 받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환자를 돌 볼 수 있다고 해도 진짜 인간이 간호하는 것이 최고이다. 눈으로는 아무리 구별할 수 없어도 짝퉁이 아닌 진품을 찾는 인간 심리처럼 말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면 열심히 배우고 나만의 기술을 갖는게 100세 시대에 가장 축복할만한 일이다. 젊을 때는 쾌락과 돈이 최고이지만 나이가 들면 건강과 지식, 기술, 예술이 최고다. 죽는 날까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제일 좋다.

부처님이 돈을 열심히 벌라고 하셨지만 자나깨나 ‘돈, 돈’하면 불교적 삶이 아니다. 부처님이 경전에서 말씀하셨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계속하는 것’이 최고로 축복할 만한 일이다. 따라서 돈을 벌 때도 편안한 마음으로 돈을 벌 수 있어야지 죽기 살기로 벌거나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아등바등하면 안 된다. 담담하게 물 흐르듯 최선을 다하며 경제생활을 영위해 가는 것이 불교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경제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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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3 14:48:53
교수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우리나라 불자들이 가장 오해하고 있는 것이 불교는 돈을 배척한다는 것인데...
초기경전에는 성문 사과를 얻은 수많은 장자(부유한 상인들) 이야기들이 있고,
실제 부처님께서는 바른직업과 바른행으로 최대한 돈을 많이 벌라고 하셨죠.
짐짓 왜곡된 이유는 아마도 조선시대 성행한 유교 사상의 영향이 크지 않나 생각됩니다.
3000년 전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경제사상은 현대 시장 경제와 크게 다르지 않고 오히려 그 부작용에 대한 올바른 방향(기부(보시), 사회적 경제,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 등)도 처방도 함께 제시하신것 같습니다.

"창조적 긴장(creative tension)"
최고의 축복은 "많이 배우고 기술을 몸에 익히며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