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형 기자의 VR시각장애체험기
덕양행신장애인주간보호센터 개발 프로그램

 

VR(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이 전국적으로 높아지는 가운데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수탁 운영 중인 고양시 덕양행신장애인주간보호센터가 국내 최초로 VR장애체험실을 마련했다. 시각뿐 아니라 촉각, 청각 등의 감각을 이용한 가상현실 체험으로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잘 만들었을까? 52, 센터를 방문해 직접 체험해봤다.

 

얼마 전 시내에 마련된 VR게임방에 친구들과 찾아가 VR을 체험해본 적이 있다. 예상보다 색다른 경험이었고, 제법 재미를 느꼈는데 VR로 장애체험을 한다니 꽤 신선하게 느껴졌다. 바로 이 호기심 하나가 고양시로 발길을 이끌었다. 하지만 1시간 가까이 이동을 하면서도 ‘VR로 정말 장애체험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저시력 시각장애체험을 위해 VR헤드셋을 머리에 쓰자 눈앞에는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세상이 펼쳐졌다.

센터에 도착해서는 담당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바로 VR장애체험을 시작했다. 커다란 헤드셋을 끼고 손에 도구를 쥐는 데 잠시 버벅거렸지만 이내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살피니 저시력 시각장애인4가지 시각장애 분류가 나타났다.

안경도수 -11의 타고난 고도근시로 인해 이른바 맹꽁이 안경을 끼고 살아온 나였다. 그렇기에 저시력 시각장애에 대해서도 나와 증상이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다. 하지만 체험이 시작되고 내 눈앞에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세상이 펼쳐지자 나도 모르게 탄식을 뱉었다.

내가 VR헤드셋을 착용하고 처음 마주친 것은 중심시력장애코스였다. 시야의 중심부가 어두워 보이지 않는 증세였다. 마치 누군가가 내 눈앞에 검은 주먹을 갖다 놓은 것 같았다. 내게 주어진 미션은 ATM에서 돈을 송금하는 것. 주변 환경은 익숙했지만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정자세에서 ATM 화면의 글자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카드를 꺼내려다 바닥에 떨어트리기도 일쑤.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동안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고개를 위, 아래로 움직여야 했다. 그래야만 보였다. 간단한 출금을 하는데도 온몸을 비틀었더니 어느새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겨우 송금을 마치고 주변시야장애코스로 넘어갔다. 중심이 어두워졌던 직전과 반대로 이번에는 주변 시야가 어두워졌다. 터널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미션은 횡단보도 건너기. “이번 코스는 쉽네요.” 나는 코웃음 치며 횡단보도로 달려갔다. 그런데 금세 하며 헤드셋에서 진동이 울렸다. 시야가 좁아져 미처 보지 못한 가로수에 부딪힌 것이다. 한번 장애물에 부딪히자 또 다른 무언가에 부딪히진 않을지 불안감이 고조됐다. 우여곡절 끝에 횡단보도에 겨우 도착해 파란불에 발을 뗐다. 그런데 갑자기 왼쪽에서 끼익하고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위기를 느낀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시야가 보이지 않아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바로 옆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고개를 한참 돌려야 현장이 보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찰나,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하는 클랙슨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단지 시야만 좁아졌을 뿐인데 횡단보도가 매 순간 생명에 위협을 주는 장소로 바뀌었다.

실제 VR장애체험 화면 중 '주변시야장애'코스. 주변이 어두워져 홀로 터널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시야가 전체적으로 안개가 낀 듯 뿌옇게 흐려지는 증상인 매질혼탁은 그 다음이었다. 나는 화재 현장에서 비상구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손전등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시야가 흐려 제대로 잡을 수 없었고, 계단을 내려갈 때도 바로 앞의 계단을 제대로 찾을 수 없어 조심스러웠다. 이 상태라면, 화재가 났을 때 꼼짝없이 화마에 당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어 아찔했다.

마지막 체험은 비특이성 시력장애로 시야에 얼룩이나 이물질이 낀 것 같이 보이는 증세였다. 미션은 간단한 퍼즐 맞추기. 퍼즐조각이 몇 개 되지 않아 시야가 맑았다면 금세 맞췄을 텐데 시력장애로 인해 그림을 인식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네 가지 체험 코스를 완수하고 VR기기를 벗자 온몸은 땀범벅이었다. 장애가 없는 이들에겐 소소한 일상이겠지만 시각장애가 있는 상태로는 평소보다 몸을 더 많이 움직여야 했고, 매사에 더욱 집중해서 행동해야 했다. 힘들었다는 생각도 잠시, 저시력에 대한 편견을 떨쳐낼 수 있었다. 시력이 낮은 것은 차치하고, 부분적으로 어두워지거나 시야 자체가 탁해지기 때문에 안경 같은 단순도구로는 교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 일상생활도 어려웠다. 직접 겪어보니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고 위축되는 느낌이 들어 답답했다.

이번 체험을 통해 무엇보다 크게 느낀 것은 시야가 흐려진 상태에서는 지독히 외롭다는 것이었다. 겉모습만으로 상대방이 시각장애가 있을 것이라 예상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VR기기를 착용했을 때 옆에는 든든한 사회복지사가 있었고 걷는 곳에는 부딪힐 만한 사람이 없었다. 만약 사회복지사가 옆에 없고 길거리에 사람들이 있었다면 어떤 체험도 성공적으로 끝내기 어려워 포기했을 것 같았다.

센터 복도에는 혼자서는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못한다. 함께하면 우리는 그렇게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 헬렌켈러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잠깐의 체험 동안에도 사회복지사에게 수없이 의지했기에 더욱 와 닿는 문구였다. 직접 겪으니 장애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더욱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양행신장애인주간보호센터는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개선을 위해 장애인의 입장이 직접 돼 볼 수 있는 VR장애체험을 기획했다고 한다. 20177월부터 개발에 들어가 주식회사 페리굿과 공동 제작했다. 이 시설은 424일 시연회를 마치고 5월부터 전격 개방됐다. 센터는 빠르면 올해 안에 지체장애를 경험하는 VR도 만들겠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센터 벽면에 장식된 장애인들의 캐리커쳐.

사실 센터는 꾸준히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힘써왔다. 센터 곳곳에는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시설물들을 배치돼 있었다. 지역 중학생들이 그린 센터 발달장애, 뇌병변장애인 캐리커쳐가 벽면을 장식했고, 장애인들이 평소 사용하는 도구들이 전시됐다. 전시된 구부러지는 식사도구, 텔레스틱 등은 일상에서 식사를 하거나 물건을 집을 때 필요한 도구다. 우리가 쉽게 해왔던 행동도 장애인들에게는 힘든 사투였음을 알게 했다. 이외에도 장애인 드론 탐방단,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음악회, 거리 캠페인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센터는 이 VR체험이 많은 곳으로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 바람이 실현돼 많은 사람들이 이를 통해 장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으면 좋겠다. 헬렌켈러의 말처럼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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