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공룡이?… 생명 탐욕 경계해야

 

4차 산업혁명을 말하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일 것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혹은 이것 이상으로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대표적인 기술이 생명공학 분야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의 등장으로 유전공학은 응용 분야를 넓히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생명 창조에 도전하는 합성생물학은 논란을 일으키며 성장하고 있다.

합성생물학이라고 하면 대중들에게는 조금 낯설지만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6천만 년의 시간을 거슬러 되살아난 공룡들과 영화 <아바타>에서 판도라 행성 자원탐사대의 비밀병기로 탄생한 아바타를 떠올리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 공룡들을 살려내고 아바타는 만든 기술이 합성생물학이다.

생물안정성에 부정적 역할
자연흐름깨고 악업 쌓는 것
악용 방지 위한 공동 노력 필요

합성생물학이란 무엇인가?

<쥬라기공원>에서는 공룡의 피를 빨고 호박 속에 갖혀 있는 모기들로부터 채취한 공룡의 DNA로 공룡을 복원했지만, 2005년에 과학자들은 실제로 1918년에 전 세계적으로 창궐했다 사라진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를 알래스카 영구 동토층에 매장된 90년 전 독감 피해자의 시신에서 채취한 바이러스 DNA로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를 복원해냈다.

합성생물학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생명의 구성요소들을 재설계하거나 재구성하는 생명공학적 연구 영역이다. 합성생물학 분야의 첨단 연구자들 가운데는 자연의 재구성이나 재설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연 속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학적 구성요소들로 생명을 창조하려고 시도하거나 자연 속의 생명체를 모방하여 독자적으로 완전한 생명체를 창조하려고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합성생물학은 전통적인 생물학과 같은 영역의 대상을 다루고 있지만 그 대상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전혀 다른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 합성생물학은 생명 현상을 관찰하고 그 바탕에 깔린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공학적 처치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런 목적 때문에 성격상 합성생물학은 생물학에 다양한 공학, 즉 유전공학, 정보기술, 나노기술 등이 융합된 학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근까지 생명은 초월적인 존재의 영역이었다. 과학적으로 생명 현상에 접근하고 있기는 하지만 생명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과학이론은 없다. 특히, 서양의 기독교 전통은 생명을 유일신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합성생물학은 기독교 전통의 종교와 문화로부터 공포와 경계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합성생물학에 어떤 위험이 잠재해 있는가?

기독교 전통에서의 비판이 아니더라도 합성생물학에 관련된 여러 가지 위험이 지적되고 있다. 최근에 유행한 용어 가운데 ‘DIY 생물학’이라는 것이 있다. 합성생물학은 비교적 적은 비용과 시설을 활용해서 실행할 수 있다. 예컨대,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미국의 경우에는 온라인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재로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합성생물학은 바이오테러에 오용될 가능성이 있다. 특정 국가나 테러집단이 합성생명체를 이용해 인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예상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터커와 질린카스는 이런 상상보다 고독한 연구자 시나리오와 바이오해커 시나리오를 더 걱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독한 연구자는 고도로 훈련된 합성생물학 전문가가 원한으로 인해 합성생명체를 유포시키는 경우를 말한다. 바이오해커는 합성생명체 제조가 큰 비용과 설비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호기심이나 자신의 능력 과시를 위해 합성생명체를 만들고 유포시키는 경우를 말한다.

합성생명학은 생물안전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연적인 생명체가 아닌,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합성생명체가 자연에 방출될 경우에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 또한 자연적 유전자 풀을 오염시킬 것이다. 자연 유기체와 인공 유기체 사이에 유전자 교환이 일어날 것이며, 그로 인해 자연종의 유전체가 훼손될 것이다. 더욱이 합성생명체 폭발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것은 나노기술에서 말하는 잿빛 덩어리 지구 시나리오의 생물학 버전이다. 합성생명체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고, 결국은 지구 생태계가 합성생명체로 뒤덮이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합성생명체자 자연에 대량 방출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상상하기 힘들다.

이러한 잠재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합성생물학 연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합성생물학이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득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합성생물학은 의료, 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다. 불치의 유전질환 치료법 개발이나 약물 개발, 박테리아를 통한 바이오연료를 생산 등을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경제적 이득을 산출할 것이며, 다른 공학 기술과 결합하여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기술로 합성생물학을 꼽는 것은 당연하다.

인공 생명체도 인연의 결과일까?

생명 현상이나 생명체에 해당하는 불교 용어는 중생(sattva)이다. 그리고 중생은 범부, 유정, 중연화합생으로 구분된다. 범부가 인간에 해당하고, 유정이 생물에, 중연화합생이 생태계를 비롯한 존재자 일반에 해당한다. 세계의 존재와 생명 현상은 연기의 개념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일체의 존재는 인연화합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존재하는 것들과 생명 현상에서 그 결과를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 혹은 내재적 원인이 인(因)이고, 부수적인 원인 혹은 외재적 간접조건이 연(緣)이다. 인간을 비롯한 일체 존재와 생명 현상의 변화과정은 어려 가지 원인이나 요소들의 이합집산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며, 연기란 이런 수많은 요소들의 상호 관련성 혹은 상호 의존관계를 가리킨다.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단 하나도 홀로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만은 독자적으로 실재한다고 믿는 것으로 자아가 있다. 특히 서양의 근대적 사고방식은 자아의 독립성과 절대성을 주장한다. 불교는 무아를 주장한다. 자아 또한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실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만물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세상의 온갖 인연이지 물(物)이 아니다. 고정된 어떤 것으로서의 물(物)은 없으니까. 그래서 세상에 어떤 것도 본래적 실재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어떤 한 사물도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현존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생명이 인연 없이 생겨날 수는 없다.

합성생명체도 수많은 인연들로부터 생겨난 것일까? 큰 틀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다. 합성생명체를 만드는 사람들의 행동에는 그에 앞선 인연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합성생명체 자체도 인연의 결과라고 해야 할까?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불교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수용적이어야 하고, 비판적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합성생명체를 인연 없이 만들어진 생명이라고 보고 싶다. 인연의 결가라기보다는 탐욕의 소안이 아닐까? 생명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 아니다. 생명을 실체적 현상으로 보는 이들이 생명을 과학적으로 정의하려고 노력했지만, 생명을 합성해내기까지 하는 오늘날에도 생명에 대해 엄밀한 정의를 얻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생명이 정의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생명을 인공적으로 창조하려는 것은 흘러가는 것인 생명을 붙잡으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명체나 생명 현상은 수많은 요소들의 관계의 산물이다. 일체 존재는 복잡다단한 인연의 그물 속에 있으며, 인연 관계를 이루는 조건들은 모두 관계의 한 항으로 있을 뿐이고 어느 하나도 그 관계를 벗어나서 실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태아가 형성되는 것도 중유를 포함한 삼사(三事)가 화합하여 일어나는 일이다. 실체적 요소로서 중유나 식(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화합이라는 과정적 관계성이 중요한 것이다. 불교적 관점의 핵심은 인연의 관계이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조건적인 요소들을 언급하는 것이다. 이 조건적 요소들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항으로서만 존재한다.

합성생물학은 생명을 생명의 요소들을 통해 이해한다. DNA나 유전자, 세포 등이 생명의 기본 구성 요소라고 생각하고, 그런 요소들의 결합을 통해 생명체가 만들어진다고 본다. 이런 이해 방식을 통상 환원주의라고 한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세상은 환원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존재하는 어떤 것도 고정된 것이 없으며, 설령 현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도 그것을 몇 가지 필수 구성 요소들로 소급해 설명하지 않는다. 특히, 생명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생명 현상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어떤 필수 구성 요소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생명 현상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요소들과 외부 요인들의 관계를 통해서만 설명된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와 생명 현상은 그러한 인연들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합성생물학은 인류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가져다 줄 수도 있는 첨단 기술이다. 하지만 합성생물학에 잠재된 위험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불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합성생명체의 생산이 세상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깨고 탐욕으로 인해 화를 악업을 쌓는 일이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합성생물학의 선용을 위해 연구의 한계를 분명히 하고,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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