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보에 담긴 佛心을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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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성미 기자
  • 승인 2018.04.30 13: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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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불교문화 전문 해설사 (63·부산불교교육대학 교수)
경주 남산 삼릉계곡의 ‘선각육존불’ 앞에 선 김춘식 불교문화 전문 해설사가 환하게 웃고 있다.
경주 남산 삼릉계곡의 ‘선각육존불’ 앞에 선 김춘식 불교문화 전문 해설사가 환하게 웃고 있다.

뒤 늦은 불연, 단단한 불심

사업체 부도 겪으며 불교 만나

38, 부산불교산악회 첫 인연

집행부 이사 맡고 모임 이끌어

불교산악인 모임 붐 조성 시초

산악회 활동으로 불심 자라나
 

이 땅의 유적과 문화재는 대부분 불교의 흔적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적과 문화재의 이해는 곧 불교의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불교의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불교의 이해는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론인 것이다. 그래서 불교와 불교문화재를 제대로 알리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20여 년 사찰과 사지, 그 밖의 도량에서 불교문화를 해설하며 전법의 길을 가고 있는 이가 있다. 불교문화 전문해설사인 김춘식 교수(부산불교교육대학)419일 불국토로 불리는 경주 남산에서 만났다.

 

해설사 넘어선 통역가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죠. 그 박물관에는 이 남산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찰과 사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엔 우리가 알아야 하는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죠. 그것이 이 땅의 문화재인 것이죠. 그것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불교를 제대로 알아야 하죠. 그리고 우리 같은 해설사가 누구보다 먼저 해야 하는 일인 것이죠.”

김 교수는 단순히 해설사를 넘어 통역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해설은 단순히 외형적인 해설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안내판의 활자에서는 볼 수 없는, 해설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것은 말없이 서있는 문화재들과 나눈 이야기를 전하는, 곧 그것은 통역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통역은 불심에서 온 것이며, 쉼 없는 공부에서 온 것이다.

이 땅의 문화재는 대부분 불교의 흔적들입니다. 곧 부처님 세계와 말씀이 담겨 있다는 것이죠. 조금 깊이 생각하면, 그것은 곧 설법인 것이고, 문화재 자체가 법문인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김 교수는 이 땅의 곳곳에 남아 있는 그 흔적들에서 부처님의 법을 읽고, 아직 불법과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그 법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김춘식의 해설이다.

 

국토 곳곳이 불국정토

우리나라 가장 높은 산봉우리 이름은 비로봉입니다. 비로자나부처님을 상징하며 법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상징화한 결과입니다. 비로자나부처님을 친견하는 마음으로 꼭대기를 오르면 어떤 심정일까요? 마음이 벅차지 않습니까?”

남산 삼릉에서 만난 김 교수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설레는 듯 가벼웠고 얼굴에는 봄꽃처럼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후, 불두가 없는 석조여래좌상을 만났다. 김 교수는 부처님을 한참 바라보다 한국 불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처님이다. 불두가 없는 모습에서 불교가 겪은 고초와 역사를 깊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산을 더 오르자 선각육존불이 눈앞에 나타났다. 삼릉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왼쪽 편에 위치한 선각육존불은 큰 바위에 새겨져 있었지만 마치 종이 위에 그린 그림처럼 자유로운 솜씨가 절로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오른쪽 뒤편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이 석가모니부처님이시고 왼편 앞 바위에 있는 분이 아미타부처님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의 좌우 보살상을 자세히 보면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 가득히 연꽃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부처님이 뒤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이유는 그 때 당시는 중요한 순서대로 뒤편 가운데를 상석 자리로 앉았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보다 뒤에 새긴 이유는 아무래도 그 정서가 반영된 것이라 추측됩니다.”

김 교수는 문화재를 보자마자 구체적으로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는데, 쉬운 설명과 명쾌함이 돋보였다.

삼릉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가자 경주시를 내려다보는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이 나타났다. 거대한 바위벽에 새겨진 불상은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적으로 조각 됐고 몸체는 선각으로 조각된 특이한 모습이다. 불국정토를 꿈꿨던 신라의 불교가 그대로 남아서 또 한 번의 불국토를 꿈꾸는 듯 그 모습이 웅장하고 여법하다.

불교 문화재를 만나기 위해 산을 오르거나 사찰을 찾으면 그 주변 모두가 부처님을 찬탄하는 장엄물로 보입니다. 지금 이 곳을 보십시오. 산에 핀 꽃들은 부처님께 올리는 꽃공양같지 않습니까?”

 

불자산악인과의 만남

김 교수가 처음 불교를 접하게 된 것은 불교산악인 모임에 들어가면서 부터다. 선배의 권유로 들어선 동호회 이름은 부산불교산악회였다. 부산불교산악회는 199312월에 전국 최초로 세워진 불자 산악인 모임으로, 등산이라는 취미를 즐기며 아울러 수행까지 하는 모임이었다. 창립 때부터 함께 한 김 교수는 처음엔 모임의 명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 때 저는 불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동호회 이름에 불교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 때 당시 제가 여러 가지로 너무 힘든 시절이어서 무언가에 기대고 싶었던 때라 산악회에 가입을 하게 됐고, 산과 사찰을 찾으면서 점점 마음의 힘을 얻고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저는 점점 부처님 가까이 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 교수는 부산불교산악회에 가입하기 전인 1990년에 산업설비 사업체를 운영하다가 부도를 내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자살을 수도 없이 생각했고, 오랜 시간 방황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람들은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고 죽을 힘을 갖고 살아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힘조차 없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겁니다. 전 그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겪은 후에는 자살한 사람에 대한 뉴스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들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심정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부산불교산악회에 가입했을 당시 30대였던 김 교수는 젊고 책임감이 강해 회원들의 신뢰를 얻었고, 집행부 운영이사를 맡아 모임을 이끌었다.

회원 100여 명이 범어사 탑전에 모여 창립법회를 열면서 부산불교산악회는 시작됐고, 전국으로 확대 발전하며 전법에 일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사찰을 돌며 선수행과 및 법문을 듣고, 4시간 정도의 산행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운영됐습니다. 창립 후 15년 동안 청춘을 모두 바친 곳입니다

부산불교산악회 창립 후, 전국 곳곳에서 불교산악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7년에 대구, 서울, 대전 등 전국의 불자산악인을 모아 힘을 집결한 전국불교산악인연합회가 만들어지게 됐다.

“2007년에 전국불자산악인들이 부산에서 제10차 전국불교산악인대회를 진행했습니다. 금정산 고당봉을 오른 후 2000여 명의 불자 산악인들은 범어사 대웅전 마당에 모여 창립을 기념하는 법회도 여법하게 열었지요. 회원들의 수가 정말 많았습니다. 산행이라는 도구는 도반들을 만나고 사찰로 이끄는 수단이 되기에 충분했으며, 궁극으로는 산행 자체가 수행이 되었습니다.”

2018년 4월 15일 (사)미소원과 진행한 해남 대흥사 현장답사에서 대흥사에 대해 해설하고 있는 김춘식 교수.
2018년 4월 15일 (사)미소원과 진행한 해남 대흥사 현장답사에서 대흥사에 대해 해설하고 있는 김춘식 교수.

문화 알리는 것이 곧 포교

불교문화 전문 해설사 20여 년

포교사 시험 통과 해설사 시작

부산지역 사찰 안내팀계기로

불교 공부 문화재 공부 시작

현장·블로그로 불교문화재 해설

문화재 대부분 불교의 흔적

20여 년 동안 300여 사찰 방문

문화재 해설은 불교 알리는 일,

불교 제대로 알고 해설해야

 

진정한 불자가 되다

김 교수는 부산불교산악회에 가입한 후에 기본적인 사찰 예법을 배우면서 불교산악회 회원으로서 기본적인 신행을 시작했으나 진정한 불자로서의 신심과는 아직도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보니 불가의 전반적인 문화나 정서에 젖어들지 못했다.

산악회 활동을 하면서 대웅전 외에 다른 전각에 가서 기도하고 절하는 불자들을 이해 할 수가 없었어요. 산신각이나 사대천왕을 보면 우락부락한 모습에 공포심이 들기까지 했지요. 불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저로서는 궁금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지만 그 궁금증을 해결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어요.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할 때 쯤, 부산불교교육대학을 졸업한 회원이 다가와 제게 입학 원서를 내밀었습니다.”

김 교수는 몇 차례 거절을 했지만 재차 입학을 권하는 도반의 정성에 김 교수는 마침내 부산불교교육대학에 입학한다. 부산불교교육대학에 입학한 김 교수는 처음 보는 불교 용어와 한자 등 공부가 너무 어려웠다. 김 교수가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조계종포교사단 시험 소식을 듣게 되고 시험에 응시한다.

제가 포교사 시험에 응시하게 된 이유는 자존심 문제와 당시의 분위기였어요. 대부분의 회원들은 시험에 응시하는 분위기였고, 나중에 들으니 시험을 보지 않아서 포교사가 되지 않으면 응시 여부와 상관없이 시험에 불합격된 사람으로 인식되더라고요. 힘겨운 시절을 보내며 마음 붙일 곳을 찾아 온 곳인데, 될 수 있으면 회원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험을 치르게 됐죠.”

김 교수는 최선을 다했다. 잠을 쫓기 위해 무릎을 꿇고 공부하며 밤을 새는 날도 많았다. 무사히 시험을 치른 김 교수는 마침내 시험을 통과하고 포교사로서 조계종 포교사단 부산지역단에 가입한다. 그리고 사찰 안내팀일을 시작한다.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여전히 저에게 불교는 쉽지 않은 것이었어요. 분야를 선정해 활동을 해야 했는데, ‘사찰 안내팀이 수월해 보였어요. 화장실이나 종무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안내 정도를 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사찰 안내팀의 일은 김 교수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사찰 안내팀은 단순히 화장실이나 종무소를 알려주는 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사찰 안에 있는 문화재와 사찰의 내력 등을 방문객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어야 하는 일이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일이었고, 머리로만 하는 불교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불심이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매번 모임마다 팀장은 공부를 미리 해 문화재에 대해 풀어 설명해야 했다. 김 교수가 불교문화 전문 해설사로서의 시작은 그 때부터였다.

학생 때 역사 과목이 제일 싫었습니다. 연도를 외워야 하고 역사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정말 고리타분한 일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외우고 공부해야 하는 일이 남은 제 삶의 이유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어요.”

김 교수가 그 일을 시작했을 당시는 인터넷이 일반화된 지금처럼 손쉽게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김 교수는 자료를 구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고, 새로운 책이라도 나오면 바로 서점을 찾았다. 김 교수는 부산불교산악회 모임 뿐 아니라 조계종 부산경남포교사단, 부산불교산악회, 부산대 평생교육원, 부경대 한국사 공부 동호회, 사단법인 미소원 등에서 불교문화재 해설을 했고, 그 자료를 모아 정리하기 위해 자신의 블로그 서백의 사찰이야기에 글과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자료가 풍부하고 구체적이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최근 5년간 다녀간 방문자가 40만 명이다. 사찰답사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도 입소문으로 인해 매년 2000명에 달했다.

부산불교교육대학에서 불교문화학을 강의하는 김춘식 교수.
부산불교교육대학에서 불교문화학을 강의하는 김춘식 교수.

교구본사 혹은 유명 사찰을 제외하고 작은 사찰을 방문해 글을 올린 곳만 250여 곳입니다. 전국에 숨어 있는 사찰이나 사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발굴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대부분 재능기부 형태로 일했습니다. 불교문화재는 불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흥미를 가지고 듣습니다. 해설을 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입니다. 우리 문화를 알리는 일이 불교를 알리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결국 자연스럽게 전법을 할 수 있는 것이죠.”

김 교수는 그렇게 뒤 늦게 불연을 맺고 20여 년 불법을 전하고 있다. 김 교수는 문화재를 정확하게 알고 연구하고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불교문화재 해설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불교문화재는 상징을 담고 있어 정확하게 복원해 후세에 전달해야 합니다. 정확한 복원을 위해서는 불교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불교문화포교사를 양성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남산을 내려오는 길, 어느새 경주는 어둑해졌다. 부처님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김 교수의 얼굴에는 잔잔한 주름이 드러났다. 사랑하면 닮는다 했던가. 김 교수 얼굴의 주름이 마애불의 선각(線刻)처럼 보였다.

김춘식 교수는?경북 영천에서 출생, 경주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1993년 부산불교산악회에서 불교를 처음 만났으며 전국불교산악인연합회에서 운영이사로 활동했다. 포교사단 부산지역단 부단장을 역임했으며 부산불교방송 산악회를 결성했다. 현재 부산불교교육대학에서 불교문화포교사 양성 강의를 맡고 있다. 전법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12월 10일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장상과 2007년 6월 10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상을 수상한바 있다.
김춘식 교수는?경북 영천에서 출생, 경주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1993년 부산불교산악회에서 불교를 처음 만났으며 전국불교산악인연합회에서 운영이사로 활동했다. 부산경남포교사단 부단장을 역임했으며 부산불교방송 산악회를 결성했다. 현재 부산불교교육대학에서 불교문화포교사 양성 강의를 맡고 있다. 전법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12월 10일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장상과 2007년 6월 10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상을 수상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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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노을빛 2018-04-30 23:41:44
오랜역사를 지닌 사찰들의 깊을 뜻을 통역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교문화가 한층 더 성숙된 종교라고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쉽게 절을 방문하지만 거기에 설치된 안내판 내용으로만으로는 그 절에 담긴 깊은 의미는 일반인들은 알아차리기 힘든게 사실이다. 나도 그속에 살아숨쉬는 역사를 배워 더 깊은 불교사상을 계승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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