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선, 중국 선종의 초석 다져
달마선, 중국 선종의 초석 다져
  • 현불뉴스
  • 승인 2018.04.2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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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보리달마의 선법

선종 핵심은 ‘명심견성 견성성불’
달마선은 마음의 본성 깨치는 것
인도선과는 현저히 다른 수행법

달마선을 여래선 혹은 능가선이라고 칭하는데, 달마선이 중국에 전파되기 전인 북조시대까지는 여전히 많은 선승들이 신통을 사용했다. 제왕은 물론이거니와 일반백성도 이 신기한 이적에 매료 되어 갔다. 그러나 달마대사가 중국에 출현하면서 이러한 신비적 요소들이 많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것은 곧 벽관안심(壁觀安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벽관선법은 안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며, 안심은 곧 반야실상과 불성(심성)사상을 결합한 선법체계로 자성불성을 스스로 체득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즉 이적 신통이나, 대상(觀象, 觀想) 및 단계적인 수행법에 의지한 깨달음이 아닌, 자신 내면의 진정한 자아(本性淸淨 本性寂靜) 세계를 깨닫는 것, 즉 자성자도, 자수자오(自性自度, 自修自悟)이다. 그래서 선종의 핵심은 명심견성 (明心見性) 혹은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달마의 저술이 후대에 많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즉 〈이입사행론〉 〈파상론〉 〈혈맥론〉 〈오성론〉 및 둔황의 출토본으로 〈달마화상절관론(達摩和尙絶觀論), 〈석보리달마무심론(釋菩提達摩無心論)〉, 〈남천축보리달마선사관문(南天竺菩提達摩禪師觀門)〉등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 위작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서 〈이입사행론〉만이 달마의 저작으로 고증되었으며, 내용은 벽관안심에 대한 것이다. 달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도선율사(596-667)가 지은 〈속고승전〉에서 ‘벽관사행(壁觀四行)’은 달마의 가르침이라고 되어 있다. 정각(淨覺)이 지은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에도 ‘벽관사행’이 기록되어 있으며, 〈경덕전등록〉에서도 〈능가사자기〉의 기록을 인용해서 ‘벽관사행’을 전하고 있다.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보리달마가 해로를 통해서 중국에 도착한 후 얼마간을 지금의 광동성 광주에서 머물다가 건강(建康ㆍ지금의 남경)에 도착해서 양무제와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지만,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못해서인지 서로가 원하는 바는 성취하지 못한 채, 달마대사는 지금의 하남성의 숭산 소림사로 들어가서 9년 동안 면벽을 하면서 시절인연이 성숙되기를 기다렸다. 그 후 혜가의 구법을 통해서 안심(安心)이라는 법인(法印)과 ‘이입사행(二入四行)’ 및 〈능가경〉 4권을 전수해 주었다. 달마대사가 원적한 후에 혜가는 한 동안 은적했다고 전해지며, 그 후 도속을 막론하고 각계각층을 찾아다니면서 배움을 구한 후에 전법을 펼쳤다고도 한다. 혜가는 승찬에게 법을 전한 후에 개황(開皇ㆍ581~600)때 앉아서 입멸에 들었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혜가와 동시대의 인물로서 도항(道恒)이라는 유명한 스님이 있었는데, 그의 문하에 천여 명이나 되는 승려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당시 혜가의 가르침을 마설(魔說)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도항의 제자 가운데 한사람을 몰래 혜가에게 보내서 논쟁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제자가 도리어 혜가에게 설복을 당해서 도항 스님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그 사실은 안 도항 스님은 마음으로 더욱더 혜가를 원망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서 암살을 기도하기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혜가가 전한 유송역(劉宋譯) 〈능가경〉의 내용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즉 송역(劉宋譯) 〈능가경〉은 문체가 비교적 난해하고 어려웠다고 하며, 반면에 북위 때 보리유지(菩提流支)가 번역한 10권〈능가경〉은 비교적 문체가 수려하고 유창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북위의 학승 내지 사대부들은 유송역(劉宋譯) 〈능가경〉을 멸시하고 능멸하였다고 한다. 이 관점은 후세에 당나라 때 지거(智炬ㆍ혹은 혜거 승지(勝持)가 공동으로 편찬했다고 하기도 한다)가 지은 〈보림전(寶林傳)〉에 나오는데, 〈보림전〉에서는 보리유지가 선학사상이 같지 않은 이유로 달마를 독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은 곧 유송역 〈능가경〉과 북위 때 〈능가경〉의 쟁론을 근거로 보리유지를 관련시켜서 이야기하고 있다.
참고로 현재까지 한역된 〈능가경〉은 세 종류가 있다. 곧 유송(劉宋) 때 중천축(中天竺) 사문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번역한 〈능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 4권으로 최초의 역본이고, 북위 때 북천축(北天竺) 사문 보리유지가 번역한 〈입능가경(入楞伽經)〉 10권이 있고, 당나라 때 우전국(於?國) 삼장법사 실치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7권이 있다. 그 외도 산동성 대승정사에서 발견된 〈능가경회역(楞伽經會譯)〉이 있다.
비록 보리달마의 정확한 사자전승(師資傳承)은 고증을 할 수가 없지만, 다만 후래인 들이 남긴 몇 가지의 기록을 통해서 그의 행적을 추론해 볼 수 있다. 먼저 〈능가사자기〉에 의하면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ㆍ394-468)가 초조가 되고, 보리달마가 2조가 되고…, 이하 신수가 7조가 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하택신회는 남종이 전통이 된다고 굳게 주장하였다. 하지만 남종선은 대체로 달마가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가 되고, 이어서 혜가(慧可)→승찬(僧璨)→도신(道信)→홍인(弘忍)→혜능(慧能)이 육대(六代)가 되서 일맥상승(一脈相承)했다고 한다. 그러나 질가야(吉迦夜), 담요(曇曜)가 번역한 〈부법장인연전(付法藏因緣傳)〉에서는 서천세계(西天世系)의 계맥이 있다. 당나라 지거(智炬)가 지은 〈보림전(寶林傳ㆍ801)〉에서는 인도의 가섭존자로부터 사자비구가 24세가 되고, 바사사다(婆舍斯多), 불여밀다(不如蜜多), 반야다라(般若多羅)에 이르기까지 법을 전승해서 보리달마는 28세가 된다고 한다. 이설은 오대 남당의 정, 균 두 스님(五代南唐 靜, 筠 二師)이 집성한 〈조당집(祖堂集ㆍ952)〉, 영명연수(904~975)가 지은 〈종경록(宗鏡錄ㆍ957년)〉에 기록되어 있다. 또 송나라 도원(道原) 스님이 지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ㆍ1004년)〉과 명교계숭(明敎契嵩ㆍ1007~1072) 스님이 지은 〈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ㆍ1061년)〉에도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후래에 이 설은 선종의 정통설로 굳어졌다. 〈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서도 달마대사가 선종의 창시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구나발타라가 초기선종에 기여도는 있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매우 희소한데, 아마도 후대 제자가 번성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그림, 강병호
그림, 강병호

 

달마의 수행법이 처음에 중국에 들어와서 전통 선법과 다른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기존의 복잡하고 번다한 선법을 단순화시켜서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는 간단한 방식의 선법을 주장했던 이면에는 안심(安心), 벽관(壁觀)이라는 수행법의 기여가 컸던 것 같다. 안심(安心), 벽관(壁觀)의 수행법은 초기선법의 수행법과 같은 듯(차제수행법과 선정을 중시하는 것) 다른 모습(파격적인 차제 타파)은, 기존의 수행법을 행하던 사람들과 필연적인 마찰을 불러 왔고, 이로 인해서 배척과 비방을 감수해야 했고 급기야는 소림 9년 면벽이라는 역사적인 행적을 남겨야 했다. 이렇듯 벽관안심 사상이 점점 발전을 이루면서, 마침내 선종의 중요한 표석인 ‘명심견성 자성자도(明心見性, 自性自度)’의 초석을 다지는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고 하겠다. 
위에서 언급 한 것처럼 〈능가사자기〉에서 구나발타라를 초조로 달마를 2조로 기록하면서, 달마선법의 요체는 안심법문이라고 명시하고 있고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즉 “여시안심(如是安心), 여시발행(如是發行), 여시순물(如是順物), 여시방편(如是方便)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대승의 안심법이다.(此是大乘安心之法)”고 하면서, 이것들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를 “이와 같은 안심이라는 것은 벽관이며(如是安心者. 壁觀), 이와 같은 발행은 사행이며(如是發行者. 四行), 이와 같은 순응이라는 것은 비난하고 혐오하는 것을 방비하고 보호하는 것이며(如是順物者. 防護譏嫌), 이와 같은 방편이라는 것은 그 집착을 보내는 것이다.(如是方便者. 遣其不著) 이것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입사행론’이다.”고 했다.
비록 〈혈맥론〉이 위작이라고 하지만, 사상적으로는 달마의 선법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선법의 요체는 마음(心)을 닦는 것으로 역시 안심(安心), 벽관(壁觀), 이입사행(二入四行ㆍ이 부분은 많이 알려져 있어서 생략 하겠다)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달마는 인간의 의식(정신)적 활동 및 일체행위를 관장하는 것을 마음으로 보았다. 즉 ‘각성(覺性ㆍ일체중생이 모두 다 구비하고 있다)이 곧 부처와 동일하며, 행주좌와 어묵동정 등 일체행위가 모두 자기의 영각지성(靈覺之性)의 자체이며, 성(영각지성)이 곧 마음이며(性卽是心), 마음은 곧 부처이며(心卽是佛), 부처가 곧 도(佛卽是道)이며, 도는 곧 선(道卽是禪)이다. 만약에 본성을 보지 못하면 선이 아니다(若不見本性. 卽非禪也.)’고 강조하고 있다. 또 달마는 ‘본성이 곧 이 마음이다. 마음은 곧 성이다. 곧 이 마음은 제불의 마음과 같다. (本性卽是心. 心卽是性. 卽此同諸佛心) 전불후불이 오직 이 마음을 전했을 뿐이다. 이 마음을 제하고 밖에서 부처를 얻을 수가 없다.(除此心外. 無佛可得)’고 했다. 이후 이 관점은 선에 대한 선종의 기본적인 태도가 되기도 했다.  
규봉종밀(780-841)은 선원도서전집서(『禪源諸詮集都序』)에서 ‘달마는 벽관으로써 사람들에게 안심을 가르친다.’(達摩以壁觀敎人安心). 그는 다시 안심법에 관해 요약하기를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림을 쉬어서,(外息諸緣, 內心無喘), 마음이 장벽과 같이 되면, 도에 들어갈 수 있다.(心如牆壁, 可以入道)’고 하고 있다. 다시 이 관점을 재 요약해 보면, 주관(我執)과 객관(法執)이 끊어지면, 깊은 선정을 통해서 도에 진입 할 수 있다. 즉 ‘모든 인연화합으로 인해서 생겨난 인연들은 자성이 없는 자성으로, 마치 거울속의 모양과 같다.’ (諸法從因緣生. 無自性. 如鏡中像) 곧 존재의 실상인 공의 실상을 깨닫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달마선법은 초기 선법과는 사뭇 다른 주장을 펼쳤다. 여러 번 언급 하였듯이 인도선은 주로 수식관 등 고요히 몸을 조복하고 금욕 등의 차제수행법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달마선법은 차제를 거치지 않은 바로 마음의 본성을 직관하는 수행법으로, 마음의 본성을 깨치는 것을 중시하는 수행법으로 인도선과는 현저히 다른 수행법이었다. 이 마음의 본성을 중시하는 가풍이 바로 달마의 가풍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역시 중국 선종의 가풍이라고 하겠다. 때문에 달마가 주장한 안심(安心), 벽관(壁觀)수행법 등은 기본 전통 인도선을 배척하지는 않지만, 강조하지도 않았다. 즉 안심, 벽관선법은 자심의 본래청정심을 의지해서, 밖으로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안으로 근본 번뇌인 삼독심을 끊어버리고 무념(無念), 무착(無着)의 상태인 본성청정, 자성청정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으로 안심의 종지를 삼았다. 그러나 ‘안심’법문의 주장은 달마가 최초가 아니며, 구나발타라도 안심법문을 주장했다. 구나발타라의 안심사상은 〈능가사자기〉와 〈종경록〉에 수록되어있다.(지면상 생략)  
결론적으로 초기 선법의 차제 수행 및 번다한 종교의식 등에 비추어보면, 선종에서 강조하는 자성자도(自性自度)의 수행법도 사실은 달마선법의 직관 사유의 간단하고 단순한 원리의 수행법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즉 후세의 선종에서 자주 사용했던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고 하는(饑來吃飯,困來卽眠)’, 일상생활 속에 응용되어진 실생활의 수행자세가 곧 안심 수행법의 계승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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