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견스님

 

일주문을 바라보고 예를 갖추니 스님 한 분이 앉아 계셨다. 계단을 한발 한발 옮겨 가까이 가니 스님은 냉큼 손을 잡고 굽은 등으로 걷기 시작하셨다. 스님 방에 도착한 순간, 첫 말씀. “나랑 공부합시다.”
그렇게 기연(奇緣)이 되어 스님께서 남기신 밥도 먹어 보았고 입으셨던 옷도 걸쳐 보았다.
그리고 누군가 평상에 놓고 간 주장자도 건네받았다. 스님이 열반하신 후 다비식에서 습골의식에도 여러 스님들의 배려로 동참했다. 스님께서는 담박함을 즐기셨으며 나옹선사의 게송을 자주 말씀하셨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탐욕도 벗어 놓고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요양병원에서

 

부처님께서는 「보왕삼매론」에서 말씀하시었다.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나도 한때 비(病苦)를 맞으며 빗속을 헤매일 때가 있었기에 가끔 봉사활동을 하며 지낼 때의 일이다. 한 방에 6명의 환자들이 있었는데 몸과 마음이 흠뻑 비에 젖어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부처님 우산을 빌리자고 하여 내주었다. 내가 그에게 <반야심경>을 노래하니 그는 길고 명징(明澄)스럽다고 답하였다. 누군가도 어느 때는 병도 친구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도 비를 맞을 때 때맞추어 내리는 비라고 묵묵히 맞았고 때맞추어 찾아온 친구라고 안아 주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비는 나를 키워 접시 위에 나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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