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판벽에 꽃피운 사찰벽화의 향연

대웅전 내부 빗반자에 그린 주악·공양비천과 도교의 선인, 달마, 문수보살 벽화

 

내외부 판벽에 조영한 44점 판벽화

파주 보광사 대웅보전은 영조 16년(1740년)에 중건된 건물이다. 장엄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법당 내외부에 걸쳐 풍부한 판벽화를 경영하였다는 데 있다. 법당 내부 천정의 빗반자 벽화는 전국에 걸쳐 전통사찰에 두루 나타나지만, 외부 판벽화 조성은 드문 사례에 해당한다. 그것은 자연 풍화에 취약한 내구성을 지닌 나무 소재의 물리적 속성에 따른 것이다. 불전건물 외부판벽에 의미 있는 벽화가 현존하는 곳은 서너 곳에 지나지 않는다. 문경 대승사 극락전과 명부전, 김천 청암사 대웅전, 의성 고운사 연수전 등을 꼽을 수 있다. 보광사 대웅보전의 외부 판벽화는 희소한 사례들 중에서도 첫손에 꼽힌다. 미학성, 교의성, 벽화 소재의 다양성 등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희귀한 법당외부 판벽화의 대표작
내부 빗반자에 화조도와 정물화 그림
새우, 게, 잉어 타고 바다 건너는 선인
외벽에 호법신중과 보살, 연화화생도

보광사 대웅전에 조영한 판벽화는 모두 44점이나 된다. 내부 빗반자에 34점, 외부 판벽에 10점을 조성했다. 내부 34점 빗반자 벽화를 그림 소재별로 분류해보면, 주악 및 공양비천도가 12점이고, 보살과 나한, 선인도가 8점, 꽃·나무·새 및 정물화가 14점이다. 절반이 19세기 조선후기 사회에 폭발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되었던 민화의 제재들이다. 천정 빗반자에 주악, 공양비천도 조성은 보편적인 양식이지만, 민화풍의 화조도라든지 게, 새우, 물고기 등의 그림들은 의외의 소재들로 여겨진다. 특히 소반 위에 난초 화병과 종이, 채소, 생선 등을 묘사한 정물화 양식은 인상적이다. 귀한 그릇과 꽃 · 채소 등을 정물화 형식으로 그린 민화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를 연상하게 장면이다.

주악비천, 도교 선인들의 판타지

주악비천이 연주하고 있는 악기들은 박, 북, 생황, 비파, 대금, 피리 등 타악기와 현악기, 관악기를 망라한다. 비천(飛天)의 머리 위를 한 바퀴 감고 펄럭이는 표대(飄帶)가 음악의 선율이나 무용의 리듬 감각을 전달한다. 표대는 하늘을 나는 비천 고유의 조형 표현으로써, 넓고 긴 띠로 표현한 공간이동의 날개 역할을 한다. 표대의 대범한 율동적인 표현을 통해 비천의 운동에너지와 음률의 파장을 시각화 한다. 채색에 공통적으로 사용한 중심 색채는 주황색과 청색, 흰색으로 발색의 선명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2점의 비천 별지화 중에서 공양비천은 하나의 화면에만 나타난다. 해맑은 표정의 동자가 커다란 수박을 바구니에 담아 머리에 이고 가는 장면을 그렸다. 수박 공양 장면은 뜻밖의 신선함을 제공한다. 수박을 공양 올리는 비천벽화는 범어사 팔상전, 남양주 흥국사 영산전 빗반자에서도 볼 수 있다. 영천 은해사 대웅전 포벽이나 백흥암 상벽 나한도 등에서는 정물화 장르로 나타난다.

대웅전 빗반자 별지화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그로테스크한 선인들을 표현한 벽화일 것이다. 선인들을 그린 화풍에서 민화의 소재로 통용한 〈요지연도(瑤池宴圖)〉의 부분인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나, 혹은 도교의 여덟 신선을 그린 ‘팔선도’의 분위기가 흐른다. 해상군선도는 서왕모가 요지연에서 베푸는 천도(天桃)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여러 신선들이 바다를 건너는 모습을 민화로 표현한 그림이다. 해상군선도에서 신선들은 사슴이나 당나귀, 소, 거북 등을 타고 약수라는 바다를 건너지만, 이곳에선 과장되게 크게 부각한 새우, 게, 잉어 등을 타고 하늘의 바다를 건넌다. 그 중에는 달마선사가 갈대 가지를 꺾어 타고 양자강을 건너는 ‘달마도해(達磨渡海)’의 장면도 보인다. 도교의 선인들과 불교 선승들이 함께 등장해서 판타지의 세계를 펼쳐 놓았다. 새우와 게, 잉어 속에는 입신양명 등 인간의 현실적 욕망과 염원이 담겨 있다. 선인들이 잉어, 새우의 수염을 잡고 방향을 부리거나 손에 여의(如意) 줄기를 쥔 것으로 봐서 염원이 뜻대로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드물게는 게, 새우, 조개 등은 진리를 감추고 있는 해장보궁의 수호신장으로도 등장하기도 한다. 통도사 응진전의 향우측 불화 속에 그 장면을 볼 수 있다. 수생생물을 타고 있는 세 선인은 모두 맨발이고, 또 머리털과 수염 또한 덥수룩해서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야성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무애의 해탈 경지와 연결되는 이미지다.

대웅전 외부 동쪽판벽의 사자 탄 문수보살도

불로장생과 수복강녕의 팔선도

팔선(八仙)은 여덟 분의 도교 신선을 말한다. 민화 등에서는 대체로 남자 7명, 여자 1명으로 표현한다. 보광사 대웅전 빗반자에 보이는 팔선은 여동빈과 한상자, 남채화 세 분으로 추정된다. 여동빈은 당나라 때 실존인물로 벽화에서 등에 칼 모양을 메고 있는 신선이다. 여동빈의 검(劍)은 모든 번뇌를 끊는 마음의 검, 심검(心劍)으로 여긴다. 한상자 역시 9세기경의 실존 인물로 알려진다. 항상 피리를 불고 다니는 젊은이로 묘사한다. 벽화 속에선 대금을 불고 있는 터벅머리 총각으로 그렸다. 한상자의 피리 소리는 만파식적처럼 만물을 소생하게 한다고 전한다. 꽃바구니를 들고 괭이를 어깨에 메고 있는 신선은 남채화다. 김홍도의 8폭 군선도(1776년)에선 불로초 영지를 허리춤에 매달고, 괭이에 꽃바구니를 매단 꽃의 여신으로 등장한다. 벽화에선 불로초를 바구니에 담아 뒀다. 남채화는 여장을 한 남자 신선으로도 알려진다. 벽화에선 보살처럼 중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팔선은 시대에 따라 그 범위가 확대되고, 다른 인물을 신선으로 수용하기도 했다. 노자나 관우, 달마, 하마선인 등이 신선의 반열에 오르내렸다. 하마선인의 ‘하마(蝦?)’는 두꺼비를 뜻한다. 곧 ‘두꺼비 신선’이라는 뜻이다. 중국의 도교서적 〈신선전(神仙傳)〉에 의하면 하마선인 유해(劉海)는 세 발 달린 두꺼비를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이 두꺼비는 그를 세상 곳곳에 데려다 주지만, 한 번씩 우물가로 도망쳐 숨어버리곤 한 모양이다. 그때마다 유해는 다섯 개의 엽전이 달린 끈으로 두꺼비를 낚아 올렸다. 벽화는 두꺼비를 낚아 올리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의 내부벽화, 남양주 흥국사 영산전 빗반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도교신앙의 신선들은 불로장생과 수복강녕의 복록을 상징하지만, 유유자적과 걸림이 없는 자유분방함을 기조로 하는 점에서 번뇌로부터 자유로운 불교 무애의 사상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법당 내부의 신선도 벽화장엄은 인간의 원시적 기복신앙과 도교의 신화적 판타지 세계를 대중의 근기에 조응하는 불교의 방편지혜로 수용한 한 시대 산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대웅전 외부 북쪽판벽의 반야용선도

반야용선, 깨달음의 배

대웅전 외부 판벽화는 불교 장엄미술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나무 재질의 판벽에 규모를 갖춰 조성한 외부 판벽화는 나무 재질의 특성상 희소성의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다. 외벽의 판벽화 역시 불교 교의를 반영한 장엄과 민화풍의 그림 소재들이 섞여 나타난다. 특히 동쪽 벽면의 위태천 벽화와 사자 탄 문수동자도, 북쪽 판벽의 반야용선도와 연화화생도 등에서 뛰어난 회화능력이 드러난다. 위태천은 불법의 진리를 수호하는 ‘화엄성중’이다. 신중탱화에서 중심에 위치하는 불법수호의 핵심신중으로 모신다. 장군이면서 ‘동진보살’로도 호명하는 보살의 지위에 있다. 벽화에선 날개 장식의 투구를 쓰고 갑옷 무장을 한 채 당당한 모습으로 서있다. 온 몸을 휘감고 내리는 표대 자락에선 신령한 붉은 기운이 이글거린다. 지물로 삼지창 모양의 금강저를 쥐었다. 금강저는 모든 번뇌 망상의 싹을 단칼에 자르는 지혜의 상징물이다. 불국사 극락전 불단에선 연꽃 위에 봉안하고 있다. 수덕사 대웅전 수미좌에도 흰색 금강저 조형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곧 만고불변의 강력한 진리의 힘을 드러낸다. 그에 비해 사자를 탄 문수보살을 표현한 벽화에선 부드러움과 천진난만한 분위기가 흐른다. 문수보살은 연꽃을 들었고, 사자는 해맑게 웃고 있다. 문수보살 조형에 사자가 웃고 있는 모습은 해학성이 묻어나는 파격적인 장면이다. 김천 직지사 대웅전, 영덕 장육사 대웅전, 제천 신륵사 극락전 등에선 내부벽화로 만날 수 있다.

뒷벽의 반야용선 벽화는 고해의 바다를 건너 극락정토로 향하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왕생자 없이 다섯 분의 불보살만 표현했다. 선수에는 길잡이의 왕인 인로왕보살이, 선미에는 지장보살, 그리고 휘장을 두른 배의 중간에는 아미타삼존불이 계신다. 벽화에서 용의 보주는 반야용선의 본질을 환기시킨다. 보주는 깨달음이자 반야, 곧 지혜의 메타포다. 그것은 반야용선이 물리적인 배가 아니라, 마음 속 깨달음의 배임을 일깨운다. 외부벽화는 벽화끼리의 내용적 연결을 통해 지속적인 가르침으로 이끈다. 위태천의 금강저로 번뇌의 싹을 자르고, 문수보살의 지혜와 보현보살, 관음보살의 자비행을 실천하여 극락정토에 연화화생하는 자타일시성불도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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