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운 스님의 자비선 명상 - 2. 자비선 명상

3) 무심공부

마음의 본성은 무조작의 본연 그대로다. 그런데 이를 방해하는 것은 바로 한 생각 허망한 마음이다. 그래서 불사선 불사악이라고 했으며 다만 밖으로는 모든 반연을 쉬고 안으로는 마음의 헐떡거림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 시중(示衆)의 내용 가운데 한 생각 허망한 마음이 곧 삼계생사의 뿌리가 되니, 다만 한 생각이 없기만 하면, 곧 생사의 뿌리를 없애는 것이니라라고 모두 한 생각이 없기만 하면본연의 마음이 드러나게 되는 것으로 도()를 닦는 것이다. 이 한 생각을 없애는 수행이 바로 무심공부다. 이 망념을 없애는데 회양선사는 8년이 걸렸다. 그런데 마조선사의 시중의 내용이 수행자와 문답을 통해 바로 망념을 없애는 단서를 제공한다. , 조사의 언구(言句)가 바로 망념을 제거하는 것이므로 살()이 있고, 망념이 제거되고 진심(眞心)이 현현하여 작용하는 활()이 있다. 따라서 선사와 수행자의 선문답 속에서 선사의 언구에 주의해야한다. 선사의 언구에도 제1, 2, 3구의 경계가 있다. 1구에서 깨치면 조사선(祖師禪)이고 제2구에서 깨치면 여래선(如來禪)이며 제3구는 의리선(義理禪)이라고 한다.

마음의 본성은 본연 그대로
허망한 생각이 마음 방해해
조사의 언구로 망념 없애고
공함 알아 본래면목 찾아야

조사의 제1구는 활인검(活人劍)이며 제2구는 살인도(殺人刀)라고도 한다. 그래서 제1구의 조사선은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임제선사가 설하는 마음의 본성인 심청정(), 심광명(), 걸림 없는 청정한 빛(-無碍淨光)을 제1구에서 깨달으면 허공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이 망념이 전혀 없어 무념이다.

2구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여래선이다. 이 제2구에서 깨달으면 물위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다. 3구는 본분진여(本分眞如)를 문자로 이해하는 건립문자(建立文字)의 의리선이다. 이 제3구에서 깨달으면 진흙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선사는 수행자의 수행 경계를 따라서 코칭하는 선사의 언구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것이 임제선사의 사료간(四料揀)이다. 임제선사는 수행자를 코칭하는 방편으로 사료간을 제시한다. 사료간이란 네 가지를 헤아려 가려낸다는 뜻이다.

탈인불탈경(奪人不奪境): 사람은 빼앗고 경계를 빼앗지 않는 것은 제3구에 해당 것으로 아직 언어문자에 메어있는 수행자에게 쓰는 방법이다.

탈경불탈인(奪境不奪人): 경계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지 않는 것은 제2구에 해당하는 것으로 언어문자를 떠난 수행자에게 쓰는 방법이다.

인경구탈(人境俱奪):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은 것은 역시 제2구에 해당하는 것으로 불립문자의 경계에서 마음의 본성인 진여에 들어가게 하는 단계로 수행자에게 쓰는 방법이다.

인경구불탈(人境俱不奪):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지 않는 것은 제1구에 해당하는 경계로서 출격(出格)하게 하는 것으로 이 경계에 와 있는 수행자에게 쓰는 방법이다.

사료간의 사람과 경계에 대하여 임제선사(臨濟禪師)의 스승인 황벽희운(黃蘗希運) 선사는 전심법요에서 범부(凡夫)는 경()을 취()하고 도인(道人)은 심()을 취한다. 심경쌍망(心境雙忘)이 곧 진법(眞法)이다. ()을 망()하는 일은 오히려 쉬우나 심()을 망()하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至難]”고 한다. 보조국사는 이 사료간을 민심존경(泯心存境)-민경존심(泯境存心)-민심민경(泯心泯境)-존심존경(存心存境)으로 표현하고 깨쳐가는 수행단계로 진심직설(眞心直說)에서 제시하고 있다.

후대로 내려오면 달마가 혜가에게 던진 질문의 언구, 육조(六祖)가 회양에게 던진 질문의 언구, 그리고 이름 있는 조사스님들의 언구가 송대(宋代)에 오면서 형식화, 유형화, 공식화되기 시작했다. 이 조사의 언구를 공식화한 것을 공안(公案)이라고 하고, 이 공안의 핵심을 화두(話頭)라고 하며, 이를 참()하면 깨닫는다. 그래서 조사의 공안이 깨침의 열쇠가 되는데 1,700가지나 된다. 이 조사(祖師)의 언구를 참구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 바로 화두참구법이다.

물론 무심(無心)공부는 반드시 화두를 참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화두참구법인 간화선은 대혜선사 이전에는 없었던 수행방법이다. 공을 관하고 선정에 드는 것을 비판했지만 후대에 도리어 화두를 간()하고 몸과 마음과 화두가 하나 되는 타성일편의 화두삼매를 드는 일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이 간화선도 사마타와 위빠사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진각국사어록에 간화일문(看話一門)에 정혜쌍수(지관쌍수)가 들어간다고 한 것이다.

무심공부의 망념제거는 붓다의 수행법에도 그대로 이 망념을 제거하는 데에 있다. 붓다의 깨달음의 내용은 연기법이다. 연기법의 다른 이름은 곧 보리(菩提), 법계(法界), 진여(眞如) 등이 있다. 따라서 몸()과 감각()과 마음()과 현상()을 관찰하더라도 연기의 다른 이름인 (無常卽空)를 관찰하도록 한다. 무상을 관하고 있을 때는 신---법이 공하고 망념이 공한 줄 알기 때문에 마음의 본성인 본래면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무상즉공을 통하여 굳이 조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수행의 시작도 무상즉공이요 그 끝도 무상즉공이다. 그래서 처음과 중간과 끝이 한 치의 오차도 없다.

붓다가 부정한 수행법
그리고 붓다의 가르침은 사고의 작용을 끊어 없애는 수행을 부정한다. 그래서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 수행자가 마음을 허공같이 하여 앉아 있으면 생동감을 잃는다. 생동감을 잃은 마음은 분명한 알아차림이 없는 상태로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지게 된다고 설한다. 선정의 힘으로써 어지러운 생각을 다스리고 지혜로써 무기(無記)를 다스려야 하는데 밝은 혜가 없으면 혼침하여 무기의 상태에 떨어진다. 무기공은 무지 무명이다. 마음을 소멸시켜 생각을 없게 하면 지혜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가 없으면 깨달음도 없다. 육조단경에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무념(無念)이라 여겨 생각을 끊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생각 없음이라는 개념에 묶여 있는 것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邊見]일 뿐이다라고 하여 무념이라고 하여 생각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은 무명이라고 설한다. 생각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은 외도수행이다. 이는 지혜가 생기지 않아서 깨달음이 없기 때문이다. 무념은 단지 탐진치로 오염된 생각(망념)이 없을 뿐이다.

혜능 스님은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쓰라는 경구에 즉각 깨달음을 얻었다. 즉 허망한 망념에 의해 지어지는 삼계 속에서 살면서도 삼계의 마음을 짓지 않는다. 겉으로는 삼계를 짓는 것 같아 보여도 응무소주이생기심 하고 있는 한에는 매순간 삼계의 마음이 없다. 무아가 진실이지만 붓다도 ’ ‘라고 분별한다. 그러나 그것은 세속의 관습에 따를 뿐, 진실이 여전히 무아이듯 그와 같이 된다. 그러므로 마음의 작용인 생각이 중생을 위하는 작용으로 바뀐다. 지혜가 없으면 생각은 망념이 되어 괴로움을 가져오지만 마음의 본성을 알게 되면 생각 생각이 불생불멸하는 모두 진여의 작용이라 세간에서 삼계를 지어도 모두 진여의 모습이므로 아무 문제가 될 수 없다. 대상에 머무는 기억은 망념이고 대상에 머물지 않는 기억은 정념이며 지혜이다. 명심할 것은 사고의 작용 즉, 생각을 없애는 수행은 외도의 수행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잘못된 기억인 망념을 없애도록 해야 할 것이다.

3. 자비 수관

21세기는 풍족한 물질문명시대를 지나 안으로 마음을 닦는 명상의 시대이다. 유럽과 미국에는 상위계층에서부터 30~40여 년 전부터 명상바람이 불어서 지금은 다양한 명상법이 존재한다. 앞서 말한 바 있는 조사선의 돈오법이 최상인 것은 맞지만 다양한 근기를 가진 사람들 모두에게 최적의 수행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금 시대에는 지구 온난화, 테러, 전쟁 등을 완화하고 종식시킬 수 있는 명상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심성이 각박하고 탐욕과 분노가 커져가는 상황에서 이러한 부정적인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은 바로 자비심이다. 자비심을 드러내고 증장시킬 때 테러와 전쟁이 줄어들고 탐욕으로 인한 지구온난화도 사라질 것이다. 자비심의 싹을 키우고 증장시켜 탐욕과 분노를 줄이고 슬픔과 해치고자하는 마음을 줄이고 없애는 명상으로 자비선이 있다. 자비선 가운데 자비수관은 무상(無常), (), 무아(無我)의 지혜가 드러나도록 하고 세속의 번뇌의 뿌리를 잘라내어 생로병사가 없는 본연의 마음자리인 열반과 깨달음을 얻도록 하는 명상이다. 이 명상의 궁극은 보리심을 일으켜 지각 있는 모든 존재들의 고통을 구제하는 것이다.

자비수관은 자비심을 중심에 두고 몸을 주된 관찰대상으로 하여 나타나는 감각, 의식, 현상을 관찰하는데 나타나는 명상의 경계를 자···사 사무량심과 무상··무아·열반() 사법인의 상응하는 수행단계를 갖추고 있다. 자비수관은 정념으로 삼법인을 관찰하고 삼해탈문에 들어가 열반을 체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자비공관은 사무량심을 보리심으로 확장하여 일행삼매 속에서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얻어 깨달음을 얻고 궁극의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자비선은 오로지 붓다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정통 수행법으로서 잘못된 수행법이나 극단적인 수련법으로 인해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행복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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