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선의세계/정순일 지음/골든북스 펴냄/2만2천원

목숨을 끊어야 하나, 아니면 커피를 마실까얼핏 들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어떻게 소중한 인간의 목숨을 커피 한잔과 같은 무게로 견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는 유명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알베르트 카뮈(1913~1960)가 한 말이다. 삶이란 매순간이 죽음과 삶의 갈림길이라는, 그래서 순간순간이 결단의 연속임을 암시하는 실존주의 거장다운 말이다. 카뮈가 말하는 커피는 삶 전체와 비중이 균등하다. 한 잔의 커피와 인간 생애를 동일시하는 점은 오히려 철학적이기보다 곱씹어 보면 선사다운 사유와 기지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말을 카뮈보다 한시대 앞서 살다간 초의선사(1786~1866)가 했다면 어떻게 말했을까 상상하면 참선을 해야하나, 아니면 차를 마셔야 하나이렇게 말했을게 틀림없다그것은 차의 무게와 선의 중량이 같다는 말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자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이어 저자는 이에 대해 재미있는 설명을 붙인다. “차의 성분이란게 별 것이 아니다. 99.99%에다가 약간의 색소와 카페인, 그리고 미량의 카테킨과 비타민, 거기에 더 따진다면 몇가지 미네랄 등도 있겠지만 그것들이 한 인간의 삶과 비교될 만큼 엄청난 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카멜리아 시넨시스라는 찻잎으로 조합되고, 한 잔의 차로 우리 눈앞에 현전했을 때는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이것이 대자연의 신비이며, 그것을 눈치챈 학자들이 차()에 삶을 견줄만한 큰 가치를 부여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불가에서 말하는 차선일미’ ‘다선일미’ ‘선다일여의 경지인 것이다. 이 책이 전반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차선철학에 대한 친절한 안내이다. 예로부터 차와 관계를 갖는 사람 대부분이 차도의 정신을 논하며, 그 대표적인 것이 차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차는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 존재했다. 그러다보니 차는 사람들에게 마시는 것으로서의 음료에 그치지 않고 문화와 정신을 닮은 동반자로 수용되었다. 특히 불교에서 선의 정신과 결합했는데, 차를 마시는 것과 선 하는 것을 동일 차원서 간주함으로써 마침내 차선일미 사상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차선일미가 어떤 문화적 배경과 사상적 성격을 갖는지에 대해서 깊이 논의되지 못했다. 이 책은 차와 선을 대하는 삶의 태도에 다양한 접근을 한다. 예컨대 조주선사를 비롯한 선사들의 선문답 속에서 차는 어떤 위치를 차지 하는지를 규명함으로써 차의 정신세계를 밝힌다. 이 책 내용은 원래 강연을 위해 준비됐지만 내용상 균형을 위해 학술 논문도 적절히 편집했다. 그래서 어떤 면은 학술적인 분위기도 다소 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선문답을 재미있게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각 강연은 원래 하나의 주제아래 계획된 것이 아니었으므로 내용이 일관되지도 않을 뿐더러 차선철학에 관한 체계적인 서술을 완벽하게 수행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흐름은 차와 선이라는 두 가지 범주를 과히 넘어서는 것은 아니어서, 이 책을 읽게 되면 저자가 지향하는 차선철학의 세계를 일부나마 엿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책의 형식은 하나의 주제를 맥락에 따라 짧게 잘라 편집했으며,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도록 정리했다. 따라서 독자들은 글을 무작위로 한 꼭지씩 골라서 읽어도 좋고,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는 여러 이야기들을 이어가며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차와 선을 함께 즐기는 길은 무엇인가이 책에서는 차의 정신세계를 육우의 차경에서부터 찾을 것을 권한다. 그리고 이후 불교와 도교를 넘나들면서 차의 정신세계와 통할 수 있는 문화적 요소들을 탐색했다.

또한 불교 선()의 발생과 과학적인 원리, 그리고 차를 마시면서 어떻게 선을 향유할 것인가 하는 점들에 대하여 다양한 각도로 접근했다. 예컨대 조주선사의 차나 마시게라는 화두를 다양하게 분석해 선사들의 차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조명했다. 김주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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