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가비방’ 개소 현장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서 커피 트레이너로 거듭난 어르신들이 일반인들에게 핸드드립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박재완 기자

“아이스로 드릴까요? 진하게?” 실버바리스타를 양성하는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의 가비방. 그곳의 나이 지긋해보이는 어르신은 한마디 질문을 던지고 익숙한 듯 빠르게 그라인더로 커피콩을 갈았다. 부드럽게 갈린 커피콩을 포터필터에 담아 템핑하고, 기계에 꽂자 진한 에스프레소가 흘러나왔다. 어르신이 내려준 커피에선 유명 카페 못지않은 깊은 맛이 느껴졌다. 고급 에스프레소 머신과 대형 자동로스터기. 어쩌면 백발의 어르신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장비들이지만, 그 앞에는 바리스타로 거듭난 어르신들이 당당히 서 있었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센터장 희유)는 4월 17일 어르신을 위한 커피 전문 훈련소인 커피랩실 ‘가비방’을 개소했다. 가비방에는 에스프레소 머신 2대와 자동로스터기, 자동/수동 그라인더, 온수기, 핸드드립 도구 등 최신 장비가 구비됐으며 최대 15명까지 교육이 가능하다. 가비방은 커피의 한문 음차인 ‘가배(??)’와 불교용어 ‘가피(加被)’의 합성어다. 이전에는 사설기관에 위탁해 실습 교육을 진행했지만, 가비방이 새로 개소하면서 센터에서는 실습 뿐 아니라 자격증 발급, 연습장소 대관까지 가능해졌다.

희유 스님과 관계자들이 함께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사진=박재완 기자

센터는 2010년부터 실버바리스타 양성 훈련 과정을 개발해 어르신을 위한 커피 입문과정을 지원해왔다. 처음 과정이 생겼을 때는 어르신들이 바리스타라는 직종을 낯설어했으나, 이제는 매년 100여 명의 어르신이 교육을 이수하고 있다. 올해 25명을 모집하는 커피학교 입문과정도 금세 인원이 차 마감됐다. 이제는 센터를 통해 바리스타가 된 어르신들이 다른 어르신을 가르치는 데까지 이르렀다.

어르신에 바리스타 교육
커피 트레이너 과정도…
우울하고 무기력하던 황혼
커피 내리면서 보람 찾아
자녀들도 활기차게 바뀐
부모님 모습에 감동 받아


어르신들은 바리스타 과정을 통해 우울하고 무기력하던 삶이 활기를 되찾았다고 증언했다. 센터서 바리스타과정을 모두 마치고 현재 마로니에 플러스 카페서 바리스타로 활동 중인 김선희(62) 어르신은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많이 힘들었다. 그러다가 바리스타 교육을 한다는 것을 보고 주저 없이 참여했다. 회사에 다닐 때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을 알게 됐다. 지금은 커피를 만드는 게 너무 즐겁다”며 “우리 나이 때는 우울함이나 허탈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은 꼭 취업 목적이 아니더라도 커피를 배워보길 바란다.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바리스타가 된 이후, 매일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가비방의 교육과정은 바리스타 입문부터 △바리스타 프로 △로스팅 실전 △핸드드립 실전반까지 다양하다. 입문과정은 커피학 개론부터 시작해 에스프레소 추출, 밀크 스티밍, 푸어링과 아트까지 배울 수 있다. 가장 고급 과정인 프로 과정에선 라떼아트같은 고급 기술과 핸드드립 개론 등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장비사용법’을 따로 배워 커피 기계의 결함 등에 대처도 용이해진다. 이 프로과정을 이수하면 실습 보조강사로 활동할 수 있으며, 다른 어르신들의 교육을 진행하는 트레이너도 될 수 있다. 로스팅 실전반은 다양한 원산지별 생두, 로스팅 장비를 이해하고 기술을 습득해 원두를 감별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핸드드립 실전반을 통해서는 개인의 취향과 기호를 담은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 수 있다.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어르신의 손짓이 여유롭다. 사진=박재완 기자
고난이도 핸드드립도 쉽게 해내는 어르신들. 사진= 박재완 기자

2월 22일 커피학교에 입문해 에스프레소와 핸드드립을 배운 신명자(72) 어르신은 아들이 사다준 커피콩을 활용하고 싶어 바리스타 과정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신 어르신은 “처음에는 커피콩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러다가 바리스타 과정을 듣게 됐고 이제는 집에서 커피를 내려 먹는다. 아들은 이런 날 보고 ‘참 자랑스럽다’고 말한다”며 “배움이 나의 역동적인 삶과 건강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 같다. 일을 그만뒀을 때 내 세상은 컴컴하고 우울했다. 하지만 이젠 매일 양질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 차에 관심이 많았던 김명옥(66) 어르신도 이제는 커피에 푹 빠졌다. 조계사 앞 전통찻집에서 2년을 넘게 근무한 김 어르신은 라떼를 배워보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센터서 커피를 배우게 돼 지금은 바리스타 전과정을 이수하고 트레이너과정까지 마쳤다. 김 어르신은 “함께 교육받는 사람들이 모두 나이대가 비슷한 또래들이라 즐겁다. 전통차를 만들 때는 큰 찜통을 운반하는 등 고단한 일이 많았는데, 커피는 그런 게 전혀 없어 훨씬 편하다. 지금은 커피 맛에 완전 적응했다. 서로 보조를 맞춰가며 일하는 모든 과정이 보람차고 즐겁다”고 웃어보였다.

가비방의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당당하고 활기가 넘쳤다. 커피를 내릴 때의 눈빛은 열정 가득한 이십대 못지않았다. 중생을 두루 비춘 부처님 가피처럼, 가비방서 흘러나온 커피 향은 종로 일대를 두루 향긋하게 만들었다.

 

Interview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장 희유 스님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가 올해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로 명칭이 바뀌면서 기능 또한 확대됐습니다. 훈련만이 아닌 종합적인 어르신 취업을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을 가비방 개소식과 함께 시작합니다.”
가비방 개소식에 앞서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장 희유 스님〈사진〉은 어르신들에게 바리스타라는 새 직업의 장을 열어주기 위해 사립학원 못지않은 체계적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희유 스님은 “이전에는 실버바리스타만 배출했다면 커피를 둘러싼 로스터, 트레이너 등 커피 관련 다양한 직종을 배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이 또한 어르신들의 많은 경험과 도움을 받아 진행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실제로 가비방에서는 기본 바리스타 과정과 더불어 기존 활동하던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 과정도 운영한다.
희유 스님은 “종로를 시작으로 서울 전역과 더불어 함께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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