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광 스님의 문명 기행기- ①이집트에서 보내는 편지

조계종 교육원은 4월 1~11일까지 승려해외연수 ‘혜국스님과 함께하는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해외문명기행’을 진행했다. 당시 연수 진행을 담당한 교육부장 진광 스님이 서간문 형식의 기행문을 본지에 보내왔다. 이에 본지는 3회에 걸쳐 스님의 기행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이집트 나일강변의 아름다운 석양. 사진제공= 조계종 교육원

내 사랑하는 벗이여!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중동의 땅은 온통 회색빛 사막의 향연입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안에 오아시스와 별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라지요? 당신도 저 사막 어딘가의 허공이나 바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아래 어딘가에 파울로 코헬료의 <연금술사> 소설 속 주인공인 산티아고 소년이 ‘신비의 돌’을 찾아 순례를 할 것이고, 쎙떽쥐베리의 <어린왕자>는 바오밥 나무아래에서 여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듯 합니다.

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책을 통해 보았던 이집트(Egypt) 문명의 현장과 유적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은 그 자체로 가슴 뛰는 설렘과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막의 모래바람과 스핑크스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자못 기대와 흥분을 자아내고,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피라미드, 信心의 결정체
먼저 카이로(Cairo) 기자지구의 피라미드 앞에 섰습니다. 사막위의 신기루인양 5000년의 세월을 이겨낸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신비롭고 위대한 건축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자는 외계인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당시 파라오의 장생(長生)을 위한 인간의 헛된 욕망의 상징이자 수많은 사람들의 노역에 의한 결과물로 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시 모든 이의 삶과 비원(悲願)이 빚어낸 위대한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도법사인 혜국 스님께서도 “깨달음의 여정이자 수행의 결정체”라고 말씀 하십니다.

사막의 석양에 물들어가는 피라미드 앞에는 전설의 동물인 스핑크스가 침묵 속에 지난 역사와 세상의 비밀을 말하는 듯 합니다. 사막의 바람이 전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스핑크스의 침묵의 언어를 통해 시공을 넘어 오늘에 이르는 삶과 진리의 눈을 가지게 됩니다. 다시 일어나 새로운 길과 희망, 그리고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나를 보게 됩니다.

피라미드와 더불어 이집트의 상징 중 하나인 스핑크스. 사막의 바람과 말없이 천년 세월을 서 있는 스핑크스는 그 자체로 설법으로 다가왔다. 사진제공= 조계종 교육원

이집트 문명의 원천 나일강
나일(Nail)강은 남에서 북으로 거꾸로 흐르는 강으로 유명합니다. 적도 남쪽의 고원지대에서 발원하여 아프리카 북동부를 지나 알렉산드리아의 지중해로 흘러가는 총 6,650km의 대장정입니다. 나일강 하류의 델타 삼각지의 비옥한 토지가 바로 이집트 문명의 원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70년 아스완 하이댐이 완공되면서 람세스 2세의 석상이 있는 아부심벨 신전은 수몰위기에 처합니다. 이에 유네스코(UNESCO)와 전 세계의 도움으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았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한 아름다운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인 람세스 2세의 아부심벨 신전과 왕비인 네파르테리의 하토르 신전은 그 조각과 벽화에 있어 단연 압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치세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모세가 유대민족을 이끌고 출애굽을 하게 됩니다.

아스완(Aswan)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여를 달려 옛 이름이 테베(Tebe)로 지금의 룩소르(Luxor)라는 도시에 도착 했습니다. 가는 길에 옛 토기에 물을 가득 담아 길거리에 놓아 두어 갈증나는 이웃에게 시원한 물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룩소르는 마치 우리나라의 경주와도 같은 고도(古都)로 아문(Amun)신을 섬기는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이 자리하고, 강 서안(西岸)에는 왕가의 계곡과 핫셉수트 장례전, 그리고 멤논의 석상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을 보고나면 그리스나 로마문명의 유적은 그 아류인지라 눈에 안 찬다고들 합니다. 이집트 문명의 정수와도 같은 곳이지요. 몇 날 며칠을 보아도 질리지 않는 문명의 보고(寶庫)가 바로 이곳 룩소르입니다.

룩소르에서 밤기차로 카이로 기자역까지는 꼬박 9시간이 걸립니다. 창밖의 야경과 일출 풍경을 바라보며 김광석과 당신이 좋아하는 김현식의 음악을 듣는 즐거움으로 여행은 더욱 여행다워 집니다. 그리운 이에게 엽서 한 장을 쓰는 것도 행복한 일이겠지요. 문득 당신과 함께한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조계종 교육원의 ‘혜국스님과 함께하는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해외문명기행’ 참가 대중이 룩소르 멥논의 거상을 순례하고 있다.

쓰레기 속 에서도 연꽃 피어나길
카이로에 도착해 나일강변을 거닐다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60만점의 유물을 소장한 세계 최대 박물관으로 하루 종일 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야말로 이집트 문명의 보고이자 정수와도 같은 곳이지요. 그런데 이집트인의 죽음만이 보이고 삶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아쉽기만 합니다. 죽음은 삶을 위한 것이지 삶이 죽음을 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후에는 카이로 외곽의 쓰레기더미 위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들의 신앙과 열정을 간직한 콥트 기독교인의 거주지와 그들이 세운 모카탐 동굴을 방문 하였습니다. 석회암을 뚫어 2만여 명이 예배를 볼 수 있는 동굴교회 의자에 앉아 잠시 좌선한 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앞에서 만난 이슬람 복장의 기독교인 할아버지는 자신의 손목에 선명하게 새겨진 십자가와 예수의 이름을 보여주며 행복한 미소를 짓습니다. 파리가 날리는 가운데 그가 건넨 콩죽과 빵을 넙죽 받아서 맛있게 함께 먹었습니다. 나는 이곳 쓰레기 더미 위에서 연꽃이 피어나기를, 제2. 제3의 모세와 요한, 그리고 예수가 나오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습니다. 아니 다음 생에는 이곳에 태어나 불법을 홍포하기를 서원하여 보았습니다.

아쉬운 것은 나일강변의 은수자(隱修者) 초기 사막교부의 삶과 수행의 현장을 둘러보지 못한 것입니다. 마치 수선납자의 모습과도 유사한 그들의 삶과 수행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고 유용하리라 믿습니다. 다음번에는 꼭 한번 그 현장을 찾아 함께하고 싶습니다.

특히나 이곳에는 아파트 같은 곳에서 교민과 유학생들이 한 달에 1~2회 모여 법회를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혜국 스님께서도 “미리 연락이 되었으면 설법이라도 해줄 것”이라고 아쉬워했습니다. 이역만리에서 신심과 원력으로 살아가는 불자들에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였는지 부끄럽기만 합니다.

조계종 교육원은 4월 1~11일까지 승려해외연수 ‘혜국스님과 함께하는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해외문명기행’을 진행했다. 사진제공= 조계종 교육원
진광 스님/ 조계종 교육부장

아듀 이집트…
마지막으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향했습니다.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으로 세워진 고대 도시로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있었던 곳입니다. 또한 클레오파트라의 왕궁이 있었으며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중의 하나인 파로스의 등대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무엇보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로 인해 사랑스런 곳입니다. 마치 유럽의 어느 해변도시에 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히잡을 두른 어린 소녀들이 함께 사진을 찍으며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어린 아이의 천진한 눈동자가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역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고 성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이고 깨달음이며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듀! 알렉산드리아여. 이집트여, 내 사랑이여!

나의 여정과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을 당신과 함께할 수 없어 아쉽기만 합니다. 다음에 다시 소식 전하기로 하고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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