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명상, 4월 10일 노량진 마음충전소 나눔 현장

 

10여 불자, 고시생 보살펴
주먹밥 나눔에, 책도 보시
마음충전소서 청년 힐링 전개
“힘든 고시 생활의 비타민”

검은 마스크를 끼고 책가방을 멘 한 학생이 주먹밥을 받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자 노란 조끼를 입은 중년 여성이 “학생, 많이 먹고 힘내”라고 따뜻한 말을 건넨다. 주먹밥을 담은 하얀 플라스틱 용기를 맞잡은 손에서는 따뜻한 삶의 온정이 넘쳐난다.

4월 10일 고시촌이 위치한 서울 노량진 컵밥거리에는 자비 훈풍이 불었다. 신록이 움트는 포근한 날씨가 추운 겨울의 끝을 알리듯, 이날 컵밥거리에서는 고시생들의 힘든 생활의 성공적인 회향을 기원하는 마음충전소(노량진점 소장 등명)의 주먹밥이 나눠졌다.

이날 주먹밥 나눔을 진행한 마음충전소는 올해 1월 25일 사단법인 자비명상(대표 마가)이 서울 노량진 고시촌의 한 귀퉁이에 청춘들을 위로하고 힐링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한 청년쉼터다. 마음충전소 1호점인 노량진점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을 다스리는 1인실 텐트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 고민을 보관하는 마음보관함, 마음 집중명상, 스님과 차 한잔, 밥한끼를 나누는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주먹밥 나눔에는 사단법인 자비명상의 YES봉사단을 비롯한 각 지역의 다양한 불자 10여 명이 참여했다.

등명 스님이 ‘마음충전’책을 전달하고 있다.

 

다소 어색한 듯 받지 않고 길을 재촉하려던 고시생들은 부드러운 미소로 권하는 어머니 같은 자비명상 봉사자들의 모습에 마음을 열었다. 주먹밥을 나누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봉사자들이 지나가는 고시생들에게 다가가지 않아도 될 만큼 길게 줄이 생겨났다. 주먹밥 부스 한켠에서는 허기가 진 듯 바로 밥을 먹는 고시생들도 있었다.

이런 고시생들에게 마음충전소 노량진점 소장 등명 스님은 마가 스님의 ‘마음충전’ 책에 힘이 되는 문구를 써 함께 전달했다.

스님이 고시생들에게 써주는 문구는 특이했다. 호칭을 고시생들이 되고 싶은 직책으로 써주고 있었다.

“밥이 배를 채운다면, 책은 마음을 채웁니다. 꿈을 잃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면 이뤄지기 마련입니다. 힘들 때는 책에 있는 좋은 문구를 보며 기운을 내세요. 우리 함께 힘냅시다.”

동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공무원 시험 중인 김지영 씨에게 등명 스님은 “학생이라고 부르지 않고, 공무원님이라고 부르겠다”며 ‘김지영 공무원님에게’라고 정성스럽게 글을 써주며 말했다.

김 씨는 “불교 종립인 동국대를 다닐 때도 스님들을 보고 불교 학교인 것은 알았지만, 불교계가 이렇게 여러 곳에서 활동하는지는 몰랐다”며 “공무원 시험 준비에 비타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주먹밥 나눔에는 다른 고시생들도 참여했다. 주먹밥 나눔에 동참한 마음충전소 1호 회원 송연주 씨는 이제 막 공무원 시험 준비에 들어간 고시초년병이었다.

주먹밥을 시식하는 고시생들.

 

송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노량진에 오니 그 무엇보다 마음의 불안감이 컸다. 우연한 기회에 마음충전소를 알게 됐고, 틈틈이 충전소에 다니며 힘을 얻고 있다”며 “평소에 고마운 점을 회향하고 싶고, 또 다른 고시생들에게도 이런 마음쉼터를 알리고 싶어 오늘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송 씨는 “딱히 사찰에 나가지는 않지만 어려운 이들에게 다가가는 불교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다. 공무원 시험 후에는 불교 공부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새벽부터 이날 배포한 주먹밥을 만든 보광심 김경숙 씨는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자식 같다. 허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아이들한테 밥을 짓듯이 밥을 만들었다”며 “불교를 알리는 일도 무조건 불교가 좋다고 믿으라고 하고, 불교경전을 보라고 해서는 안된다. 불자들이 우리 이웃들이 힘들 때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주는 자비로운 모습을 보일 때, 부처님 가르침을 조금 더 알리는 일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주먹밥 나눔은 30분 만에 끝이 났다. 고시생들이 너도나도 받아가 준비한 주먹밥이 금방 동이나기도 했지만, 주변 상인들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짧은 시간에 끝마쳤기 때문이다.

봉사자들이 횡단보도서 주먹밥을 전달하고 있다.

 

멀리 수원에서 온 YES봉사단의 조성학 씨는 “새벽부터 준비를 했지만, 처음에는 미처 주변 상인분들의 사정을 고려하진 못했다. 다행이 구청 중재와 상인연합회 측의 양해로 이뤄질 수 있었다. 상인들 입장에서는 생계가 달려있지만 어려운 형편의 고시생들을 위해 조금씩 양보해줘 너무나 고맙다”고 말했다.

등명 스님과 봉사자들은 주변 상인들에게 고마움을 담은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짧은 나눔 끝에 이들은 다시 마음충전소에 모였다. 스님의 지도 아래 봉사자들은 차분히 자비명상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정견 최기욱 씨는 “공무원 출신으로 특히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고시생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며 “보다 많은 사회 소외계층을 위해 불자들이 조금씩 다가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비명상 회원들이 고시생들에게 전달하는 주먹밥과 책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따뜻한 온정에 길을 가던 학생들은 발길을 멈추고 잠시 마음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청년세대 마음 어루만질 터”

마음충전소 운영하는 마가 스님

마음충전소에는 사단법인 자비명상 대표인 마가 스님의 원력이 담겨 있다. 스님은 강남 지역에 명상센터를 알아보던 중 한 할머니의 아들이 9년간의 고시공부 끝에 자살했다는 사연을 듣고 노량진에 마음충전소를 열게 됐다. 21살에 출가한 마가 스님 역시 젊은 시절 가족을 등진 아버지에 대한 원망 때문에 힘들어하다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고 한다.

스님은 “‘노량진에서 10만명의 청년들이 헤매고 있는데 그동안 불교는 무엇을 했는가, 스님들은 무엇을 했느냐’는 목소리를 듣고 이들이야 말로 소외된 이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충전소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마음충전소는 앞으로 마음 트레이너 양성, 상담 매뉴얼 및 사운드 테라피 제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쳐 나갈 계획이다.

마가 스님은 “청년실업, 세대갈등 등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이들에게 한발 다가갈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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