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신도 관리, 초심자 안내부터 시작

사찰로 들어가는 불자들의 모습. 친절한 안내와 신행모임 소개 등이 필요하다.

수학여행 혹은 관광 이외에는 사찰을 한 번도 찾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그에게 종교에 의존할 일이 있어서 혹은 누군가의 권유로 인하여 “오늘 절에 한번 나가보고 절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자”라고 결심하였다면, 이것을 쉬운 결정이라고 생각하는가? 절대 아니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결정하기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만일 그가 기독교 신자라면 불자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이 일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경험을 해보려는 시도일 수 있다. 다른 사찰에 다니던 불자가 이사를 비롯한 제반 사정으로 인하여 다른 사찰을 찾는 경우라도 역시 많은 고민을 하고 앞으로 다닐 사찰을 결정하게 된다. 이와 같이 누군가 어떤 사찰에 다니고자 마음먹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작 각 사찰에서는 새 신도를 맞이하는데 대한 고민과 준비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대부분의 사찰은 새 신도에 대해 무관심하다. 특히 기존 불자가 아닌 초심자는 혼자서 물어물어 법회시간을 알아내고, 법회장소를 찾아내고, 눈치로 주위 사람들을 따라서 법회의식을 치루고, 내용도 잘 모른 채 어려운 법문을 들어야만 한다. 때로는 주변사람들과 익숙하지 않은데서 오는 불편함에 대중공양도 하지 않고 집으로 가기도 한다. 그렇게 산문을 나서 집으로 가는 초심자의 마음속에는 불교에 대한 어려움과 사찰에 대한 어색함이 자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에게 다시 사찰을 찾아올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초심자 응대부터 변화해야
친절한 신도교육·지속관리
신도모임 안내로 애정↑


지금까지의 기술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새 신도는 새로 특정 사찰의 신도가 된 사람으로 초심자일 수도 있고 다른 사찰의 기존 신도일 수도 있다. 초심자란 불교에 입문한 기간이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을 의미한다. 또한 다른 사찰의 기존 신도가 특정 사찰의 새 신도가 되는 것은 이사에 의하여 사찰을 옮기는 경우와 특정 사찰 및 스님에 대한 선호로 인해서 사찰을 옮기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사찰은 이들 모두를 사찰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관리’라는 용어에서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사찰에서 신도를 대하는 것은 기업에서 이윤을 위하여 고객을 대하는 행위, 조직에서 사람을 지휘·감독하는 행위, 혹은 시설이나 물건을 보존·개량하는 행위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며, 이에 본고의 신도 관리란 진정한 돌봄, 그리고 개인적 돌봄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량으로 신도를 생산하기 위한 기계적 행위가 아니라 각 사찰이 손길과 땀방울 그리고 헌신을 기울여 불자로 키워내는 인간적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새 신도 관리 방안에 대하여 알아보기 전에 그 목적을 우선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새 신도를 위한 관리는 불교와 사찰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사찰에 대한 적응을 지원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불교와 사찰에 대한 이해란 새 신도가 불교와 사찰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불자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불교교리와 불교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며, 사찰의 구성원으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사찰 역사와 사찰 예절을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불교교리와 불교사에 대한 이해는 기복불교(祈福佛敎)를 벗어나 수행불교(修行佛敎)를 하도록 도와 줄 것이며, 사찰 역사와 사찰 예절에 대한 이해는 사찰에 소속감을 가지고 활동하는 여법한 불자가 되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사찰에 대한 적응 지원이란 새 신도가 사찰에서 소외감·거리감 없이 심리적 안정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초심자는 물론이고 다른 사찰에 다니던 신도라도 사찰을 바꾸어 참석하면 소외감과 거리감으로 인해 불안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새 신도의 정착을 돕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규 신도는 법회 등 사찰 행사에 몇 번 참석하다가 심리적 불편함으로 인해 불자가 되기를 포기하곤 한다. 새 신도가 사찰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사찰에 적응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찰이 신도 사이의 교류를 도모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제 새 신도 관리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하여 이야기 하도록 하자. 새 신도 관리 방안으로 신도 교육을 시행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우리나라 불교신도는 가족의 건강, 경제적 풍요 등을 부처님에게 기원하기 위한 기복을 위하여 사찰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풍토는 자기가 수행을 하여 깨달음에 이르러 부처가 되고자 하는 불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특히 새 신도에 있어서 불교가 기복불교가 아닌 수행불교임을 교육하는 것은 그 사람의 평생 신행의 방향을 결정한다. 하지만 기복불교를 수행불교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신도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신도 교육은 불교대학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단위사찰에서 불교대학을 운영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이에 사찰의 여건상 불교대학 운영이 어렵다면 법회에서 일정시간을 불교교리 공부에 배정하거나 불교교리 공부모임을 운영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불교교리 교육을 바로 실시하는 것은 새 신도에게 상당한 부담감을 주고 사찰을 나오기 싫어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새 신도가 법회에 매번 참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친교적 만남과 지속적인 애정을 통해 적응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찰생활에 서툴기 마련인 새 신도는 우선 기존 신도들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관심과 애정에 마음이 끌리고 이를 통해 적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방안이 새 신도 소개 및 신도모임 안내와 사찰활동 참여권장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새로운 모임에 참석하면 심리적 불편함과 거리감을 갖게 된다. 발심(發心)하여 사찰에 나온 새 신도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 없거나 기존 신도와의 교류를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다면 대중으로부터 소외되기 쉽다. 사찰에서의 소외감이 심해지면 새 신도는 더 이상 사찰에 나오지 않게 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법회 시간에 새 신도를 소개해 주는 시간을 정례화하거나 사찰의 신도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안내 등을 해야 한다. 사찰에서는 일반적으로 새 신도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신도모임을 안내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새 신도는 기존 신도와 친분을 쌓거나 신도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만도 적지 않은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새 신도를 사찰 활동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신행심을 제고하고 사찰에 대한 적응력을 높일 수 있다. 사찰에는 경전공부모임·수행단체·자원봉사단체·동호회 등 신도로 구성된 각종 모임이 있다. 신도모임은 주로 신행의 제고와 친목의 도모를 위해 구성된다. 새 신도는 다른 신도와 함께 수행함으로써 나태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신도 간에 자연스럽게 교류가 형성되어 사찰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으며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서만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수행을 위해 사찰을 다니기도 하지만 교류를 위해 사찰을 다니기도 한다. 사찰은 수행의 장소이자 교류의 장소이다. 사찰활동은 사찰을 수행의 장소이자 교류의 장소로 만들어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사찰활동은 불교의 수행과 사찰의 교류에 익숙하지 않은 새 신도를 정규신도가 되도록 이끌어 준다.

사찰은 새 신도와 좋은 관계를 맺을 때 성장한다. 사찰과 새 신도가 관계를 잘 맺지 못하면, 새 신도는 다음번에는 사찰에 나오지 않을 것이고, 기존 신도도 다른 사람을 사찰에 데려오는 일에 주저하게 될 것이다. 새 신도에게 두 번째 방문을 섣부르게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대개 새 신도를 붙잡을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새 신도가 사찰을 다시 찾게 하기 위해서는 사찰이 그만큼 고민을 하여야 한다.

우선, 자발적으로 찾아온 새 신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새 신도가 겪게 되는 고충을 생각해보라. 새 신도에게 안내를 잘 하고 있는가? 기존 신도들은 새 신도를 편안하게 해주는가? 새 신도의 감정을 고려해주지 않으면, 초심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배움을 시도하지도 않고 다음번에는 사찰에 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또 다른 사찰을 찾아 떠날 것이다.

다음으로, 새 신도와 더불어 기존 신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존 신도가 주변 사람들을 사찰로 데려오기를 원하는지를 생각해보라. 주변 사람들을 데려오는 일에 망설인다면 그 장애물은 무엇인가? 기존 신도가 주변 사람들을 데려 오는 일, 즉 포교에 대하여 아예 무관심하지는 않은가?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관점으로는, 사찰이 새 신도를 더 환영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사찰이 지역사회와 잘 지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양한 수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법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을 고민하여야 한다.

그리고는 보다 근본적으로, 사찰과 법회에 대한 가치를 고민하여야 한다. 사찰에 한 번 왔던 사람이 다시 오지 않는 것은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다. 다시 오지 않는 데는 수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가치’이다.

그러면 그 가치란 무엇인가? 너무 거시적인 차원에서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찰의 법회나 제반 요소를 통해 누군가의 인생을 변화시킨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다. 사람들이 법회에 오지 않으려 하는 것은 법회보다 다른 일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법회 때면 집에 있는 것보다 법회를 봉행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법회의 가치가 높아지면, 사찰에 가지 않고 그 시간에 집에 있으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신도가 법회를 보면서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적용할 것이 많을수록, 그 법회를 더 가치 있게 생각할 것이다. 그 가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다시 사찰을 찾을 가능성은 높아진다. 새 신도가 사찰에 와서 불교가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사찰은 포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그들이 다른 사찰에 가서라도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가치는 기존 신도나 새 신도의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찰이 창조하는 가치의 수준을 높일 때, 다른 곳에서 보다 사찰에서 더 귀중한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사찰이 시간을 들여 그 일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떠나거나 찾아오지 않음을 책망할 수는 없다.

새 신도 개개인이 더 가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사찰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보아야 한다. 사찰이 가치를 줄 수 있을 때, 새 신도는 다음번에도 사찰에 나올 것이고, 다른 이웃들도 데리고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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