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한성백제아카데미 특강…주제 : 고려 불교 법구의 형태와 상징

2012년 서울 도봉서원터 발굴 현장에선 조선시대 유교서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교 용구들이 77점 발굴됐다. 그 중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금강령, 금강저와 같은 국보급 고려시대 불교문화재들이 있었다. 한성백제박물관은 도봉서원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 중 출토된 국보급 문화재인 금동제 금강령과 금강저를 비롯한 고려시대 불교용구 79점을 모두 선보이는 최초의 전시를 개최했다. 이와 함께 ‘고려시대 영국사와 조선시대 도봉서원’에 대한 전시 연계 강연회도 개최했다.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연구원장은 4월 3일 한성백제박물관 강당에서 ‘고려 불교 의기의 형태와 상징’을 주제로 강의했다. 강 원장은 “불교공예품에서 세계 최초로 상징을 밝혀내고자 한다”며 “공예품을 조각이나 회화보다는 낮게 보지만, 그 장르가 무관하게 불교의 절대적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리=박진형 기자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은… 서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고고인류학과에서 수학했다. 일본 교토국립박물관과 도쿄국립박물관에서 동양미술사를 연수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68년 이래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과 학술사, 학예연구관,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및 학예연구실장을 거쳐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고려시대의 금속공예는 거의 모두 불교와 관련돼 있습니다. 도봉서원과 영국사가 겹쳐진 유적에서 발굴을 통해 발견된 금속공예 일괄은 특히 큰 청동기 솥에 함께 넣었던 것으로 보아 불교 의식 때 썼던 의기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일괄 의기로 각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걸친 영국사 터 위에 조선시대의 도봉서원을 지었으므로 불교를 탄압했다고 하더라도 고려시대에 쓰였던 의기들은 신성한 것이므로 큰 청동 솥 안에 다수의 청동향완, 청동합 등을 넣어 보호한 것입니다. 옆에 청동유개호가 있었고 청동화로, 청동대야는 그 위에 거꾸로 덮인 상태로 출토 됐습니다. 오늘은 이들 가운데 몇 가지 법구들을 택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금강저(金剛杵, Vajra)
승려가 수법(修法)할 때 쓰는 법구(法具)의 하나입니다. 본디 인도(印度)의 무기(武器)입니다. 밀교(密敎)에서 번뇌(煩惱)를 깨뜨리는 보리심을 뜻하므로 이를 갖지 않으면 불도 수행(修行)을 완성하기 어렵다 합니다.

금강저는 점차 무기의 성격보다는 여래의 금강과 같은 지혜로써 능히 마음속에 깃든 어리석은 망상들을 파멸시키는 보리심을 상징합니다. 주로 밀교에서 금강저를 특히 중요시하여 의식과 수행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때 금강저는 금강령과 함께 사용되기도 하죠.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금강저로는 국립 중앙 박물관에 길이 22㎝의 고려시대 청동5고금강저가 가장 오래된 금강저로 소장돼 있으며, 일반 사찰에서 조선 시대의 금강저를 볼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사경. 변상도에는 가장자리를 금강저문(金剛杵紋)으로 장엄한 예가 자주 나타나며, 현존 신중탱화에서는 대부분 금강저를 볼 수 있습니다.

반자(盤子)
금속으로 만든 북의 일종으로 사찰에서 사용하는 불구의 하나입니다. 옛날 군대에서도 사용했으나 사찰에서 주로 사용하는 불구(佛具)의 일종이죠. 형태는 농악기인 징과 비슷하며 금구(金口 또는 禁口)로 불리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작연대가 확실한 것으로는 함통육년명금고(咸通六年銘金鼓:865년(경문왕 5))로 현존하는 금고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운판
운판(雲板)은 장판(長板) 또는 판종(板鐘)이라고도 불리는 절에서 쓰이는 의식용 법구의 하나로, 철 또는 청동으로 만들어지며 외곽의 형태가 구름 모양을 하고 있어 운판이라고 했습니다. 용의 굴곡진 몸체를 운판의 외형으로 삼아 서로 마주보게 배치한다거나 마치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불꽃의 광배형(光背形)으로 구성한 경우 등 매우 변화 있게 처리했습니다.

범종(梵鐘)
범종의 신앙적인 의미는 종소리를 듣고 법문을 듣는 자는 오래도록 생사의 고해(苦海)를 넘어 불과(佛果)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범종은 불교적인 금속공예품 가운데 으뜸을 차지하는 특수한 종류입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으로 밝혀진 것은 오대산(五臺山)의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입니다.

한국종의 특징은 무엇보다 우아하고 안정된 외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며 그 소리도 매우 은은하고 맑습니다. 고려시대의 범종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천흥사 동종(天興寺銅鐘)이 있으며 1010년(현종 1)에 제작됐습니다. 고려시대의 범종으로는 1058년의 청녕4년명 동종(淸寧四年銘銅鐘)과 1222년(고종 9)에 조성된 내소사 동종(來蘇寺銅鐘) 등이 있습니다.
 

고려시대 금속 불교법구
우리가 불교금속공예 뿐만 아니라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작품들의 본질에 이르기 위해서는 용어들의 개념을 올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여 연구가 답보 상태에 있습니다. 더구나 불교미술을 불교사상과 함께 거의 추구하지 않아서 더욱 법구들의 본질을 밝힐 수 없었습니다.

용(龍)
저는 동서양의 무한히 많은 용의 조형들을 분석하여 용의 새로운 개념을 정립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용은 동물이 아니고 대우주의 기운을 동물 모양으로 압축하여 나타낸 것으로 용의 조형 일체가 다양한 영기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보주의 집적(集積)입니다. 그래서 보주의 입에서 무량한 보주가 생겨납니다. 또한 다양한 영기문이 생겨나서 만물생성의 근원을 이룹니다. 영기문은 생명생성의 과정을 보여주는 연속무늬로 우리가 당초문이라고 부르는 조형들도 영기문에 포함됩니다.

보주
보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보주 또한 대우주의 기운을 압축한 것으로 모양은 역시 여러 가지이나 구체(球體)로 흔히 표현하지만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된다. 보주는 보석이 아닙니다. 보주 안에는 무량한 보주가 들어 있으며, 보주 안에는 무한한 바다[물]가 들어가 있으며, 보주 안에는 무수한 여러 가지 영기문이 가득 차 있기도 하여 이들이 보주에서 나와 만물생성의 근원을 이룹니다.

연꽃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연꽃은 연꽃이 아닙니다. 고구려 벽화의 천정에 있는 연화는 연화가 아닙니다. 연꽃모양에서 중요한 것은 씨앗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의 근원인 씨앗은 조형적으로 승화되어 보주가 되는데 씨앗이 보주가 된다는 진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중심의 ‘씨앗들=보주’에서 연잎 같은 영기문이 사방으로 확산해 나가는 형상입니다. 모든 꽃은 씨앗을 품고 있어서 모든 꽃은 보주를 품고 있다는 진실을 알면 고대 미술이 모두 올바로 풀립니다.

당초문→영기문
세계미술에는 국화 당초문, 연 당초문, 모란 당초문, 포도 당초문, 인동 당초문, 보상 당초문 등 당초문이란 모양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 무수한 당초문이 단지 덩굴무늬가 아니고, ‘만물생명이 생성하여 가는 과정을 지닌 영기문’임을 알게 됐습니다.

화생(化生)
화생과 탄생은 전혀 다릅니다. 탄생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생김’이고, 화생은 조형예술이나 종교에서 말하는 ‘초자연적 생김’입니다. 화생의 개념을 올바로 설명한 사람은 아직 없는데 저의 방대한 이론이 바로 〈영기화생론〉입니다. 미술사학에서 스스로 증명하며 정립한 이론을 제시한 경우는 아직까지 동서양에 없었습니다.

이제 작품해독법인 ‘채색분석법’으로 분석하여 가며 자세히 설명해보겠습니다.

금강저의 채색분석

사진제공=강우방 원장.

금강저는 밀교의 전용물이 아닙니다. 금강저의 조형은 그 전개 원리가 있으므로 채색분석이 가능합니다. 중앙의 보주가 가장 중요하고 그 보주에서 번개가 뻗쳐나가는 것이니 ‘금강저는 바로 여래’입니다

금강령의 채색분석

사진제공=강우방 원장.

금강령은 위로는 용의 입에서 번개가 뻗쳐 나오는 형상이고, 아래로는 령(鈴), 방울이 생기는 형상이지만 실은 작은 범종입니다. 혀는 물고기이지만 물고기가 아닙니다. 물고기 입에서 보주가 나오고 있습니다. 물고기는 물을 상징하므로 물에서 용이 생겨나기도 하는데 민화에 많이 나옵니다. 종소리는 부처님이 말씀으로 진리의 소리죠. 이 역시 밀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금강령에는 매우 많은 불상[五大明王]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불상마다 주변에 제1영기싹 영기문이 많아 그 영기문에서 불상과 사천왕상이 화생하는 것입니다.

금강령 혀인 물고기의 채색분석

사진제공=강우방 원장.

금강령의 혀인 물고기는 따로 다룹니다. 물고기는 입에서 보주가 나오려 하죠. 이것으로 보아 물고기와 용은 속성이 같습니다. ‘물’을 상징하는 물고기와 용은 그 입에서 보주와 영기문이 나오는데 모두 만물생성의 근원이죠. 물고기 입의 보주가 ‘방울=종’을 치는데, 우주의 압축인 보주가 방울을 쳐서 소리를 내므로 그 소리는 우주의 소리, 우주에 가득 찬 진리의 소리임을 웅변하는 것입니다. 물고기 입에서 용이 화생합니다.

반자 혹은 금고의 채색분석

사진제공=강우방 원장.

반자는 악기의 일종으로 만병(滿甁)입니다. 우주의 기운이 가득 찬 보주기도 합니다. 반자의 중심에는 연꽃모양이 있는데 씨앗이 많은 보주로 승화하여 무량한 보주가 됩니다. 범종에서와 마찬가지로 당좌, 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영기문이 있습니다. 당초문이 절대 아닙니다. 영기문은 생명생성의 전개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반자의 소리가 진리의 소리라는 것을 웅변합니다. 반자에는 여러 가지 각기 다른 영기문을 베풉니다. 반자의 무량한 보주를 침으로서 우주에로 무량한 보주와 영기문이 퍼져 가득 찹니다.

천흥사 범종의 보주곽의 채색분석

사진제공=강우방 원장.

연꽃잎 모양의 씨방 자리에서 네 잎이 받쳐 든 큰 보주가 화생하고 있습니다. 씨앗들이 보주로 승화하여 발산하려는 광경입니다. 9개가 있는데 9는 양수 가운데 가장 큰 수로 무량한 보주가 발산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주변 띠에는 복잡한 영기문이 둘려져 있습니다. 매우 복잡하되 정교한 영기문으로 범종을 만든 장인은 영기문의 전개원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화시키면 제1영기싹이 연이어 전개하는 영기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명생성의 근원들을 표현하는 것은 범종이 여래의 몸이며 종소리가 여래의 설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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