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안 필요성 대다수 공감, 세부절차엔 이견

#비구 A스님은 지난해 어느 비구니스님 장례에 문상을 갔다가 당황스런 경험을 했다. 비구니와 재가불자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어른스님 가르침을 되새겨 합장 저두례만 하고 나오는데 뒤이어 들어온 연배 높은 비구스님이 영단에 절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혹여나 절하지 않은 자신 때문에 상주가 불쾌하게 여기진 않을까 눈치가 보였다.

#재가불자 B씨는 도반의 장례에 문상을 가면서 영단에 절을 2번할지, 3번할지 수차례 고민한 적이 있다. 도반이 신심 깊은 불자인 점을 감안하면 3배가 맞을 것 같지만 유교문화가 짙은 우리나라 장례풍습을 감안하면 2배를 하는 게 무난할 것 같아서다. B씨는 공식화된 불교 문상의례 절차가 있으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불교계 내에서 표준화된 문상의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계종의 경우 중앙종회서 표준 문상의례에 대한 종책질의가 나오고, 대다수 스님들이 공감할 정도로 관심이 많다.

문상의례 공식 절차 없어
현장에서는 이현령비현령
유교문화 영향 무시 못해
대중공의 담아 해결해야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태원 스님은 최근 제210회 중앙종회 임시회서 종책질의를 통해 불교식 문상의례가 정착되지 않아 장례식장, 분향소 등에서 많은 혼선이 빚어져 진정한 종교적 위무가 이뤄지지 않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종회의장인 성문 스님을 비롯해 많은 종회의원들이 공감을 표하며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다.

태원 스님은 문중, 사찰별로 의례가 달라 문상을 다닐 때마다 절을 몇 번 해야 하는지부터 위패 작성법의 차이 등 혼란이 해소되지 않는다면서 종단차원의 표준 문상의례가 정착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조계종 의례실무위원회는 매월 한 차례 회의를 열어 각종 의례 표준안을 만들기 위해 논의하고 있다. 다만 표준안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에 비해 세부절차에서 좀처럼 의견을 좁히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까지 논의된 내용은 스님의 경우 문상 대상이 승가와 재가 여부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정도다. 특히 문상 대상이 스님일 때 가사 장삼을 갖추고 절을 올리는 것으로 논의 중이지만 2배와 3배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또 재가자 문상서는 합장, 저두례는 하지만 절은 하지 않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장은 표준안은 필요하지만 그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표준안이 생기면 대중의 관념이나 인식을 지배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스님들도 수륙재나 영산재에서 영단에 반드시 절을 한다. 단순히 재가자 문상이라는 이유로 스님이 절을 하지 않는 것은 애매한 기준이 될 수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의례실무위원인 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범망경> 보살계의 내용 등을 예로 들어 기준 설정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스님은 “<범망경>은 대승경전이지만 출가자는 임금·부모·친인척·귀신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귀신에 망자를 포함할 것인가에 따라 재가자 영단에 대한 예가 바뀔 수 있다. 최대한 부처님 가르침에 부합하도록 해석하려다보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면서 불교의 계율이 수범수제(隨犯隨制)이듯이 절대적 원칙은 없다. 이 시대 공의가 모여야 다수가 인정하는 표준안을 마련하기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문상의례의 세부절차와 관련해 전문가들의 해석에 차이가 있어 의례실무위원회는 장기적인 공청회까지 염두에 두고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개인이 문상 갔을 때의 약례와 단체의 광례로 나눠 구체적인 절차를 다듬는 한편, 망자에 대한 명칭을 탈상 이전 이후에 선엄부(先嚴父), 선자모(先慈母) 등으로 칭하도록 의견을 모았다. 또한 위격은 탈상 이전에 영가(靈駕), 탈상 이후에는 연위(蓮位)로 칭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 역시 지난한 논의과정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돼 현장서 겪는 혼란이 빠른 시일 내 해결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율장에 근거한 문상의례는 없을까. 통도사 율학승가대학원장 덕문 스님은 율장에 불탑이나 불당 앞으로 시신을 운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있지만 특별히 문상에 대한 내용을 찾기는 힘들다비구가 비구니 문상을 갔을 때 절을 하지 않더라도 정중하게 예를 표시할 수 있는 합의된 절차가 마련돼야 불편함이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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