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조홍인(五祖弘忍) 대사는 내가 너희들에게 이르노라, 세상 사람들은 죽고 사는 일이 큰일 인데, 너희들은 종일토록 단지 복전을 구하고 생사 고해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구나. 자기의 성품이 미혹하다면 어찌 복으로 생사를 벗어날 수 있을까. 너희들은 각기 스스로의 지혜를 모아 자기 본마음의 반야성품을 취해 게송을 지으라 하시고, 큰 뜻을 깨친 자에게는 나의 가사와 법을 부촉해 육대 조사가 되게 하리라고 했다. 이에 신수(神秀) 대사가 밤중에 게송을 지어 남쪽 복도 벽 위에 붙여 놓았다.

우리 몸은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
부지런히 닦아서 거울에 티끌과 먼지가 묻지 않게 하라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 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 시시근불식(時時勸拂拭) 물사야진애(勿使惹塵埃)라고

이 말뜻은 우리 몸은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 때때로 부지런히 닦아서 거울에 티끌과 먼지가 묻지 않게 하라는 의미이다. 홍인 대사가 볼때는 문밖에는 이르렀으나 아직 안으로 들어와 자성을 보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본래 마음인 불성은 항상 공적(空寂)하고 청정(淸淨)하여 번뇌의 티끌이 낄 수가 없고, 번뇌도 본래 그 실체가 없는 것이어서 텅 빈 하늘에 먹구름 처럼 홀연히 나타났다가 바람이 불면 곧장 사라지는 허망한 것인데, 닦을 것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글자를 모르는 육조 스님은 동자에게 청하여 게송을 지어 조사당 서쪽벽에 붙여 놓았다.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명경역비대(明鏡亦非臺)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 이 말은 깨달음은 형상이 없고 마음역시 실체가 없는 공성이므로 경대(鏡臺)에 비유할 수가 없는 것이며, 이름을 붙일 수도 모양을 그릴 수도 없고 닦을 수도 없는 본래 청정한 공적영지한 자성 자리를 드러내 오조 홍인선사의 법을 이어받은 육조 조사가 되었으며, 이렇게 하여 부처님의 지혜와 덕성을 모두 갖춘 본래불임을 단번에 깨닫게 하는 돈오(頓悟)가 육조혜능선(六祖慧能禪)의 핵심이다. 육조혜능(638-713) 대사가 어느 날 법회를 하던 중 대중에게 유일물(有一物) 무두무미(無頭無尾) 무명무자(無名無字) 상주천하주지(上柱天下柱地) 명여일흑사칠(明如日黑似漆) 상제동용중(常在動用中) 동용중수부득(動用中收不得) 시심마라 설했다.

내게 한 물건이 있는데 머리도 꼬리도 형상도 이름도 없으되, 위로는 하늘을 떠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받치며 밝기는 태양과 같고 검기는 옻칠과 같은데, 항상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있으되, 그 곳에 있으면서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엇인고 즉 이 뭣고하시니, 이에 하택신회(荷澤神會)(684-758)가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며 이 하택신회의 불성입니다라고 답했다.

뭐라고 이름을 붙이려 해도 붙일 수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데, 어찌 네가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며 신회의 불성이라고 말하는가라고 꾸짖었다. 이는 한 물건이 일초(一秒)도 변함없이 항상 나와 같이 있으면서도 그 가운데 그 놈을 찾아보면 얻을 수가 없으며, 눈으로 볼 수도 없지만, 부르면 대답하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기뻐하고 슬퍼할 줄 아는 그 소소영영(昭昭靈靈)한 놈이 무엇인가, 바로 그 놈을 찾는 유일한 화두가 이 뭣고인 것이다. 참선은 내 안에 있는 진여자성을 깨달아 금생에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 즉 생사해탈이 목적이며, 그래서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인 것이다. 그래서 이 뭣고한번하는 것이 팔만대장경을 모두 다 읽어 마친 공덕(功德)보다 더 수승하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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