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관련 국가·불교계 추념행사 잇달아

조계종 총무부장 정우 스님이 4.3 희생자 영단에 분향하는 모습.

피와 비명소리로 얼룩진 194843일 제주도의 아픈 역사를 달래기 위해 국가뿐만 아니라 불교계서도 추도 물결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도를 찾았고, 광화문에선 불교계 영산재가 엄수됐다.

1948년부터 70년을 가로지른 201843, 현대사의 비극을 넘어 화해와 상생·평화·인권으로 나아가는 4.3사건 추념식과 기념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졌다.

43일 설정 스님 제주 방문
같은 날 광화문서 추모 영산재
교구본사선 추모 현수막·기도
제주도민에게 평온함 오기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주 4.3사건 추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 등이 방문해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했다. 대통령의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 참석은 2006년 노무현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다. 같은 날 광화문에서는 제주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와 조계종이 함께 제주4.3 70주년 희생자 극락왕생 발원 영산재를 봉행했다.

제주도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들께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4.3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4.3희생자, 불교가 어루만지다

4.3사건은 미확인 희생자 등을 감안하면 실제 인명 피해만 25000~3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불교계도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이때 스님 16명이 죽거나 행방불명됐다. 사찰 37곳이 피해를 입었고 그 중 18곳은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스님들은 사찰 경내에서 총살을 당했고, 수장이나 고문에 의해 죽은 스님도 적지 않다. 제주도의 문화재급 불상과 탱화는 이때 거의 소실됐다. 이웃종교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조계종은 43일 광화문서 희생자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영산재를 봉행했다. 극락왕생 발원의식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뒤편에 세워진 분향소 무대에서 중요무형문화재 50호 영산재 이수자 동환 스님 등 스님 6명의 집전으로 1시간가량 치러졌다. 이날 영산재에는 직접 제주도를 찾은 설정 스님을 대신해 조계종 총무부장 정우 스님이 참석했다.

설정 스님은 정우 스님이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제주의 아픔은 깊은 고통을 오랜 세월 시대와 사회에 남겨놓았다. 먼저 진실이 규명되고 피해자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진 후에, 국민적 화해와 상생, 그리고 자비의 마음으로 대화합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오늘 영산재는 돌아가신 희생자들의 극락왕생 발원일 뿐 아니라 제주 4.3의 아픔으로 숨죽여 살아온 제주도민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치유돼 평온함이 오기를 염원하는 마음의 발현이라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전국 교구본사도 4.3사건에 추모의 뜻을 함께했다. 각 사찰들은 4월 말까지 4.3사건 추모 현수막을 게시하고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기도를 진행한다.

이 같은 불교계의 제주4.3사건 위로활동은 당시 제주불교계 피해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탄력받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제주불교계는 세미나와 연구를 실시하며 과거사를 조명하면서 제주4.3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고 있다.
 

4.3이 머우꽈? (무엇입니까?)

194843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와 미군정의 강압이 계기가 돼 일어난 민중항쟁이다. 당시 무장대원 350여 명은 제주지역 경찰지서 24곳 가운데 12개 지서를 공격했다. 이날 습격으로 경찰관 4, 우익인사 등 민간인 8, 무장대 2명이 사망했다. 이것이 제주 4.3사건의 시발점이다. 194810월 제주 토벌군으로 파견하려던 군병력이 반기를 든 여순사건이 발생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사건은 커졌다. 중간산(해발 200~600m) 마을 95% 이상이 불탔고, 이듬해 3월까지 3만여 명에 달하는 희생자 중 80%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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