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伴의 향기 - 작은보시 큰자비 연등

밑반찬 전달을 끝낸 봉사자들이 다시 봉은사 공양간에 모였다. 활짝 웃는 얼굴마다 신심과 자비심이 넘쳐난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이면 하얀 용기마다 각양 각색의 자비 반찬이 담겨 독거 어르신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노력봉사가 수행…“어르신 보길 부처님 같이”

4월 3일 오전 9시. 용인에 거주하는 혜안 보살은 집을 나선다. 여느 주부같으면 가족들이 출근하고 아침드라마를 볼 시간, 혜안 보살의 손에는 먹을 거리가 가득 들려 있다. 혜안 보살이 2시간이 걸려 도착한 곳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봉은사(奉恩寺)다.

8명의 봉사자들로 구성된 ‘작은보시 큰자비 연등’이 혜안 보살이 속한 곳. 이들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려도, 비가오고 눈이와도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독거어르신들의 밑반찬 배달을 위해 집을 나선다.

 작은 보시가 큰 자비로

2000년 첫 결성, 밑반찬 보시
강남 기초생활 25가구에 전달
이른 아침 공양간 모여
“받는 분 생각하면 쉴 틈 없어”

 신행모임이 봉사모임으로

6년 전각봉사하며 도반 모여
성지순례도 하며 친목 도모
“마음 맞으니 힘든 줄 모르고
봉사 자체가 즐겁습니다“

2000년 봉은사 신도들이 주축이 돼 시작한 ‘작은보시 큰자비 연등’은 강남구 삼성동과 청담동, 논현동 일대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25가구에 밑반찬을 전달하고 있다. 화요일과 금요일마다 지역에 혼자 사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반찬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말동무도 돼 준다.

“수지에서 오는 분도 있고, 다들 먼 곳에서 오셔요. 하지만 항상 마음이 가볍습니다.”

사찰에서 부처님 전에 기도를 하고 공양간은 이내 분주함 속으로 빠져든다. 김치를 비롯해 우엉, 가지볶음 등 음식이 오래 보관될 수 있도록 진공 포장된다. 또 다른 봉사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이다.

초창기 ‘작은보시 큰자비 연등’은 직접 음식 재료를 준비해 봉은사 공양간에서 조리, 이를 전달해왔다. 당번을 맡은 봉사자들이 매주 월요일 가락시장과 양재동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봤다. 어르신들에게 채소 반찬만 해 드릴 수 없어 사찰에서 육류 반찬을 조리하는 애로점도 있었다. 이런 사정에 봉은사의 한 봉사자가 반찬 준비를 도와줘 이제는 포장과 전달을 담당하고 있다.

처음에는 나물만 들어 있는 사찰음식 그대로 배달하니 어르신들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지금은 국과 함께 다양한 조합으로 이뤄진 반찬을 어르신들에게 전달한다.

보현행 연등장은 “3~4가지씩 준비를 해서 하나씩 포장을 다 한다. 진공포장으로 해서 3일은 놔둬도 드실 수 있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공포장을 하는 기계에서 밑반찬을 담은 하얀 용기가 나오자 이를 든 회원들의 걸음이 빨라진다. 점심 시간이 지나기 전 도시락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어르신들이 봉은사 인근에만 계신 것이 아니고 강남구 전역에 계세요.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어 서둘러야지요. 길이 밀려요. 하하”

‘작은보시 큰자비 연등’이 전달하는 지역은 강남구에 퍼져있다. 이런 관계로 2대의 차량이 동원된다. 사중에서 1대를 지원하고, 나머지 1대는 대각 한경만 포교사의 차가 사용된다. 올해로 67세인 한 포교사는 1달 전 이들 모임에 참여했다.

한 포교사는 “군법당 봉사활동을 하다, 지인의 소개로 봉은사 밑반찬 봉사에 참여하게 됐다. 어쩌다 보니 청일점이 됐는데, 오히려 보살님들 마음씨가 좋아서 즐겁게 봉사하고 있다 ”고 말했다. 한 포교사가 “차가 작아서 골목길 요리조리 가는데는 딱”이라고 하자 함께 있던 보살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이들은 걸음을 바삐 재촉했다. 일주문을 지난 차량은 반찬을 담은 하얀 용기 50여개를 싣고 구불구불한 삼성동 일대 주택가를 가로질렀다. 운전하는 한 포교사 옆에는 보현행 연등장과 법향심 보살이 이날 들러야 할 집 16곳의 주소를 확인하고 있었다.

강남 하면 의례 부자동네로 알고 있지만, 차상위계층도 상당수 있었다. 고급 외제차들이 즐비한 큰길에서 조금 벗어나자 좁은 골목길이 나왔다. 도로 끝에 차가 멈춰서자 이들은 허름한 한 빌라의 지하로 내려갔다. 휠체어가 문 앞에 놓인 집이었다.

“맛있게 드세요.” 대문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우렁차다. 저 멀리 쇼파에서 누운 한 어르신이 힘겹게 “고마워요”라고 화답했다.

“예전에는 밖에 반찬을 놓고 오기도 했어요. 밑반찬 봉사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다른 분들이 사는 집에 스스럼 없이 들어가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일까. 일부러 휠체어에 놓고가라고 문 앞에 세워두시기도 하시더라구요. 이제는 집에 들어가 전달을 합니다. 자주보니 저도 좋더라구요.”

법향심 보살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법향심 보살은 이어 “아침부터 나와서 배달하는 것이라 마지막 집에 가는 길에는 피곤함이 몰려오지만 반갑게 맞아주는 어르신들을 보면 피곤이 날라간다”며 “밝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들었을 때 가슴이 뭉클하다. 이렇게 반찬을 건네줄 수 있고,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에 오히려 더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도착한 한 집에서는 “도시락 왔어요”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관문이 열렸다. 문 손잡이를 잡고 있는 한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항상 이렇게 앞에서 기다리셔요?”

“왜 문 앞에 계시느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자주보니 딸 같아서 그렇지”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다리가 불편해 걸을 수 없는 이 할머니는 이들이 전해주는 반찬과 밥이 하루를 해결하는 유일한 끼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야 해요. 저희를 기다리는 분과의 약속이니까 안 지킬 수가 없어요. 그래도 저희는 운이 좋았어요.”

운이 좋았다는 건 궂은 날씨도 밑반찬 배달 시간만큼은 피해 갔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항상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보현행 보살은 살갑게 인사를 건넨 뒤 밑반찬을 들고 다음 집으로 향했다.

반찬을 진공포장하는 봉사자들

 

봉은사 전각 봉사하며 모임 구성

사실 이들은 ‘작은보시 큰자비 연등’의 새로운 회원이다. 10년 전부터 하던 봉사자들은 2017년 회향한 상황. 봉은사 전각봉사를 오랫동안 이어온 이들이 사찰에서의 봉사활동을 사회에서도 펼치고자 하는 마음에 다시 뭉쳤다.

이들은 6년간의 전각봉사 후 함께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분기별 여행도 함께 가는 등 모임을 구성했다.

사찰에서 봉사하는 것과 외부에서 봉사하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옆에 있던 각성행 보살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해보면, 강남구에서 반찬 봉사를 한다고 하면 다들 놀랍니다. 강남구에 반찬이 필요한 분들이 있나 하고요. 저도 이런 분들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이런 분들이 의외로 정말 많으세요. 절 안에서만 있었을 때는 잘 몰랐던 부분이지요.”

오랜 기간 함께 신행활동을 해왔기에 이들의 궁합은 찰떡이다. ‘영미’를 중심으로 컬링 국가대표팀이 모였듯, 보현행 연등장을 중심으로 모두 모였다. 한명씩 한명씩 해보자고 꼬득여 결국 팀을 이뤘다.

“저희는 봉은사 내 법당 도반이에요. 6년 넘게 봉사를 하다 1년을 함께 쉬었지요. 오히려 지금은 저보다 여기있는 사람들이 더 마음을 많이 내고 있습니다. 제가 연등장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제가 마음이 흔들려도, 저희 도반들이 더 많은 마음을 내서 제가 그 힘으로 여기 앉아있습니다.”

법향심 총무는 “먼저 계시던 봉사자분들 중에 전각부 연등장이 있었고, 일부 봉사자들도 전각부 일을 하셨다. 그 때 밑반찬 봉사 일을 알게 됐다”며 “지금 반찬을 만들어주시는 보살님이 저희 전각부에 있던 분이고, 그 보살님과 또 연관이 되다 보니 봉사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전각부 봉사의 인연으로 사중에서 친목모임도 이어가고 있다.

“전각부는 모든 사중행사에 함께 합니다. 큰 행사가 있으면 새벽 5~6시부터 모이거든요. 다들 열성이 대단한 분들이어서 회향하고 함께 봉사하자고 하니 마음이 잘 모였습니다. 그동안 목욕봉사 등도 진행했어요. 봉사활동도 중독인 것 같아요. 봉사활동을 하면 보람도 느끼고 제 삶에 감사할 줄 알게 됐어요.”

각성행 보살은 “봉사를 하면서 기도도 더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좋다”며 “어쨌든 봉사를 하러 오면 부처님 전에 기도를 하고 가니, 봉사 덕분에 또 기도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성행 보살은 “제일 좋은 것은 부처님 전에 기도할 수 있는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작은보시 큰자비 연등은 보현행 연등장(사진 뒷열 왼쪽 두번째)과의 인연으로 모였다. 모임 초기지만 원력만큼은 뜨겁다.

 

 소외계층 위한 행보 넓힐 계획

바자회서 후원 모집도 고민 중
쌀과 생필품 전달도 필요해
함께 의지하며 지속 봉사
“건강 허락되는 한 노력할 것”

더 많은 이웃들에게 자비 전할 터

이들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식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각성행 보살은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어떤 봉사가 있는지,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저희는 봉사활동을 하니까 아이들에게 봉사활동하는 길을 열어줄 수 있고 제대로 된 봉사활동을 알려 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각성행 보살은 원래 가톨릭 신자였다. 결혼 하며 불자인 남편을 따라 사찰에 나오게 됐다. 탑골공원 원각사서 무료배식봉사 등 자비보시행을 이어왔다. 각성행 보살은 “사찰에서 마음이나 몸으로 서로 도와가면서 서로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게 참 좋은 것 같다”며 “봉은사 봉사모임이 다른 곳 보다 좋은 점은 신행모임이 기반이 되다보니 서로 마음이 잘 모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반끼리 기도도, 도반끼리 봉사도 하니 좋습니다. 1년이 즐거워요.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가족들한테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옆에 있던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가족들이 더 응원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반찬 배달을 더욱 열심히 하게 될 이들의 계획은 더 많은 독거어르신들에게 반찬을 전해주는 것이다.

보현행 연등장은 “지금도 더 많은 음식을 더 많은 노인께 전해드리고 싶지만 봉사할 분들이 없어 여력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반찬 배달 봉사가 끝나도 아직 건강하니 몸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초파일 때 바자회를 하는데 열심히 준비해서 쌀도 나가고, 미역 한줄기라도 나갈 수 있게 해야지요. 호호호. 후원을 받아 어디에 써야겠다 하는 요란한 각오는 없습니다. 건강이 허락 되는 한 서로 의지하며 열심히 하겠어요. 우왕좌왕 하지만 날이 가고 달이 가 정착이 되면 계속 이어질 거라 봅니다. 다들 워낙 심성이 좋은 분들이라 잘 하실거라 생각합니다.”

이들은 “만나는 분들을 모두 부처님라 생각하고 열심히 봉사할 것이에요”라고 입을 모았다.

봉은사를 나서는 길, 활짝 핀 철쭉과 벚꽃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보시 큰자비 연등회 봉사자들의 밑반찬을 받은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또다른 꽃이 피었을 것이라 생각이 들자 발걸음이 저절로 가벼워졌다. 한편, 봉은사는 밑반찬 배달봉사를 비롯해 불자들의 다양한 노력봉사를 기다리고 있다. 관심있는 이는 봉은사 사회국(02-3218-4836)으로 연락하면 된다.

작은보시 큰자비 연등은?

‘작은보시 큰자비 연등’은2000년 9월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18년간 강남구 독거어르신을 대상으로 주 2회 밑반찬을 지원하고 있다. 2000년 10월부터 봉은사 신행단체로 활동하다 2010년 1월부터는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봉은의 밑반찬배달사업의 전문 자원봉사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의 독거어르신들을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행보는 연간 104일에 달한다. 밑반찬 봉사 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독거어르신과의 만남을 통해 기본생계와 안부 확인 등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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