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중앙博 ‘2018 금석문조사사업’ 탁본 작업 현장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이 진행하는 2018년도 금석문조사사업의 책임연구원 흥선 스님이 강원도 고성 건봉사에서 열린 현장설명회에서 사명대사사적비편의 탁본을 진행하고 있다.

강원도 고성 건봉사에 있는 사명대사기적비편은 사명당 유정(1544~1610) 스님의 행장을 기록한 비석이다. 하지만 이 비석은 1912년 일본인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건봉사 초입에는 비석들의 이수와 비편들이 수습돼 있다.

이 같은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그냥 돌무더기로 보였다. 돌 하나에 물을 뿌리고, 종이를 입혔다. 이내 솔방망이질로 종이를 비편에 밀착시키고, 다시 천을 덮어 두드리길 수차례. 최적의 습도가 만들어지자 먹봉으로 먹을 치기 시작됐다.

‘톡 톡 톡.’ 먹봉이 오르내리자 비편에 선명하게 비문 내용들 확연히 드러났다. 너무 섬세했다. 먹을 치니 비편의 흠집마저도 종이에 올라왔다. 탁본 작업을 진두지휘했던 흥선 스님이 말했다.

“탁본할 수 있는 순간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날씨, 습도, 바람까지 모두 도와야 좋은 탁본이 나와요. 재료가 좋아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좋은 탁본은 예술품으로 봐도 됩니다.”

2013년 시작된 금석문 탁본 조사
올해엔 강원지역 95기 비문 탁본
건봉사 경내 비석 탁본 작업 진행
최고 실력가 흥선 스님 진두 지휘

그냥 돌인가 했는데 먹방망이 치니
비문 나타나며 옛 기록을 되살린다

건봉사 소재 비문 탁본을 위해 조사단 연구원이 비석에 물을 뿌리고 종이를 붙이고 있다. 종이는 한국 닥나무를 사용해 전통 기법으로 만든 한지만을 사용한다.

금석문 기록을 기록하다
탁본(拓本)은 비석이나 기물 등의 각명(刻銘)·문양 등을 먹에 의해서 원형 그대로 종이에 뜨는 방법이다.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에 전해졌고 금석학과 함께 성행했다. 기실 금석학과 탁본은 함께 발전했다. 문자의 점획이나 선 등의 미묘한 부분은 탁본으로 확인하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부터 중국은 명비(名碑)의 탁본을 떠서 첩(帖)으로 만들어졌으며, 법첩(法帖)이라 해 서예의 명품 내지 교본으로서 활용됐다.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관장 오심)이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금석문조사사업’은 탁본을 통해 금석문들의 기록들을 다시 기록·연구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중요한 작업들이다. 지난해에는 경북·대구 지역 금석문 50기(불교 13기·일반 37기)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올해부터는 고성 건봉사를 시작으로 강원도 일대 95기의 금석문에 대한 탁본 조사와 연구가 이뤄진다. 조사단 단장은 불교중앙박물관장 오심 스님이 맡았으며, 연구 진행은 흥선 스님이 책임연구원으로 탁본 작업을 총괄한다. 탁본 작업은 베테랑 연구원 6인이 3개조로 나눠 진행한다.

조사사업에 대해 조사단장 오심 스님은 “금석문은 돌과 금속에 새겨진 옛 선조들의 기록들로, 일종의 타임캡슐”이라며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좋은 탁본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종이는 비석과 최대한 밀착시켜야 한다. 그래서 특수 제작된 나무 솔로 오랜 시간을 두드린다. 또한 최적의 습도를 맞추기 위해 천이나 키친타월을 대고 두드리며 조절하기도 한다.

最高 수준의 탁본 위해서
4월 3일 강원 고성 건봉사에서 열린 현장보고회에서는 조사단 책임연구원 흥선 스님의 탁본 작업 설명이 진행됐다. 흥선 스님은 제대로 된 탁본이 나오기 위해서는 “‘재료·환경·실력’ 삼박자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흥선 스님에 따르면 탁본의 재료인 종이는 제일 좋은 한지(韓紙)를 이용한다. 먹물 역시 기계로 갈면 안 되며, 시중에 유통되는 먹물은 방부제가 들어있어 사용 금물이다. 오로지 좋은 먹을 하루 사용할 물량만 손으로 갈아서 탁본에 사용한다. 

종이를 밀착시키기 위한 ‘나무 솔’은 조사단에서 별도로 주문해서 만든 것을 쓴다. 종이에 먹을 치는 방망이는 일반적인 솜이 아닌 좁쌀에 천을 감싸 제작했다. 모두 탁본 전문가 흥선 스님의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에 흥선 스님은 “종이는 한국산 닥나무를 재질로 전통 방법으로 제작한 한지를 사용한다”며 “시중에 ‘나무 솔’은 재질이 좋지 않고 너무 길어서 사용하기 어렵다. 좋은 탁본은 좋은 재료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탁본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작업이다. 너무 덥고 건조하면 종이가 빨리 말라 탁본할 수 있는 최적의 습도를 유지하기가 어렵고, 바람이 많이 불면 비석에 붙인 종이가 떨어질 수 있어서다.

탁본을 진행하는 연구원들의 실력도 중요하다. 매우 세세한 작업들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흥선 스님은 “종이를 붙일 경우 한 번에 붙여야 한다. 주름이 잡히면 안 된다”면서 “종이를 밀착시키기 위한 솔방망이질도 수직으로 이뤄져야 한다. 종이가 완전히 밀착되지 않으면 탁본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먹을 칠 때도 마찬가지”라며 “먹봉을 수직으로 해서 일정하게 두드려야 고르게 먹이 앉히고 좋은 탁본이 나온다”고 말했다.

채탁을 위한 먹봉. 왼쪽은 먹을 찍는데 사용하며, 오른쪽은 먹을 붙여 종이를 두드리는 용도로 사용된다. 모두 좁쌀로 만들었다.

탁본, 기록과 예술의 정점
탁본은 시간과 인내의 싸움이기도 하다. 완벽한 조건이 되도록 시간을 맞춰 작업해야 하며 먹을 칠 때는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먹봉을 두드려야 한다. 1.7m 비문을 한 면을 탁본하는데만 1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게 먹의 농도를 조절하며 평균 5번을 먹봉을 치는 작업을 한다.

권순노 조사단 연구원(43)은 “처음 탁본을 할 때는 너무 힘들었다”면서 “끼니를 거르는 것은 일상다반사로 있는 일이지만, 탁본이 좋게 나오면 고됨도 잠시 잊을 수 있다”고 밝혔다.

문화재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들도 일련의 탁본 작업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는 “흥선 스님의 탁본은 현재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이 높다”면서 “불교중앙박물관이 진행하는 금석문 탁본 조사의 결과물은 관련 학자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묘지명집성’ 등 금석문 연구로 잘 알려진 김용선 한림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탁본의 중요성을 재차 상기시켰다. 김 교수는 “일제에 의해 파괴된 사명대사사적비가 지난해 복원될 수 있던 것은 이전 시대의 탁본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며 “비문의 글씨들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 있다. 이를 기록하기 위해서 탁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좋은 탁본을 통해서는 당시 서각 수준과 서체, 서풍들을 정확하기 알 수 있다. 금석학뿐만 아니라 서예사에도 중요한 자료”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은 현장보고회 이후 2018년도 금석문조사사업 자문회의를 열고 의견을 수렴했다. 이날 회의서는 조사사업이 석문(石文) 위주로 이뤄지고 있음이 지적됐으며, 상원사 동종과 삼화사 철불 등에 대한 탁본 조사도 진행할 것을 자문위원들은 제안했다.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 2018년도 금석문조사사업에 참여한 자문위원들과 연구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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