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려고 들어간 선방이 오히려 나를 살렸다”
“죽으려고 들어간 선방이 오히려 나를 살렸다”
  • 김주일 기자
  • 승인 2018.03.3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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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일기/ 지범 스님 지음/사유수 펴냄/1만 5천원
선원일기/ 지범 스님 지음/사유수 펴냄/1만 5천원

한국불교가 침체되고 미래가 밝지 않다고 하지만 화두 하나에 천착해 치열한 구도열정을 펼치는 수행자들도 많습니다. 이 분들의 치열한 구도역정을 목격하면 아마도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는 딱 그칠 것입니다. 참 수행자들이 전국 제방선원에 많아요. 40년 선방(禪房)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수행자들의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전하고 싶었습니다.”

정진 스님을 은사로 1979년 범어사서 입산해 출가 이후 1980년 전북 부안 월명암 동안거를 시작으로 봉암사 태고선원, 하동 쌍계사, 구산선문 동리산 태안사 선원, 해인사 선열당 선원, 설악산 백담사, 화엄사 선등선원 등 전국 이름난 선원에 두루 방부를 들인 지범 스님사진 위.

이번에 펴낸 <선원일기>는 입산 출가부터 현재까지 40여년 간 수좌 지범 스님(상도동 보문사 주지)이 제방선원서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수행담과 인연 있는 선승들이 몸을 던져 좌복서 치열히 정진한 삶의 현장을 오롯히 기록한 책이다. 저자 지범 스님은 전국 선원과 처처에서 신심과 원력으로 묵묵히 정진하는 수좌들의 모습을 기록함으로써 이 땅에 다시 간화선이 꽃피고 혼탁한 세상의 빛이 되기를 기원한다.

지범 스님은 돌이켜보면 나의 20대 때 공부는 신심과 열정은 있었어도 자세하고 섬세하지 못해 늘 들뜨고 자리를 못 잡았다. 방황도 많이 했고, 객기도 부리면서 때론 손가락질도 받았다부산서 과로로 쓰러진 후 고운사 100일 용맹정진서 공부의 기틀을 잡았고, 대자암 무문관과 진귀암 무문관서 낮에는 좌복서 애를 쓰고 밤에는 전강 노사의 법문을 들으면서 화두를 점검하는 수좌로서 호시절 이었다고 회고했다.

지범 스님은 출가 이후 모친의 당부를 항상 가슴에 새기며 수좌로서 정진했다. 모친은 꼭 서산대사 같은 선지식이 돼 달라고 지범 스님의 손을 잡으며 신신당부했다.

불기 2554년 경인년 대승사 동안거 기념촬영 모습. 사진 맨 앞줄 오른쪽서 두번째가 저자인 지범 스님.
불기 2554년 경인년 대승사 동안거 기념촬영 모습. 사진 맨 앞줄 오른쪽서 두번째가 저자인 지범 스님.

깨달음을 위해 쓰러지고 넘어질때마다 좌복서 승부를 걸면서 몸을 던진 지범 스님은 1993년 여름 일생일대의 승부수를 던진다. “계룡산 대자암 무문관이 개원됐다고 제방에 알려지니 가슴이 뛰고 꼭 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벌써 선원에 나온지 15년이 넘었고, 세속 나이도 40세가 가까워졌다. 이렇게 살다가는 공부 시늉만 하고 죽는 것이 아닌가 급한 생각이 들었다. 역대 조사들은 20대에 일찍이 이 일을 마쳤는데 나는 이게 무슨 꼴인가 하는 자책이 들어 괴로웠다고 당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던 처절한 심경을 책 속에서 고백한다.

지범 스님은 대자암 무문관서 이번에 끝내지 않으면 이 무문관서 죽으리라고 굳게 다짐한 뒤 입실한다. 밤늦게 고향의 아버지 묘소에 가서 이별을 고했고, 어머니 집 앞에서 삼배로 인사 드릴 정도로 그 어느때보다 각오가 남달랐다.

지범 스님은 책 속에서 당시의 무문관 생활을 이렇게 묘사한다. “먼저 면도기로 눈썹을 밀고 좌복에 앉아 화두와 씨름했다. 그러나 생각같이 공부가 순일하지 못하고 혼침과 망상으로 두 달 가량을 애태우면서 보냈다. 엉덩이가 헐고 헐어 진물이 나고 진물과 피가 좌복에 붙어 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코피가 멈추는 날이 없었고, 이러다간 못 견딜 것 같아 가끔씩 자살 충동을 느끼면서 길고 긴 시간을 보냈다고 토로한다.

지범 스님.
지범 스님.

몸이 쇠약해지고 지쳐 포기하고 옆으로 누웠을 때 그 문틈 사이로 짐을 나르는 개미들을 우연히 보면서 지범 스님은 깨닫는다.

개미들이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기어코 석양 늦게 짐 옮기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 소리쳤지요. 세상 미물들도 이렇게 해내는데 장부가 여기서 포기할 수 있나하며 다시 화두를 점검했습니다. 그런데 공부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으나, 중생을 위한 자비심이 크게 부족했음을 느끼고 이 날부터 매일 천배씩 하면서 화두를 들었지요. 희한하게도 그때부터 화두가 들리기 시작했고, 좌복에 앉아도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화두에 힘이 붙어 몇시간을 금방 보내니 환희심이 절로 났지요.”

그해 추석날 아침, 문없는 문이 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