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春隨想] 봄, ‘침묵 여행’ 떠나자
[新春隨想] 봄, ‘침묵 여행’ 떠나자
  • 승한 스님/서울 낙산 금산사 주지
  • 승인 2018.03.3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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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히 마음 뒤숭숭한 춘수(春愁)의 봄이다. 생명의 명멸에 상관없이 이런 봄날엔 아무렇게나 문득 자지러지고 싶다. 그래서 그럴까. 나의 봄은 또 몸이 마르는 춘수(春瘦)의 봄이기도 하다. 봄만 되면 나는 까닭 없이 오목가슴이 보대끼고 푸른 봄바람 속에 더욱 파리하게 몸이 말라간다.

해마다 봄이면 찾아오는 나의 이 춘수(春愁)와 춘수(春瘦)의 정체는 무엇일까? 해보지 못한 사랑 때문일까? 아니면 살아보지 못한 삶 때문일까? 대책 없는 이 생의 충동 앞에서 나는 긴 침묵에 들어간다. 그리고 지난겨울의 침묵 여행을 생각하며 혼자만의 또 다른 침묵 여행을 준비한다. 삶에 침묵이 필요할 때 여행은 최고의 양식이 된다.

지난 겨울, 나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로 침묵 여행을 다녀왔다. 침묵의 겨울 날 그곳에 갈 때마다 먼 수평선에서 불어오는 시린 해풍은 나의 정신성을 매섭게 다져준다. 해마다 겨울이면 내가 양양 낙산사를 찾는 것은 또 어느 겨울 바닷가보다도 푸르면서도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물어뜯을 듯이 달려드는 파도의 역동성이 정신성의 고양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끊임없이 밀려드는 푸른 물결과 바닷바람이 날카롭게 얼어붙은 심장의 정신성을 더욱 다져주기 때문이다.

승한 스님.
승한 스님.

내게 침묵 여행은 자기 연금술
그 여정은 나를 새로 담금질한다

긴 침묵의 여행을 하는 동안에
나는 조용히 기도하고 명상하며
삶을 정리하며 자신을 마주한다

봄날 훌쩍 떠날 침묵 여행길에서
존재만으로 행복할 나를만난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있어서 침묵 여행은 자기 연금술이다. 백전백패한 삶에 지쳤을 때 침묵 여행은 죽어있는 내 삶의 정신성을 새로 담금질해준다. 들길을 걷고 바닷가를 걸으면서 마음과 침묵의 긴 대화를 나누다보면 내 마음도 어느덧 들판과 바다로 연금되고, 그럴 때마다 지리멸렬한 내 삶의 들판도 희망의 씨앗을 배아한다.

그런 까닭에 여행은 또 나에게 있어서 내 안의 철학으로의 초대이기도 하다. 가슴을 횡단하는 내 존재 의미에 대한 탐색과 성찰로의 초대이기도 하다. 침묵의 긴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조용히 기도하고 명상하며 내 삶의 원초적 조건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는 마음의 공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도와 명상을 통해 나는 그 동안 돈과 명예와 욕구와 사회적 겉치레와 권력과 애욕과 분노에 가려 보이지 않던 내 젊은 날의 삶의 원초적 조건들과 이젠 웃으며 조우할 수 있다.

침묵 여행은 또 내 삶에 휴식과 각성이라는 보너스를 준다. 그리하여 내 정신의 오랜 기갈에 단물을 흠뻑 적셔준다. 짧지만 달콤한 그 휴식과 각성은 내 삶의 작은 교두보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백전백패하고 지리멸렬한 삶일지라도 침묵 여행을 통해 나는 휴식과 정신의 각성제를 흡입하고 또 다시 험난한 인생 절벽을 타고 오를 사다리를 준비한다.

공연히 마음 뒤숭숭하고 몸이 말라가는 춘수(春愁)와 춘수(春瘦)의 이 봄날, 내가 은밀히 또 하나의 침묵 여행을 준비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느 봄날 훌쩍 떠날 혼자만의 이 침묵 여행길에서 나는 우선 매화꽃을 만날 것이다. 다음엔 동백꽃을 만나고 산수유 꽃을 만나고 목련꽃과 벚꽃과 배꽃도 만날 것이다. 그리하여 매화꽃을 만나면 매화꽃으로 연금되고, 동백꽃과 산수유 꽃을 만나면 동백꽃과 산수유 꽃으로 연금되고, 벚꽃과 배꽃을 만나면 벚꽃과 배꽃으로 담금질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봄, 나를 공연히 뒤숭숭하게 하고 마르게 했던 내 삶의 원초적 춘수(春愁)와 춘수(春瘦)들과 다시금 미소지우며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이대로 존재하는 존재감만으로도 행복한 나를 만날 것이다. ‘이대로 OK’무한 나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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