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백제博, ‘영국사와 도봉서원’ 특별전

도봉서원터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제작 추청 금강령〈사진 왼쪽〉과 금강저〈사진 오른쪽〉. 고려 시대 불교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유물로, 특히 금강령의 경우 20cm가 안되는 크기에도 오대명왕 등이 세밀하게 새겨져 있어 국보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2년 서울 도봉서원터 발굴 현장. 조선시대 유교서원인 도봉서원 복원을 위한 발굴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발굴 중 유교서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찰에서 사용됐을 불교 용구들이 무려 77점이 발굴된 것이다. 그 중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금강령, 금강저와 같은 국보급 고려시대 불교문화재들이 있었다.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 불교의 사찰이 유교의 서원으로 탈바꿈돼 운영됐음을 확인할 수 있던 사례이기도 했다.

천년을 땅 속에 묻혔다가 다시 빛을 본 불교 문화재들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한성백제박물관(관장 이인숙)은 오는 6월 3일까지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하는 ‘천년 만에 빛을 본 영국사와 도봉서원’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가 눈길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도봉서원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 중 출토된 국보급 문화재인 금동제 금강령과 금강저를 비롯한 고려시대 불교용구 79점을 모두 선보이는 최초의 전시이기 때문이다.

2012년 도봉서원터 발굴 중에
고려시대 불교 법구 대거 출토 
금강령·금강저 등 국보급 평가
最古시기 천자문 석편도 확인

6월 3일까지 한성백제博 전시
기간 중 10회 연속 강좌 ‘눈길’

가장 주목할 만한 문화재는 고려시대인 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강령과 금강저이다. 이미 국보급 문화재로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도봉서원 출토 금강령과 금강저는 고려 불교 금속공예의 정수를 보여준다.

특히 금강령의 경우 20cm가 채 안되는 크기임에도 오대명왕(五大明王)과 함께 범천·제석천·사천왕 등 모두 11구의 불교 존상(尊像)들이 세밀히 표현돼 있다. 이 같은 불교 법구는 한국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이기도 하다. 오고저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금강저 역시 그 조형미가 매우 빼어나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보급 불교 성보인 금강령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360도 VR 영상을 제작했으며, 관람객들은 3D 이미지를 직접 돌려가면서 금강령을 관람할 수 있다.

도봉서원터에서 나온 천자문 석편. 10세기 제작으로 추정되며, 이는 현존 천자문 석편 중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사례다.

지난해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도봉산영국사혜거국사비(道峯山寧國寺慧炬國師碑)’의 탁본도 공개된다. 영국사 혜거국사비 비편은 길이 62㎝, 폭 52㎝, 두께 20㎝로 총 281자가 새겨져 있으며,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이중 256자를 해독했다.

혜거국사비는 선조의 아들이며 서화가인 이우가 편찬한 금석문 탁본집인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 1668)〉에 88자의 비문만 전해졌다. 하지만 비문이 발굴·해독되면서 ‘영동지륵산영국사’로 잘못 알려졌던 혜거국사비의 출처를 정확하게 알게 됐으며, 영국사 혜거국사(慧炬)가 갈양사 혜거국사(惠居, 고려 최초의 국사)가 동일인이 아닌 동시대를 함께한 동명이인인 것도 명확해졌다. 또한, 이를 통해 구산선문 중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초기 5대 선사의 계보를 밝힐 수 있게 됐다.

함께 발굴된 천자문 석편과 불교 석경들도 주목할 만하다. ‘천자문 석편’에는 천자문 총 250구 가운데 163구인 ‘치본어농(治本於農, 다스림은 농사로 근본을 삼는다)’의 ‘치본’, 165구인 ‘숙재남무(?載南畝, 남쪽 이랑에 나가 일을 한다)’의 ‘숙재’, 167구인 ‘세숙공신(稅熟貢新, 익은 곡식에 구실을 매기고 햇것을 공물로 바친다)’의 ‘세숙’이 확인됐다. 서풍으로 보아 석경과 천자문 모두 고려 10~11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현존 천자문 석편 중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사례다.

불교 경전을 돌에 새긴 석경은 불교 경전을 돌에 새긴 것으로, 도봉서원 출토 석경은 법화경 ‘제1 서품’·‘제3 비유품’·‘제28 보현보살권발품’의 내용을 담고 있다. 도봉서원 석경이 발견되기까지는 통일신라 석경만 확인됐을 정도로 아주 희귀한 성보이다.

법화경 ‘제28 보현보살권발품’의 내용을 담고 있는 석경. 고려시대 제작됐다. 현존하는 유일의 고려시대 석경이다.

영국사가 조선시대에서 도봉서원으로 변화·운영되는 면모들도 조명된다. 전시에서는 도봉서원의 건립과 구조,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도봉서원 인식 등을 이이의 〈율곡전서〉, 송시열의 〈송자대전〉, 권상하의 〈한수재집〉 등을 통해서 소개한다.

또한, 도봉서원 및 그 일대를 그린 겸재 정선의 ‘도봉추색도(한양대박물관 소장)’, 현재 심사정의 ‘도봉서원도(건국대박물관 소장)’도 전시된다.

이와함께 전시회 기간 동안 총 10회에 걸쳐 ‘고려시대 영국사와 조선시대 도봉서원’에 대한  전시 연계 강연회도 개최된다. 강연은 매주 화요일 열리며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최연식 동국대 교수, 강희정 서강대 교수, 최응천 동국대 교수, 조미영 원광대 교수 등이 강사로 나선다.

이번 전시회에 대해 한성백제박물관은 “현재 도봉서원터가 고려시대 영국사라는 불교의 도량에서 어떻게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성지로 변화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게 됐는지를 전시를 통해 조명할 것”이라며 “1000년에 걸쳐 서울의 불교와 유교, 사상의 중심지였던 그 땅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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