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불교비구니협회 한국지회와 조계종 전국비구니회가 주최한 평화에세이 공모전서 통일상에 선정된 경주 흥륜사 한주 법념 스님의 글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텔레비전에서 고향의 봄이 흘러나온다. 탈북해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만든 합창단의 울림이다. 얼굴이 드러나면 북에 있는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 봐 모두 다 가면을 쓰고 노래한다. 새해를 맞이해 고향에 가고픈 마음을 담아 한과 꿈이 서린 소리를 토해낸다. 분단국가의 서러움이 절절히 전해진다.

은사이신 혜해(慧海)스님은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이다. 흥륜사에서는 우리 스님이 거처하는 요사를 법기암(法起庵)이라고 부른다. 출가본사가 금강산신계사(神溪寺) 법기암이어서 북녘 땅을 바라보며 늘 그리워해 법기암이라 새겨 현관 입구에 걸어드렸다. 금강산은 아니지만 현판이라도 보면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안이 될 것 같아서이다.

금강산이 개방되었을 때 제일 기뻐한 이는 우리 스님이셨다. 오매불망(寤寐不忘) 그리던 금강산.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허가증까지 제공 받아 얼마동안은 그곳에 머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 잠깐. 몇 년 안 돼 절망으로 바뀌었다. 금강산을 계기로 통일의 물꼬가 트일 기미가 보이는 것 같아 그렇게 기뻐하셨건만. 은사스님이 원하는 남북통일은 언제쯤 이루어지려나. 가슴이 쓰리다.

한국동란 때 불타 없어진 금강산신계사의 복원불사를 할 때였다. 우리 스님은 구십이 가까운 노구를 이끌고 화주하러 나섰다. 오로지 남북통일을 위한 일념으로 일억 여원을 거둘 정도로 출가본사가 있는 금강산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지금은 신계사를 꿈에서만 다시 볼 수 있으니 그 안타까움이 오죽하겠는가. 그러기에 다른 뉴스거리엔 도통 관심이 없으면서 남북통일이나 금강산에 관한 소식만 나오면 유난히 눈을 반짝이며 귀를 열어 놓고 들으신다. 이제라도 기다리던 통일이 오면 금강산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푸념하듯 말씀하시는 은사스님의 염원은 오늘도 계속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처럼 은사스님의 발원은 오로지 남북통일이다. 사시마지를 올릴 때 빼놓지 않고 하는 축원은 남북통일세계평화이다.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비는 모습은 뒤에서 보기만 해도 숙연해진다. 올해 구십하고도 여덟으로 백세가 내일 모레지만 매일 빠트리지 않고 드리는 기도는 늘 새롭다.

나는 한국동란을 어릴 때 겪었다. 그런 경험으로 전쟁의 두려움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평화에 대한 바람이 누구보다 절실하다. 출가한 뒤로도 어떻게 하면 남북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까 라고 화두를 참구하듯 늘 들고 살았다.

한국동란 이후 나라가 남북으로 나눠진지 반세기를 훌쩍 넘었다. 벌써 칠십 년이 다가오건만 아직도 민족의 염원인 남북통일이 언제 이루어질지 요원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남북이 서로 목소리를 낸다. 두 사람의 의견을 하나로 모우는 것도 어렵거니, 남북이 의견을 하나로 좁히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평행선을 달리듯 팽팽해지기만 한다.

그렇다고 나쁜 소식만 들리는 건 아니다. 올해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납북회담이 열리고 종목에 따라 단일팀도 구성되었다. 왠지 통일로 가는 길이 점점 가까워지는 듯해 또 기대를 걸어본다.

김광규의 동서남북이란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봄에는 연녹색 물결 북쪽으로 퍼져 올라간다. 철조망도, 군사 분계선도 거리낌 없이 북상한다. 가을에는 황금빛 물결 남쪽으로 퍼져 내려온다. 비무장 지대도, 민통선도 거리낌 없이 남하한다.”

계절은 휴전선을 넘어 자유로이 오고가지만 남과 북에 떨어져 사는 우리는 사지가 멀쩡해도 넘나들지 못한다. 시를 읽다보면 가슴이 울컥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신라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이래로 우리 민족은 천년이상 쭉 하나로 내려왔다. 그러기에 다시 하나가 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려면 제일 먼저 남북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 하는 게 우선 일게다. 남북이 이념을 달리하고 있어 하나로 모으기가 여간 힘든 일은 아니나,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닌가. 무엇보다 불교계가 먼저 일어나 온 힘을 기우려야 할 것 같다. 부처님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을 바탕으로 남북이 한마음으로 화해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할 것이다. 남북통일로 가는 길은 세계평화로 발걸음을 옮기는 길이어서이다.

승가(僧家)는 화합중(和合衆)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스님들이 하나로 뭉쳐 화합해나가는 단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는 화합하여 한마음으로 가는 가르침을 근거로 하고 있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이야말로 남북통일을 이끄는 실천바탕이랄 수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도 불교의 힘이 아니었던가.

요즘 들어 비구니스님들의 활동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이다. 예전과 달리 우리 사회가 비구니스님들의 활약을 요구하고 있어서이다. 그에 맞춰 올해는 세계평화를 목적으로 세계불교비구니협회 한국 평화대회가 열린다. 이를 계기로 비구니스님들에게 거는 기대가 더 높아 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에 일조를 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전 세계에서 한국비구니만큼 다방면에 걸쳐 일하는 곳은 드물다. 앞으로 한국비구니계가 넘어야 할 산들이 많지만 머지않아 전 세계 비구니들을 이끌어갈 주역으로써 활약하게 되리라. 특히 이번 평화대회에서 남북통일에 대한 성명(聲明)을 발표해 명실 공희 평화로 가는 길잡이 노릇을 하여 세계평화로 가는 길에 선봉장이 될 것이다.

부처님의 사상은 자유·평등·평화이다. 이런 가르침을 널리 펼쳐 누구나 다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법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 불교계가 해나가야 할 목적의 하나이다. 이를 몸소 실천하려고 하는 비구니스님들의 활약이 눈에 띤다. 비구니스님들이 곳곳에서 자비의 손길을 펼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대중들의 가슴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서서히 스며들게 하고 있어서이다. 그리하다보면 지구촌이 불국정토가 되는 그런 날이 다가와 부처님의 단비가 전 인류에게 내려져 세계평화가 찾아오리라.

오늘도 우리나라가 하나가 되는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기를. 우리 스님도 여생을 금강산에서 보낼 수 있기를. ‘나무 석가모니불이라고 염불하며 두 눈을 살포시 감고 두 손을 고이 모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푸르다. 저 하늘이 이어진 북녘 땅에도 이곳처럼 하늘이 푸르리라. 동서남북이 없는 하늘이 부럽다. 아직까지는 남북이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오갈 수 없어서이다. 그 부러움이 현실이 될 그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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