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금강경 제3분의 현실 응용

내가 선지식을 처음 만날 당시는 육군 공병단에서 육군 소위로 군복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야공단에서 군복무를 하던 동기생은 10여 명 정도 되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동기생을 만나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은 유일한 낙이었다. 서로 괴로움을 호소하기도 하고 유익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인접 부대에 근무하던 동기생 한 명이 자신이 아끼던 반지를 나에게 보여주며 마치 선물이라도 주는 듯 이 반지 네가 끼고 있어라고 하였다.

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을 본 같은 부대 한 장교가 김 소위, 잠시 내가 그 반지를 끼워 볼 수 있을까?”라며 그 반지를 잠시 자신에게 빌려 달라고 했다. ‘잠시 끼워 볼 수 있을까?’는 말에 불안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거절하기 힘들어 반지를 빌려주었다. 역시나 며칠이 지나도 전혀 돌려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심 끝에 중위님, 그 반지는 실은 제 반지가 아니고 동기생이 잠시 빌려준 반지입니다. 돌려주어야 하니 어서 주시지요라고 정식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웃으며 반지를 전혀 돌려주지 않았다. 돌려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에게 자꾸 돌려달라고 요청을 하면 결국 그와 싸움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에 싸우지 않고 돌려받는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한참 망설인 끝에 선지식에게 이 사실을 여쭈었다.

묻기 전 생각이 많이 들었다. ‘선지식은 이 질문에 대해 무어라 답하실까?’ ‘초등학생 같은 질문을 어째서 나에게 까지 가져오느냐? 네가 알아서 처리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시지 않으실까?’ 등 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놀라웠다.

반지를 되돌려 달라 요청하지 말고, 그 돌려받고 싶은 마음을 부처님께 바쳐라.”

반지를 돌려받고 싶은 생각을 바친다면 그 반지를 되돌려 받을 수 있을까요?”

전혀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저절로 질문이 나왔다.

그 생각을 잘 바친다면, 그 사람은 정신없이 반지를 가지고 너에게 달려 올 것이다.”

나는 선지식의 그 말씀을 고지식하게 믿고 반지를 되찾고 싶은 마음을 부처님께 바치려고 노력했다. 반지를 되돌려 받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니 마음이 편해지기는 한데 과연 그 마음을 바침으로 선지식의 말씀처럼 반지를 정신없이 가져오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반지 빌려 준지 한 달이 되도록 바치는 공부가 계속 되었지만 소식은 감감하기만 하였다. 이렇게 되니 선지식의 말씀이 틀리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제대로 바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면서 생각이 오락가락했다.

반지를 되돌려 달라는 생각을 포기한 순간 놀랍게도 그 중위가 반지를 되돌려 주었다. 조금 전까지 전혀 반지를 되돌려줄 기미를 보이지 않던 그가 어째서 반지를 그리 속히 가져오게 되었나? 얼마 후 선지식의 말씀을 통해 반지를 돌려받게 된 전모가 알려졌다.

반지를 빌려 달라던 상급자는 빌려달라는 순간 되돌려 줄 생각이 없었다. 네가 반지를 되돌려 달라고 말하려 했을 때 내가 말린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너의 요구만으로는 도저히 상급자의 마음을 움직일 힘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나? 바로 그 반지에 대한 애착심을 부처님께 바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반지에 대한 애착을 부처님께 바치라는 것은 무슨 뜻 인고. 반지에 손과 발을 묶어놓은 것을 풀라는 것과 마찬가지 인 것이다. 반지에 대한 애착을 부처님께 바쳐 애착을 해탈하게 된다면 이는 마치 묶인 손과 발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반지에 대한 애착을 부처님께 바치는 결과 부처님 광명이 임하시게 되고 그 순간 그 반지는 네반지가 아닌 부처님의 반지가 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반지가 되는 순간 그 누구도 반지를 가지기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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