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항쟁 70주년 기념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본지는 이에 맞춰 제주 4.3항쟁과 불교 관련 연구를 진행해 온 연구자인 한금순 제주대 외래 교수를 와이드 인터뷰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생생한 피해 사례 관련 이야기와 그간의 고충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중 눈길을 끌었던 것은 제주 4.3과 불교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고충이었다. 한 교수가 이야기한 고충을 분석하면 내부와 외부적 요인으로 나뉜다.

우선 내부적 요인을 짚어보면 불교계 피해자인 스님들은 후손이 없어 피해 접수와 명예 회복 주체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설사 피해를 입었더라도 시대가 이를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후학 스님들의 관심도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외부적 요인은 일종의 관료주의와의 마찰이다. 한 교수가 함께 공부했던 제주불교사연구회는 1998년부터 4.3과 제주지역 불교계의 피해 사례를 조사·연구하고 있었고, 이 결과는 2004년 조계종이 발간한 <한국전쟁과 불교문화재-제주도편>에 실렸다. 그 후 제주 4.3평화재단서 분야별 피해사례 연구가 시작됐지만, 불교 관련 연구는 좀처럼 진행되지 못했다. 연구 사업을 위해 사업을 제안하면 종교간 형평성을 이뤄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불교 연구가 중심이 될 경우 종교편향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얼핏 들으면 합당한 이야기다. 공공성이 있는 사업에서 종교색을 지우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피해사례가 명확한 경우는 다르다. 4.3 당시 종교계 피해는 불교에 집중됐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 당시 개신교나 천주교가 있긴 했으나, 교인은 얼마 안됐어요. 불교보다 세도 적었고요. , 불교만큼 적극적으로 활동을 안 해서 피해가 많이 없었습니다. 아마 평화재단에서도 종교 부분을 정리하는 게 어려울 겁니다. 뭐든 제안을 하면 종교 부분은 굉장히 민감해서, 다른 종교에서 편향적이라고 제기하기 때문에 공평하게 하려고 노력 중이라는 대답을 합니다.”

그래서인가. 평화재단이 만든 진상보고서에는 종교계 피해 사례는 별도로 집계돼 있지 않다. 4.3 사건일지에만 관음사 전소와 사찰 피해, 스님이 희생됐다는 아주 짧은 기술만 남겨 있다.

4.3 당시 제주불교계는 민중을 돕다가 많은 피해를 입었다. 당시 관음사 주지 오이화 스님은 무장대를 숨겼다는 의혹으로 토벌대에게 고문을 당했고,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이성봉 스님은 사찰에 마을 주민을 숨겼다가 총살당했다. 신홍연 스님은 마을 청년들을 절에 숨기고 밥을 해먹였는데, 토벌대의 죽창에 생을 마감했다.

당시 희생된 스님들 대부분은 제주 민초들과 함께 하다가 사망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버린 그들의 자기희생은 진정한 종교인이 무엇임을 보여준 사례다. 이는 종교를 떠나 의인(義人)으로서도 귀감이 될 만하다.

피해 사실은 분명한데 종교라는 이유로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배제되는 것이야 말로 역사를 오독하는 행위다. 바르게 기억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4.3을 주목하는 이유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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