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많은 눈이 내렸다. 햇살에 빛나는 흰 눈에 눈이 부시다. 나뭇가지들이 하얗게 눈꽃을 피우고 산길은 발자국 하나 없다. 내소사 일주문을 들어서니 묵언 팻말을 목에 건 스님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들고 있던 지팡이로 널려진 하얀 광목천 같은 눈 위에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이다’고 쓰셨다. 분필 닿는 소리를 또박또박 내며 칠판에 쓰는 글씨처럼….

 

어느 날, 가족들과 함께 용문사에 갔다. 가족 모임이 있어서 그 동네에 다녀오다가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오래전에 가보았던 은행나무가 있는 용문사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만 해도 1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날에 등을 달러 가는 불교 동호인(?) 수준이었다. 다행히 기억은 나이를 먹지 않는지 은행나무가 있는 절이 맞았다. 참배를 마치고 잠깐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데 옆에 있던 분이 말을 걸어왔다.
“저…, 실례지만 저기 처마 밑에 달린 생선 이름이 뭐지요?”
“네, 풍경(風磬) 말입니까? 절에서는 풍경이라고 합니다.”
처마 밑에 다는 작은 종 속에 붕어 모양의 쇳조각을 달아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면 소리가 난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절에서는 지혜의 눈으로 깨어 있으라는 뜻도 있다고 알려 주었다.
누군가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옵니다”고 대답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봄(春)이 본다(見)는 뜻도 있다고 생각하며 내 눈(眼)이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퍼지기를 바라면서 두 손 모아 본다. 앞으로도 지혜를 전해주는 이웃집 할머니의 모습으로 나는 나대로 재잘거리는 소소한 느낌으로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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