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학의 한국산사의 장엄세계] 김천 직지사 대웅전
[노재학의 한국산사의 장엄세계] 김천 직지사 대웅전
  • 노재학 사진작가
  • 승인 2018.03.2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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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주만유, 자비의 봄 물길로 열다
대웅전 불단의 핵심 장면들. 정병과 산사의 정토에서 정화한 물로 생명을 탄생시키고 화엄의 화장세계를 연다.

직지사 대웅전은 천정장엄 뿐만이 아니라, 사찰벽화, 불단장엄에서도 탁월한 경영능력을 드러낸다. 천정의 범자장엄이 그러하듯이 전면 5칸 규모의 건물크기에 조응하듯 벽화와 불단, 나아가 삼존불의 후불탱화도 화면의 크기에 있어 스케일을 갖춰 조성한 특징이 두드러지다. 원래 직지사 대웅전은 ‘대웅대광명전’으로, 전면 5칸의 중층건물이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9년에 이르러 정면 5칸은 유지한 채 오늘날 모습인 단층으로 중건되었다. 불단이나 벽화 등에서 스케일 갖춘 대형화면이 나타난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직지사 내부벽화는 90점에 이른다. 서, 북쪽 벽면과 후불벽 뒷면에 조성한 대형벽화 6점을 비롯해서 포벽, 내목도리 상벽, 창방, 평방 등에 고색창연한 벽화들이 현존한다. 그 중에서 대형벽화 6점은 섬세한 필력이 밴 사찰벽화의 명작들이다. 고색의 색채감에 장중함마저 갖춰 깊은 감명을 준다. 특히 서쪽 벽면의 세 칸에 조성한 보현보살-관음보살-문수보살 벽화는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보현보살은 손에 연꽃 줄기를 든 채 흰색 코끼리를 타고 있다. 결가부좌 자세에서 오른쪽 다리를 밑으로 내린 반가부좌 자세를 취했다. 보살의 배경에는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붉은 기운이 뻗쳐 신령함을 북돋운다. 보현보살은 하화중생(下化衆生)을 행하는, 보살행의 실천을 상징한다. 보현보살의 벽화는 중생에게 보살행을 부단히 실천하는 보현원행(普賢願行)을 일깨운다.

그에 조응하는 반대편은 문수보살을 배대해서 그렸다. 일반적으로 문수보살은 사자를 탄 모습으로 묘사한다. 직지사 대웅전 벽화에선 날개 달린 황룡을 탄 모습으로 묘사해서 특이하다. 날개 달린 용을 타고 가는 동자 그림은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의 충량 벽화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용이 가진 물의 기운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용의 몸통을 온통 붉은 점들로 뒤덮었다. 용 위에 앉았든, 사자 등에 앉았든 문수보살이 앉은 그 자리가 사자좌일 것이다. 문수보살은 위로 진리를 구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지혜를 상징한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자리이타 구도행의 원천인 지혜와 자비의 실천으로서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불이(不二)의 한 몸이다.

해상군선도 한 장면 같은 수월관음벽화
후불벽 세 칸 전면에 관음벽화로 장엄
정병, 산사의 정화된 물에서 생명탄생
보현-관음-문수보살 벽화와 비천벽화

서쪽 벽면의 수월관음벽화.

두 보살벽화 사이에 관음보살 벽화를 배치했다. 벽화 속 관음보살은 흰 백의를 길게 늘어뜨린 백의수월관음이다. 벽화의 공간배경은 큰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다. 관음보살은 바닷가 바위나 연화좌에 앉은 자세가 아니라, 바다색의 몸통에 붉은 반점을 가진 용의 몸통 위에 서 계시는 독특한 구도로 조성했다. 마치 민화 〈요지연도〉에 나오는 ‘해상군선도’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관음보살께 법을 구하려 찾아 온 선재동자 역시 관음의 상징지물인 정병을 들고 용의 몸통 위에 맨발로 서있다. 화면 속에는 진리를 찾아온 구도행자라기 보다는 관음의 시동처럼 표현하고 있다. 대개 선재동자의 시선은 법을 청하는 형국으로 시선이 관음께 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벽화에서는 두 인물의 시선을 같은 방향으로 처리한 까닭에 선재동자의 구도행의 모티프를 읽어내기 어려운 점이 있다. 벽화를 찬찬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요소들도 더러 보인다. 관음께서 서 계신 곳은 용의 몸통이 아니라, 용머리 위임을 알 수 있다. 용머리에 붉은 연꽃 두 송이를 마련해서 각각 한 발씩 내딛게 했다. 파도가 일렁이는 거친 공간배경에도 불구하고 관음보살의 자태는 대단히 유려하다. 그것은 관음의 목, 허리에 선의 흐름을 굴곡지게 해서, 소위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라 부르는 삼곡(三曲)자세로 몸의 선을 부드럽게 처리했기 때문이다.

북쪽 벽면 좌우의 벽화는 각각 공양비천과 주악비천상을 소재로 삼았다. 향좌측의 공양비천상은 남성성이 강하고, 향우측의 주악비천상은 여성성의 경향을 띈다. 공양비천상은 오른손에 보주와 용의 뿔, 초록 잎을 담은 접시를 받쳤고, 왼손에 붉은 보주를 움켜쥐었다. 접시에 담은 공양물들은 식용의 음식물이 아니라 물과 푸르름을 통한 영원한 생명성의 메타포로 보아야 한다. 녹색과 적색의 강렬한 대비로 벽화에 신령한 기운을 불어 넣는다. 힘차게 나부끼는 붉은 천의와 보주에서 뻗치는 붉은 기운의 선율들이 화면 가득 폭발적인 힘으로 발산한다. 그에 비해 주악비천상은 선율의 흐름이 부드럽고 순하다. 영롱한 빛의 구름과 천의의 색채마저도 파스텔 톤으로 여성적이다. 손에 쥔 젓대 관악기를 통해 주악비천의 이미지를 뒷받침하고 있다.

후불벽의 최대규모 수월관음 벽화

하나의 문화원형은 확산되고 시대와 예술가의 창의적인 태도에 따라 또 하나의 원형, 혹은 변형을 만들기도 한다. 직지사 대웅전 후불벽 뒷면의 수월관음벽화는 그 창조적 변형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먼저 장대한 크기의 후불벽 세 칸 전면을 수월관음벽화를 장엄하는 데 적극 활용해서 벽화의 위용을 갖춘 점이 파격적이다. 가운데 칸에 수월관음을 조성하고, 향우측 벽엔 선재동자를, 향좌측 칸엔 용왕을 표현하는 구도를 취했다. 이런 구도양식은 직지사 외에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후불벽 수월관음벽화에도 똑같이 나타나는데, 국내에서는 그 두 곳에서만 관상할 수 있다. 선재동자는 초록의 버드나무 가지를 꽂은 검고 커다란 정병을 들고 있으며, 남해용왕은 용의 뿔과 보주가 담긴 커다란 쟁반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다. 특히 선재동자는 동자가 아니라 성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직지사 대웅전 후불벽 관음벽화는 국내에 현존하는 후불벽 수월관음도 13점 중에서 최대 규모에다 회화의 소재도 가장 풍부하게 갖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등장인물인 관음과 선재동자, 남해용왕은 물론이고, 서사의 배경이 되는 바다와 보타락가산의 암반, 대나무, 정병, 버드나무 가지, 파랑새에 이어 용왕의 공양물과 용까지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쪽 벽면의 보현보살 벽화

조형과 단청으로 장엄한 화장세계 불단

직지사 대웅전에서 미묘한 단청의 빛은 장대한 불단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청, 적, 황, 흑, 백의 오방색에 녹색까지 추가하고 색마다 이빛의 바림을 풀어 풍부한 색채의 향연을 구사했다. 직지사 불단은 여러 불단의 편년을 연구하는 데 기준이 되는 절대연도를 갖추고 있다. ‘순치팔년 신묘 사월(順治八年 辛卯 四月)’이라는 1651년에 기록한 묵서(墨書)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 역사적 편년의 중요성과 조형의 심미성에 의해 2015년 보물로 지정했다. 보물로 지정한 그 외 불단은 영천 은해사 백흥암 불단과 경산 환성사 대웅전 불단 등이 있다.

직지사 불단은 구조와 문양의 구성에 있어 어떤 판타지의 세계를 파노라마식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갖게 한다. 불단의 양 끝에서 중앙으로 귀납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른쪽에서 중앙으로의 진행은 정병의 두 입구에서 각자 용과 오색구름의 형태를 띤 신령한 기운이 천지간에 퍼지면서 시작된다. 그에 대비해서 왼쪽에서 중앙으로의 진행은 바위기운으로 둘러싸인 산사에서 막이 오른다. 산사는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이상향으로 표현하고 있다.

서너 채의 전각과 삼층석탑, 커다란 전나무, 암자, 토굴을 갖추고 있다. 산사의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에서 용이 붉은 여의보주를 취하려 용솟음치고, 그와 동시에 같은 계곡에서 오색구름의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면서 프롤로그를 연다.

왜 한쪽은 정병에서, 또 한쪽은 계곡에서 플롯의 전개가 시작되는 것일까? 두 곳은 모두 물을 상징한다. 그것도 정화된 물이다. 하나는 정병에서, 하나는 산사의 정토에서 정화된 물이다. 물은 생명에 대한 자비력이자 생명의 근원이다. 그로부터 고귀한 생명이 탄생하고, 화엄의 연화장세계가 펼쳐지는 조형원리다. 불단의 하단에 물고기, 게, 조개, 개구리, 달팽이, 물총새들이 공존하는 연지의 세계를 펼쳐 놓았다. 우주만유의 생명은 봄같은 자비의 물길로 열리는 법이다.

후불벽 관음벽화의 남해용왕과 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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