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가 없으면 마치 늘 손목에 걸고 다니던 염주를 잃어버린 것처럼, 평정을 잃는 사람들을 적잖았어요.”

소설 발원, 요석 그리고 원효를 펴낸 시인 김선우가 이 사람 괜찮은 사람이네싶어 얘기를 나누다보면 법정 스님과 맞닿는다면서 꺼낸 말씀이다. 이처럼 법정 스님하면 누구나 무소유를 떠올린다. 그러나 스님이 가리키는 무소유에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는 깊이 살피려드는 사람은 드물다. 스님이 드러낸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만 쓰면서, 적은 것에 기꺼워하며 살라는 말씀이다.

어떤 분이 스님에게 끝이 날카로운 만년필을 하나 드렸다. 스님은 당신 성깔에 꼭 들어맞는 펜 끝에서 나오는 사각거림을 한껏 누렸다. 그러다가 여행길 만년필 가게서 똑같은 만년필을 만난 스님은 반가운 마음에 하나를 더 샀다. 그런데 웬 걸, 두 개가 되고나니 하나였을 때 품었던 살뜰함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차!’ 싶었던 법정 스님, 새로 산 만년필을 얼른 다른 이에게 쓰라고 건네고 나니 소중함이 되살아났다고 했다. 가볍게 한 말씀 같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깊다. 펜 한 자루를 들고 글을 쓸 때 나머지 한 자루는 쓸모를 잃는다. 그러니까 제 구실을 잃은 펜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 쓸모를 살려냈다는 말씀이다. ‘살림이 무엇인지 넌지시 드러내 보였다는 은근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살림은 부처님 가르침 밑절미에 깔려있는 말씀이다. 불자들이 예불 올릴 때마다 다지는 사홍서원, 네 가지 넓은 다짐 가운데 가장 앞서 나오는 것이 괴로움에 빠진 모든 이웃을 수렁에서 건져 올려 살리기이다. 그리고 육바라밀, 여섯 가지 으뜸가는 삶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보시, ‘지닌 것을 내어주기이다. ‘이웃을 다 살리려고, 애써 지어 지닌 것을 다 내어주는 것이 불교가 그리는 바람직한 삶이라는 말씀이다.

일찍이 원효 스님은 귀일심원 요익중생, 한마음 뿌리로 돌아가 이웃을 두루 이롭게 한다고 말씀했다. 이것을 법정 스님은 맑고 향기롭게라고 간추리셨다. 맑고 향기롭게는 중이 밥값이나 하고 가야겠다고 하면서 법정 스님이 팔 걷고 나서서 만든 시민모임이다. ‘맑고 향기롭게란 저마다 본디 지닌 맑음을 한껏 드러내, 사회 곳곳에 앓는 이들을 두루 찾아 살려내어 향기롭게 두루 여울지도록 하겠다는 다짐이다. 이토록 곱씹어 봐도 무소유는 가지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열심히 땀 흘리며 애써 지어들인 모든 것을 내가 쓸 것만 남기고 되돌려 살기 버거워하는 이웃이 생기지 않도록 거듭 살리라는 말씀이다.

늘 무소유를 드러내며 말씀과 지음이 한결같던 법정 스님, 마지막 가시는 길 또한 만장은 물론 널도 없이 입던 옷 그대로 평소 쓰던 대나무 평상에 누워 불에 드셨다. 무소유는 살림이다.

앞장서 봄을 여는 매화를 보고 사람들은 머지않아 온갖 꽃들이 피어날 것이라며 부푼다. 마찬가지로 부처님 깨달음은 온 누리로 이어지는 예고편이다. 그래서 한 겨울에 피는 매화를 석가모니 눈이라고 한다. 추위를 떨치고 피어나는 매화처럼 법정 스님 삶 또한 뭇 사람 마음에 찌든 끝 간 데 없는 욕심과 모르는 데서 겪는 시달림을 녹여냈다. 스님이 가신지 어느덧 여덟 해, 세상은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남녘에서 들려오는 매화 소식에 그리움 가득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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