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70주년 세미나서 불교 피해 밝혀

한금순 박사

제주4.3항쟁기 제주불교의 수난은 제주사회 현안에 깊숙이 참여해 활동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승려들의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관음사 등 사찰들이 제주4.3항쟁의 격전지로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제주4.3사건이 올해 70주년을 맞은 가운데 당시 제주불교계의 구체적인 피해 사례가 조명됐다. 한금순 문학박사는 314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서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주최로 열린 제주4.3 70주년 학술세미나서 제주4.3항쟁과 제주불교의 수난을 주제로 발표했다.

한 박사에 따르면 제주4.3항쟁으로 인해 근대제주불교 활동을 주도한 승려들이 대거 희생되면서 제주불교 활동 전반에 큰 손실이 발생했다. 이 시기 승려 피해는 14개 사찰 소속 승려 16명으로, 총살 10, 수장 2, 고문 후유증 사망 1, 일본으로 도피 1, 행방불명 2명으로 조사돼 있다.

한 박사는 가해자는 모두 토벌대다. 피해 시기는 제주4.3항쟁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194810월 말부터 19493월까지의 초토화작전 시기에 집중돼 있다면서 사찰 경내서 총살당한 경우가 많았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는 예비검속이라는 명분아래 산채로 돌을 묶어 바다에 수장했고, 집단 학살 과정 등에 승려들이 살해당했다. 정식재판에서 죄를 묻지 않고 군경이 임의대로 인명을 살상한 불법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당시 제주불교를 대표한 승려인 이일선은 선운사에서 출가해 백양사서 공부하고, 1938년 백양사 포교사로 제주도서 활동했다. 1945조선불교혁신 제주도 승려대회준비위원장으로서 친일을 반성하고, 왜색화 된 불교풍토를 정화하려는 노력을 주도했다. 1947‘3.1절 기념 투쟁 제주도위원회선정동원부에서 활동하고, ‘제주도 민주주의 민족전선3인 의장단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정광사에서 예비검속돼 산지포구서 수장됐다.

인명피해뿐만 아니라 불교 재산피해도 막대했다. 한 박사에 따르면 제주4.3항쟁 당시 피해를 입은 제주불교 사찰은 37개소가 조사돼 있다. 이 중 사찰 건물 피해는 35개소로, 전소된 사찰만 18곳에 달한다. 또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파옥한 곳 10개소, 오랫동안 접근과 사용이 금지되며 폐허된 곳 4개소, 강제 매각 당한 곳 1개소로 집계됐다. 전소시킨 후 토벌대 주둔소로 활용하거나 육군훈련소 숙영지 혹은 면사무소로 사용된 사찰도 있었다.

한 박사는 사찰 내에 있던 법당과 요사채, 객사 등 건물 피해 위주로 조사돼 있다. 건물 이외에 불상 등의 피해는 오랜 세월이 흘러 쉽게 조사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소개령으로 피난할 경우 불상을 끌어안거나 등에 업어 옮겨 다녔던 상황이 증언되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 제주4.3항쟁 이전에 봉안한 불상과 탱화를 보유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피해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 박사는 이어 제주불교를 이끌던 인명의 피해는 오래도록 그 후유증이 컸으며, 사찰 건물 등의 피해 또한 재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적극적으로 참여한 만큼 피해 또한 막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끝으로 제주불교는 해방으로 새로운 국가 건설에 맞춘 한국불교 전통을 되살리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희망은 4.3으로 인해 단절되다시피 했다. 오늘날 제주불교는 제주4.3항쟁기 치열한 제주사회 참여활동을 기반으로 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불교계가 지금이라도 제주4.3항쟁과 제주불교의 사회참여 활동에 관심을 기울여 전반적인 연구에 나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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