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욱 경상대 윤리교육과 교수

 

한국불교는 대승불교로 자부한다. 앞으로 한국불교가 명실상부한 대승불교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그 핵심인 대승보살도(大乘菩薩道)를 제대로 모색하여 실천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에 필자는 그 일환으로 보리, 그것도 작물로서의 보리에 주목하여 이와 자연스럽게 한 세트로 연상되는 일련의 용어군(用語群)보리밭-보리-보리쌀을 대승불교와 관련시켜서 그 의미를 한 번 탐색해 보려고 한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긴 시간 동안 한반도 북쪽에 위치한 혹한의 밭농사 지대에서 반농반유목(半農半遊牧) 생활을 영위했고 이때 보리쌀을 주곡(主穀)으로 삼은 역사가 있었다. 당시 대승불교 전래에 따라 이들은 깨달음을 지칭하는 핵심적인 용어인 보리를 그대로 작물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깨달음으로서의 보리를 작물로서의 보리와 연결시킨 흔적은 신라 진흥왕 이름에도 남아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진흥왕은 본 이름이 삼맥종(三麥宗)이었다. 불교의 삼먁삼보리를 염두해 음을 최대한 취하여 한문으로 표기한 듯하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삼맥종에서 보리 맥자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삼맥종으로 표기하면서 이것이 삼먁뿐 아니라 삼보리임을 동시에 나타내려는 의도를 지녔던 것이다. 삼맥(三麥)이라는 말은 삼먁삼보리,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의미를 지니는 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신라에 불교 전래시 신라인들은 보리와 삼보리를 구분해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보리를 얻으면 깨달은 보살인 보살마하살이 되지만, 삼먁삼보리를 얻으면 이것은 성불(成佛)한 부처의 경지라고 여겼다.

보리쌀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늦가을 씨를 뿌린 보리밭에서 보리 싹이 움터서 한겨울을 넘긴 뒤에 보리가 익어서 낟알을 거두고, 이후 이것을 도정(搗精)하여 한 톨의 보리쌀을 얻는 과정은 대승보살도인 것이다.

보리밭이란 선지식의 도량을 가리킨다. 보리란 보리 싹, 보리심의 새싹으로서 수행자를 가리킨다. 수확물인 보리의 낟알을 도정하여 한 톨의 보리쌀을 얻는다함은 수행자가 선지식의 도량에서 모진 인고의 노력을 다해 깨달음의 성취를 이룬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한국불교가 보살마하살을 보리쌀로 부를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언젠가 부터 재가불자 중 여성신도를 지칭하는 용어로 오용(誤用)되어 온 보살대신 이 말을 사용했으면 한다. 보리쌀은 보살과 마찬가지로 보리살타(bodhisattva)의 준말이다. 그러면서 대승불교의 정신이 배여 있는 보리밭-보리라는 용어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다시 말하거니와, 선지식과 도반이 있는 도량인 보리밭에서 신행(信行) 곧 신해행증(信解行證)으로 보리심을 키워서 깨달음의 결실을 얻은 이가 곧 보리쌀이다.

앞으로 대승불교인 한국불교에서는 이런 보리쌀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보리밭을 잘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곳에서 움을 틔운 보리심의 새싹이 잘 자라서 대승보살의 자격을 제대로 갖춘 보리쌀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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