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담마빠다

 

〈소부(小部)〉. 즉, 〈쿳다까니까야〉에 주옥같은 경전들이 많지만 특히 진리의 말씀(Dhamma pada)인 〈법구경〉은 부처님께서 우리들의 고민과 외로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세밀하게 설해져 있다.

〈법구경〉은 26개의 장에 423편의 시(詩)로 이루어져 있다. 26장의 품들은 ‘오늘’은 인간에 대한 행동규범에 관해서, ‘깨어있음’은 검소하고 근면한 삶을, ‘마음’은 마음에 관한 긍정적이며 동시에 부정적인 면을, ‘꽃’은 들꽃에 비유하여 우아하고 섬세한 불멸의 세계를 가르치고, ‘어리석은 이’에서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격렬하게 비판하고, ‘폭력’에서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도 폭력은 절대 안되다는 가르침을 ‘자기 자신’은 나를 다스리는 방법들이 가득하다. 부처님께 듣고 싶었던 내 삶에 위안이 되는 말씀들이 시가 되어 별처럼 빛나고 있어 읽고 있으면서도 또 읽고 싶은 경전이다.

보이지 않으며 볼 수도 없고 미묘한 것, 그것이 ‘마음’이다.

마음은 그가 좋아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곳을 상상하며 날아간다.

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이 마음을 잘 다스리니 그 마음이 행복이다. - 게송 36번

아난 존자가 어느 날 부처님께 법문을 듣고 있던 5명의 불자를 보고 놀랐다. 한 사람은 쿨쿨 자고 있었고, 한 사람은 손가락으로 무의미하게 땅을 후벼 파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은 나무를 괜스레 잡아 흔들며 왔다 갔다 하고, 또 한 사람은 망연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고 오직 한 명만이 설법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은 감로수와 같은데 저런 모습을 보니 답답합니다. 딱 한 사람만 집중해서 설법을 듣고 있네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아난아, 그것은 이들의 전생의 삶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땅을 파는 이는 전생에 지렁이로 오백생을 흙 속을 파고들며 살았기 때문에, 저기 나무를 흔들고 우왕좌왕하는 이는 지난 오백생을 원숭이로 살았기 때문이고, 하늘을 쳐다보던 이는 오백생을 하늘의 천문을 연구하고 별자리를 공부하며 점을 치던 사람이란다. 이들은 모두가 흘러가는 대로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에 여래의 설법을 만나고도 가르침을 놓치고 있다. 아난아, 여래의 설법을 듣고 있는 이는 지난 오백생에 항상 브라흐만 으로 태어나 성전을 독송하는 데 열정적이었다. 그 덕분에 오늘 여래의 법문을 잘 듣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여래의 법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들을 안타까워하는 아난에게,

“아난아, 너는 여래의 법문이 매우 듣기 쉬운 것으로 아는 듯하구나. 세상의 많은 중생들이 과거 억겁에 걸쳐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가에 대해서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많다. 그런 그들이 여래의 법문을 만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육도에 윤회하며 살아 온 삶의 흔적이 유일하게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의 몸을 받고도 노래하고 춤추며 마시고 취하는 일에 빠져있을 지열정 여래의 법문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이들이 있지 않느냐.”

“이들은 욕망 때문에 여래의 설법을 들을 수 없다. 바로 성냄과 증오와 어리석음 때문이다. 욕망의 불꽃보다 더한 불꽃은 없다. 욕망의 불꽃이 모든 중생을 모조리 태워버려 한 점의 재도 남겨두지 않는 무서운 것이다. 욕망의 불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고, 성냄보다 더 잘 얽매이고 붙잡는 것이 없고, 어리석음보다 더 깊은 나락은 없다.

이 삼독이 그들의 앞길을 장애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해지는 곳이면 언제나 법회에 참석하여 졸거나 망상피지 말고 더욱 정진해야 한다.

욕망보다 더 뜨거운 불길은 없고, 증오보다 더 질긴 밧줄은 없다. 어리석음보다 더 단단한 그물은 없고, 탐욕보다 더 세차게 흐르는 강물은 없다. - 게송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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