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타·위빠사나도 생각으로 한다
사마타·위빠사나도 생각으로 한다
  • 지운 스님/자비선명상원 선원장
  • 승인 2018.03.09 10: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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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비선이란 무엇인가? - 3) 생각의 힘

(2) 뇌파와 수행단계

생각의 힘에 의해 나타나는 뇌파는 수행경계와 관련이 있다. 생각의 힘은 마음 작용이므로 생각의 힘과 뇌파는 곧 마음과 뇌가 상호관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2000마음과 생명학술대회에서 달라이라마 스님은 나는 마음 자체, 그리고 미묘한 사고과정이 뇌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뇌가 정신에 미치는 작용뿐 아니라 정신이 뇌에 미치는 작용 또한 생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은 뇌의 물리적 표현이면서 동시에 마음은 뇌에 물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인간의 뇌는 수행, 학습 등 많은 방법에 의해 그 신경구조가 바뀌기 때문에 경험은 순간적이고 주관적 영향 이상의 문제가 됩니다. 경험은 건강, 기능 그리고 관계 등에 영향을 미치는 뇌 조직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뇌의 물리적 표현이면서 동시에 마음이 뇌에 물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라고 이야기한다.(달라이라마, 위스콘신 과학자 2001)

마음과 뇌파의 반응에 대하여 과학자들은 대체로 5가지의 뇌파를 설명하고 있다.

명상서 느낀 세타·델타·감마파
잠과 무관하게 의식 깨어있어
생각 없이 바로 아는 정념으로
망념 지워내고 지혜 체득해야

첫째, 베타파(초당 12~30Hz 정도)는 빠른 빈도수를 갖는 뇌파로써, 강하고 분석적인 사고와 관련된다. 대체로 눈을 뜨고 생각하며 활동하는 동안 나타나는 뇌파이다. 정상적 인지 기능이나 불안과 흥분 또는 긴장과 관련 있는 각성 상태를 지칭하는 뇌파이다. 그리고 SMR (Sensory Motor Cortex Rhythm-12~15Hz로 뇌의 감각운동피질에서 관찰) 뇌파는 낮은 베타파이다. 뇌의 뉴런 집단을 강화시킴으로써 생리적으로 몸 전체의 긍정적인 변화의 증가를 의미한다. 호흡이 안정되고, 심박수가 낮아지며, 근육의 긴장 정도가 낮아지는 생리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둘째, 알파파(초당 8~12Hz 정도)는 느리면서 규칙적인 주파수를 갖는데, 이완상태 때 나타나는 뇌파이다. 깨어 있지만 편안한 자각 상태와 관련된다. 스트레스, 강박증이 완화되어 일상에서 고요함과 안정감이 있는 마음상태이다.

셋째, 세타파(초당 5~8Hz 정도)는 알파파보다도 더 느린 주파수이다. 보통 꿈꾸는 상태에서만 생성되며 강력한 창조성의 상태에서도 이따금 나타난다. 세타파는 이완과 수면 사이에 있는 상태를 반영한다. 세타파의 상태에서 선의식 상태로 무의식적인 자료들을 다시 기억하거나 재경험한다. 자신에 대한 자각과 통찰이 증가하여 새로운 창의적 생각이나 문제해결 능력과 재능을 발견하는 경험하게 된다.

넷째, 델타파(초당 0.1~4Hz)는 느리고 불규칙적이다. 수면상태의 뇌파이다. 델타파는 보통 꿈 없는 깊은 잠 상태에서만 생성된다.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의 델타파의 비율 증가는 신체적으로 성장호르몬 분출의 증가를 의미한다. 몸의 치유과정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심리적으로는 기쁨, 몸 사라짐 등을 경험할 수 있다.

다섯째, 감마파(초당 30~50Hz)는 빠른 파장이다. 서로 떨어져 있는 여러 신경회로들을 엮어가거나, 서로 상이한 감각적 특질들을 활용하여 통합적으로 하나의 물체를 감지해내는 뇌파이다. 또는 애매모호한 물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난 후 아하, 이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물체이구나하고 알아차릴 때 잘 나타나는 뇌파라고도 한다. 추리, 판단 등의 고도의 깊은 집중이 이루어졌을 때 또는 자비심을 가질 때 나타난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5가지의 뇌파는 명상체험에서도 나타난다. 신수심법(身受心法)을 관찰할 때 뇌파는 명상체험의 수준을 나타낸다. 관찰 대상으로 신수심법을 염처경(念處經)에서는 몸()은 자아의 의지처인 대상이고, 감각()은 자아가 향수(享受)하는 대상이며, 마음()은 자아의 자체인 대상이고, 현상()은 자아의 오염과 청정의 대상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을 관찰하라고 설한다.

그래서 신수심법의 관찰을 원효 스님은 자아 없음즉 무아의 체험에 있음을 중변분별론소(中邊分別論疏)에서 설하고 있다. 명상에서 베타파와 알파파는 몸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뇌파이다. 자아의 의지처인 몸의 현상을 무상관찰하게 되면 몸이 건강해지고 의식은 각성되는데 이때 무상관찰을 통해 나타나는 몸 사라짐의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 자아 없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거친 무아를 체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몸의 감각은 존재한다. 이 몸의 감각이 무상임을 알아차리는 관찰에 의해 의식이 깨어나게 된다. 이 때 나타나는 베타파와 알파파는 잠에서 깨어나 잠들기 전까지 의식이 깨어 있는 동정일여(動靜一如)와 관련 있다.

명상 상태의 전형적인 뇌파가 세타파이다. 세타파의 경우는 기억 등의 뇌 기능과 관계가 있으며, 또한 세타파의 리듬은 해마의 신경회로를 유연하게 만들고, 뇌를 감수성이 풍부한 상태로 유지시킨다. 명상을 오랫동안 한 사람들은 명상을 하지 않을 때도 세타파를 나타낸다. 많은 명상가들은 외부로 빼앗긴 마음을 자기 자신의 마음 내부로 향해 초점을 옮기기만 해도 세타파를 보일 수 있다고 한다. 일반인들도 통찰이나 직관, 창의적인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세타파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세타파는 이완과 수면 사이에 있는 상태를 반영하지만 명상 중에서 몸이 없고 느낌만 있는 상태에서는 몸에서 마음의 정묘한 영역으로 들어간다. 세타파의 의식은 거친 마음(번뇌가 많은)의 상태에서 번뇌가 그만큼 사라진 좀 더 미세한 마음상태이다. 주객이 하나 된 상태인 타성일편의 삼매를 이루는 명상현상이다. 그래서 꿈속상태에서도 의식이 깨어 있는 몽중일여(夢中一如)와 관련이 있다.

델타파는 대부분 꿈 없는 깊은 잠 상태에서만 체험한다. 그러나 명상 중에 나타나는 델타파의 명상의식은 꿈 없는 깊은 잠 속에서도 깨어 있는 의식 상태인 숙면일여(熟眠一如)와 관련이 있다. 번뇌가 일어나지 않아 미세한 의식상태이다. 의식이 미세해질수록 공성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텅 비어 있으면서 깨어있는 영적인 상태(空寂靈知), 또는 아주 순수하게 주시하는 상태와 공성이라는 마음의 근원적인 영역과 연관된다.

감마파는 명상을 통해 공성 하나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주객과 중생과 부처가 본래 평등하다는 이해가 생기면 나타나는 뇌파이다. 그래서 생명 있는, 지각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하여 자비희사(慈悲喜捨)의 한량없는 마음을 닦으면 나타나게 된다.

(3) 명상수행은 생각으로

한마디로 명상수행은 생각으로 한다. 집중명상인 사마타와 분석명상인 위빠사나도 생각으로 한다. 명상뇌파를 발생시키는 생각에는 염((()3종류가 있다. 생각 염()을 보면 우리는 보통 망념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망념, 이것은 허망할 망자를 써서 허망한 생각, 잘못된 기억이라는 것이다. ()은 망상, 이것도 우리가 많이 쓰는 말이다. ()는 업()이다. 사는 조작하는 심리로 업인 것이다. 조작하는 심리는 없던 것을 만드는 생각이다. 만든다는 것은 미래의 일이다. 이미지를 떠올리는 상은 과거의 것으로 기억의 뜻이 있다. 염은 현재이다. 이 염에 의해서 눈앞의 대상에 집중하는 직접인식인 직관이 이루어진다. 이 세 가지 생각을 명상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이 세 가지 생각은 다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고 명상으로 될 때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이 된다.

첫째, 염은 정념이 된다. 정념은 빨리어로 사티(sati)라고 한다. 사티는 기억, 앎 그리고 정신차림의 뜻이 있다. 대상을 알아차리면 의식이 각성되는데 그때 그 대상으로부터 마음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정념을 알아차림, 마음챙김으로 번역한다. 정념은 눈앞의 대상을 즉각 아는 앎이다. 물건을 손으로 만지면 물건이 딱딱한지 부드러운지 즉각 안다.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아는 것이 직접인식이며 정념이다. 이 정념으로 망념을 없앤다. 즉각 알기 때문에 의미부여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며 감정과 생각을 덧붙이거나 다른 것과 결부시킬 틈을 주지 않고 바로 아는 것이다.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아 없애려고 하는 의도도 개입되지 않도록 한다. 즉 알아차린다는 것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직접인식이다. 이 알아차림이 정신현상과 물질현상을 즉각 구분하는 지혜를 얻게 하고 과거는 지나가서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아 없으며 현재도 머물지 않음을 즉각 알게 하여 궁극으로는 생멸이 없는 열반을 깨닫고 체득하게 한다. 이것이 직접인식의 직관이며 위빠사나 지혜이다. 모두 정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접촉에 의한 현상을 잘 알아차릴 때 과거는 지나가서 없고 기억만으로 존재하나 그 기억함은 현재이며 미래는 오지 않아 없어 미래를 추상하는 그 추상도 현재이고 그 현재조차도 머물지 않으므로 의식은 현재 이 순간순간 늘 깨어 있네.

알아차림이 약하거나 놓칠 때 엉뚱한 길로 감을 아는 것이 정지(正知), 바르게 아는 앎을 의지하여 잘못을 다스릴 때 다시 바르게 가게 되니 이것이 대치(對治)이다.

모든 것 불이(不二)임을 바르게 아는 정견에 의지하여 느끼려고 하는지, 감정과 생각을 덧붙이려고 하는지, 의미부여 하고 있는지, 다른 것과 결부시키고 있는지, 억지로 조작하고 있는지 살피고 또 살펴서, 혹 없애려고 하는지 알아차려서 말과 생각의 가면에서 벗어나 연기실상 드러나 지혜의 꽃 발화하니 모양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마음속 깊이깊이 숨어 있는 과거의 해로운 인연 그 트라우마의 속박에서 벗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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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18-04-14 20:25:37
맞는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_()_